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아시아 금융시장 붕괴, 9·11테러, 미·이라크전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매출 부진으로 고전하던 럭셔리업계가 급부상하는 신흥 시장 덕분에 활기를 되찾고 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자유 바람에 물든 러시아 및 동유럽 시장은 자본주의에 발빠르게 동참한 신흥 부자들이 등극하며 럭셔리 구매 바람을 선도하고 있다. 또한 ‘시장경제’를 일부 허용한 중국은 루이비통, 샤넬, 이브생로랑, 아르마니, 베르사체, 에르메네젤도제냐 등 유명 럭셔리업체들이 몰려 시장점유 각축을 벌이는 치열한 경쟁지가 되었다.
오랫동안 일본과 함께 아시아 럭셔리 시장의 대문 역할을 했던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면서 돈 있는 중국 본토인들의 럭셔리 욕구가 홍콩시장을 경유했지만 이제는 상하이, 베이징 등 중국 본토 지역에 럭셔리 매장들이 본격 오픈하고 디자이너들이 직접 찾아가면서 중국은 아예 세계 패션시장을 주도하기 위한 장기 전략까지 짜고 있을 정도다.
부유한 중동, 럭셔리의 보고
여기에 IT 산업으로 부를 구축한 인도시장이 잠재력 높은 신흥 시장으로 부상하면서 샤넬, 크리스찬디올을 비롯한 럭셔리 브랜드들은 인도시장에 자체 매장을 오픈하거나 현재 업체와 제휴, 불꽃 튀는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특히 전통적으로 실크직조와 염색, 독특한 자수와 비드 장식으로 유명한 인도는 해외에서 공부한 유명 디자이너들과 패션계에서 활동하는 인도 출신의 모델을 내세워 인도 자체를 파워 있는 패션국으로 키우기 위해 정부에서 지원하는 패션주간을 개최할 정도다.
그런 만큼 역사와 정통을 자랑하는 럭셔리 하우스들은 포화되고 있는 기존의 시장과 달리 왕성한 소비력을 갖고 있는 중국, 러시아를 비롯한 동구권, 인도 시장으로 기쁘게 달려갈 수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 오일 가격 인상으로 많은 부를 쌓고 감추었던 패션에 대한 욕구를 표출하기 시작한 중동시장이 가세하면서 럭셔리업계는 문자 그대로 오란 곳은 많은데 갈 길은 바쁜 행복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아르마니가 동유럽부터 중국, 중동 시장을 순회공연(?) 한 것도 급부상한 신흥 매출지에서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포석인 셈. 하지만 이슬람교가 의생활까지 지배하며 보수적인 옷차림을 일관하는 중동시장에서 종교적 반감을 사지 않고 매출을 구축할 수 있을까?
액세서리, 중동을 여는 열쇠
럭셔리업계가 주목하고 있는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레이트는 이라크나 이란에 비해서 훨씬 개방적인 경제부국이지만 히잡과 차도르로 대변되는 이슬람 생활방식은 여전하다. 하지만 액세서리에 대해서만은 자유가 허용되고 있어 액세서리가 럭셔리업계의 중동 공략 무기가 되고 있다. 실제로 오일가 폭등으로 전성기를 맞이한 이들 지역의 여인들은 럭셔리 액세서리를 통해 개성과 패션 감각을 표출하려는 성향이 높고 중동 여인의 몸을 감싼 전통 의상―아바야―에서도 손이나 발 등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아 액세서리는 최소한으로 드러난 곳에 아름다움과 개성을 더하는 패션 장치로 호응이 높다.
정통 무슬림의 의상 규칙에 따라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패션 감각을 자랑할 기회가 차단되지만, 핸드백과 슈즈, 스카프, 선글라스, 주얼리 등의 액세서리가 허용되면서 럭셔리 액세서리가 여성의 패션 감각과 사회적 위치를 드러내 주는 열쇠가 된 것이다.
실제로 현재 중동에서 가장 잘 팔리는 액세서리는 실용적인 백이나 편안한 슈즈, 심플한 스카프가 아니라 브랜드 로고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크리스털 장식이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하고 대담한 스타일이다. 다시 말해 같은 헤드밴드라도 브랜드 로고가 드러나 럭셔리한 멋과 ‘돈이 있어 보이는’ 스타일을 추구하는 것. 또한 이들 중동 여인들은 선물용으로도 럭셔리 아이템을 즐겨 구매하고 패셔너블한 액세서리를 중시하기 때문에 액세서리는 중동시장을 여는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 몸을 감싸는 전통 아바야에 샤넬 스카프를 매고, 크리스털 장식 백을 든 중동의 여인이 상상되는가?
지역화정책
이처럼 중동 여인들이 화려하고 대담한 액세서리에 관심이 높다는데 착안, 루이비통은 서구시장에서 판매되는 제품보다 더 큰 사이즈의 스카프를 중동시장에 출하해 이곳 여성들이 머리 위에 두를 수 있게 배려했고, 크리스찬디올은 어깨에 메는 핸드백을 선호하는 중동 여성들의 입맛에 맞춰 현지 시장에 출하되는 백의 대부분을 숄더 백 스타일로 구성했다.
또한 중동 여성들이 럭셔리 아이템을 세트로 구비, 사회적 신분을 드러내는 경향이 많다는 데 착안해 백과 이에 어울리는 슈즈를 세트로 판매하는 정책을 취하는 럭셔리업체들도 많다. 어찌 보면 현재 중동의 럭셔리 시장은 독특한 디자인이나 정통성보다는 ‘값비싼 럭셔리 제품=사회적 신분 장치’로 인식하는 경향이 지배적. 그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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