처음엔 럭셔리업계의 지존인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칼 라거펠트, 그 다음에는 팝스타적 유명세를 자랑하는 아이돌 디자이너 스텔라 맥카트니, 이제는 음울하고 몽환적인 북유럽의 환상과 손잡는다. 디자이너와 제휴한 리미티드 컬렉션을 런칭하면서 어패럴업계의 경계 넘기와 달콤한 추가 매출의 매력을 여실히 보여준 패스트 패션의 대명사 「H&M」이 올 가을에는 디자이너 빅터&롤프와 제휴한 3번째 리미티드 컬렉션을 선보인다.

클래식한 테일러드 의상을 모던하게 비틀어, 독특한 이미지를 만들어온 디자이너 빅터&롤프가 디자인을 지휘할 「H&M」 남녀 컬렉션은 올 11월 유럽과 북미, 중동 지역의 모든 매장에서 동시에 판매될 예정이다. 그동안 소비자들보다는 그들만의 ‘예술성’을 더 중시하는 듯한 이미지를 구축해 왔던 빅터&롤프가 다수의 소비자를 상대로 한 「H&M」과 제휴한다는 소식은 반갑다못해 묘한 느낌마저 든다.
1993년 ‘Hyeres Fashion Festival’에서 우승하면서 세계 패션계에 그 존재를 드러낸 빅터&롤프는 독특한 전시회나 오트쿠튀르 쇼를 통해 그들만의 개성을 드러냈고, 2000년 여성 레디투웨어를 런칭하면서 패션계에서 가장 ‘도전적인 라벨’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특히 날카로운 장인정신과 특유의 모던한 감성으로 해석된 테일러링이 묘한 매력을 자아내면서 남녀 레디투웨어 라인 및 스카프·언더웨어·아이웨어·풋웨어·향수 라인까지 사업이 확대된 상태다.
이처럼 사업 확대의 재미를 쏠쏠히 느낀 탓인지는 몰라도 「H&M」과 제휴를 의외로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빅터&롤프는 “「H&M」은 패션을 즐기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물창고와 같은 패션 민주주의를 실천한 업체”라고 평가하면서 “이번 제휴는 빅터&롤프의 시그너처 스타일의 정수인 ‘변화(transformation)’를 오트쿠튀르의 반대편(하이스트리트)에서 실험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H&M」이 보유하고 있는 엄청난 수의 소비자들에 대한 호기심도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숨기지 않고 있어, 「H&M」과의 제휴가 빅터&롤프의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신규 고객을 창출할 좋은 기회라는 점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나 스텔라 맥카트니는 「H&M」 한정본 컬렉션을 런칭하면서, 그들의 이름을 TV 스타만큼 익숙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디자이너에 대한 소비자들의 목마름을 증명하면서, 자신들의 스타성과 매출 구축력을 확인하는 효과를 얻었다.
유명 디자이너와 패션 민주주의
맨 처음 디자이너 한정본 컬렉션이라는 실험적 콘셉트를 실천해 폭발적인 광고 및 브랜드 이미지 업그레이드 효과, 여기에 매출상승이라는 결과를 얻은 「H&M」은 ‘디자이너의 인기에 묻어가는 반짝 매출’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철옹성처럼 단단했던 어패럴업계의 계급구조를 깨고, 다른 영역에서 움직이던 디자이너와 하이스트리트 라벨의 제휴를 통해 ‘편안한 가격의 디자이너 의류’에 목말라했던 소비자들의 욕구를 반영했다는 점에서 폐쇄적이었던 어패럴업계에 혁신을 갖고 온 선구자라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빅터&롤프가 지적했듯 각기 자신들의 리그에서 놀던 어패럴 계급들이 서로의 선을 잡고, 소비자들을 마주하면서 이제까지 찾기 힘들었던 ‘패션 민주주의’를 이뤄낸 것은 「H&M」의 성과로 치하할 만하다. 물론 이를 가능케 한 근원은 다수의 소비자들에게 자신을 노출해 인지도를 높이고 추후 매출을 구축하려는 디자이너들의 계산과, 유명 디자이너가 직접 디자인한 제품을 「H&M」의 이름으로 판매함으로써 ‘값싼 디자이너 카피 브랜드’라는 「H&M」의 이미지에 ‘품격’을 더하려는 「H&M」의 전략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예술인 혹은 장인인 체하는 형식보다는 ‘소비자를 이끌고 매출을 구축하는’ 경제적 가치가 중시되는 디자이너업계의 시류와, 더 이상 ‘값싼 카피품’으로는 신규 매출을 구축하지 못하고 「자라」와의 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는 「H&M」의 판단이 ‘디자이너+「H&M」’ 한정본 컬렉션이라는 모습으로 탄생된 것이라 할 수 있다.
「H&M」의 딜레마
여기서 우리는 「H&M」의 딜레마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칼 라거펠트+「H&M」’ 한정본 컬렉션을 기획할 때만 해도 시선을 모으기 위한 ‘일회성 이벤트’
예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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