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카피는 필요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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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은 물론 하이스트리트 브랜드도 디자인 지키기 나서

2006-01-24 오전 9:19:31

럭셔리 패션 하우스의 디자인을 발빠르게 카피해 쏠쏠한 매출 재미를 보고 있는 「H&M」 「자라」 등의 하이스트리트 브랜드들을 더 이상 디자인 카피 브랜드로만 과소평가할 수 없을 듯하다. 10년 전만 해도 하이스트리트 업체들은 컬렉션 무대에 등장한 일부 아이템만 슬쩍 카피하는 얌전을 떨었지만 무서운 세력으로 성장한 「H&M」이나 「자라」의 요즘 머천다이징은 절반 이상이 카피품일 정도로 노골적이다. 복잡한 디테일은 생략하고 경제적인 소재로 스피디하게 제작하는 이들 아이템은 부담없는 가격으로 소비자들에게 제공되기 때문에 파급력이 크고, 소비자가 어떤 아이템을 좋아하는지 금방 파악되기 때문에 오리지널 디자인의 히트가 거리에서 결정될 정도로 카피 브랜드들의 파워는 거세다. 실제로 디자이너 브랜드들은 매시즌 잘해야 3∼4번 컬렉션으로 느린 신제품 순환율을 갖고 있는 반면 디자인 카피를 통해 ‘보는 눈’이 높아진 하이스트리트 패션업체들은 그렇지 않다. 매장에서 수집한 소비자들의 욕구를 반영→자체 아이템을 개발하거나 오리지널 디자인에 변형을 가미→성공적인 매출을 구축하면서 최근에는 아예 하이스트리트 브랜드가 트렌드를 시작하면 디자인 하우스들이 이를 카피한다는 말이 등장할 정도다. 실제로 디자이너 도나텔라 베르사체는 1990년대 중반, 런던 본드 스트리트에 위치한 매장 재단장 기념 파티장에 하이스트리트 브랜드에서 구입한 새틴 드레스를 입고 나타나 패션 피플들을 놀라게 했고, 이 제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제작한 드레스를 베르사체 컬렉션에 포함시켜 하이스트리트 브랜드의 눈썰미를 인정했다. 많은 럭셔리 브랜드들이 짝퉁 아이템 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하이스트리트 브랜드들의 디자인 카피에 대한 패션계와 언론의 관대함은 놀라울 정도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관대함을 보여왔던 럭셔리 하우스들이 디자인 카피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보이며 패스트 패션업계를 긴장케 한다. 실용성과 감각이 어울린 디자인을 선보이는 「클로에」는 백 디자인을 고스란히 카피한 「쿠카이(Kookai)」를 상표권 침해로 소송을 걸었고, 디자인 카피로 버텨온 「H&M」과 「몬순(Monsoon)」조차 자신들의 디자인을 도용했다면서 「프리마크(Primark)」를 고소하는 등 럭셔리 하우스는 물론 하이스트리트 브랜드들도 디자인 지키기에 예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편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카피되는 디자인인 「버버리」 체크 또한 법정 소송으로 비화되고 있다. 오랫동안 카피 상품에 골머리를 앓아온 「버버리」는 트레이드 마크인 체크 패턴을 도용해 온 영국의 아웃렛업체 페렛월드(Ferret World)를 상표권 침해혐의로 법정에 고소할 계획을 밝힌 것. 페렛월드에서 「버버리」와 흡사한 체크 패턴 모자와 케이프를 계속 판매해 온 것이 쟁점이다. 「버버리」 측은 이 같은 사실에 항의하는 공식 서한을 페렛월드 측에 보내 지적재산권 침해 문제를 따졌고, 페렛월드는 법정 소송의 부담을 피하기 위해 문제가 된 전 제품을 매장에서 없앤다는 의견을 밝히며 서둘러 사건을 무마하려 들었다. 그러나 「버버리」 측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해당 제품 제작에 사용된 패브릭 샘플을 요구하는 한편, 동 제품을 구입한 구매자들의 이름까지 입수, 카피품의 생산 및 판매는 물론, 구매까지 모두 막자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 페렛월드와 충돌을 빚고 있다. 이에 맞서 프렛월드는 인터뷰를 통해 일반적인 체크무늬를 모두 「버버리」 체크로 간주할 수 없으며, 의류나 가방이 아닌 작은 모자에까지 상표권을 들먹이는 처사는 지나치다며 동조자 포섭에 나서는 모습이다. 이 같은 모습은 하이스트리트 브랜드들이 더 이상 디자인 카피에 의존하는 것이 힘들다는 신호탄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 7∼8월 「H&M」 「자라」 등의 하이스트리트 브랜드들은 기대에 못미치는 매출을 올리고 소비자들이 카피 브랜드에 식상함을 느끼고 있다는 조사가 나오면서 하이스트리트 브랜드들도 재능 있는 디자이너를 고용, 오리지널 디자인을 통해 자기 색을 찾으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런던컬렉션에 참석한 「탑샵」이 대표적인 경우다. 바야흐로 하이스트리트 브랜드들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트렌디 브랜드로 거듭날 시점이 된 것이다.

예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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