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 패션 주간은 시작되었지만 프랑스 패션계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하다.
글로벌 불황이 끝나고 패션계가 다시 활기를 찾았다고는 하지만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인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컬렉션을 선보일 수 있는 효율적 통로가 마련되고, 높은 비용과 준비 시간을 들여 선보인 런웨이 무대가 실질 수익 면에서 더 이상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게다가 디자이너들의 땀이 담긴 런웨이 무대의 의상이 소개되면 패션 주간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하이 스트리트 업체의 윈도우에 먼저 등장, 런웨이 무대가 ‘디자인 카피의 산실’이 되고있다는 분위기 또한 패션 주간의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는 원인이 된다.
파리의 색깔·파워가 약해졌다
파리 패션가를 한숨 짓게 하는 또 다른 문제는 파리-밀라노-런던-뉴욕 패션 주간이 각기 다른 개성으로 뚜렷한 색깔을 지녔던 과거와 달리 최근 패션계는 ‘웨어러블한 디자인과 트렌드’를 모토로 점점 닮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파리 패션 주간 특유의 미적 감성과 크리에이티비티를 고집하자니 점점 ‘하나로 통합’ 되어가는 글로벌 패션가 동향과 어긋날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는 공통점을 반영하자니 파리 특유의 색체가 옅어지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 셈이다.
즉 뉴욕과 밀라노, 런던 패션주간을 주도한 쾌활한 1970년대 풍을 따르자니 독창성이 아쉽고, 지난 시즌을 주도했던 미니멀리스트 감성을 고수하자니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는 애매모호한 상황에 처한 것. 그 결과 파리 패션 주간은 트렌드의 전진과 후퇴가 동반 갈등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일례로 6개월 전 파리가 주도했던 미니멀리즘이 파리 쇼윈도우를 채우자마자 뉴욕과 런던, 밀라노는 미니멀리즘을 버리고 대담하고, 활력 넘치는 프린트와 플레어드 트라우저로 방향을 옮겨버려 ‘패션의 흐름’을 주도한다고 자부했던 파리 패션가가 오히려 한 발 뒤처지는 듯한 상실감을 분명하게 맛봤다.
이는 글로벌 불황기에 런웨이 무대를 진행하는 디자이너 수의 대폭 출소로 패션 주간 스케줄을 줄이는 수모를 겪었던 밀라노 패션 주간이 올해 화려한 찬사를 받으며 부활한 것과 대조적인 모습으로 글로벌 패션가를 호령하는 프랑스 출신의 디자이너가 눈에 띄게 줄고 있다는 점과 함께 파리의 슬픔을 더한다.
실제로 파리 패션 주간에 론칭 40주년을 화려하게 기념한 이탈리아 디자이너 로베르토까발리나 디올의존갈리아노, 셀린느의 피비필로, 스텔라매카트니, 故 알렉산더맥퀸, 자일스디콘, 사라버튼, 하나맥기본, 가레스퓨 등 핫한 디자이너들의 대다수는 영국 출신이 많다.
모던하고 실용적인 실루엣으로 21세기 패셔니스타들과 가장 잘 소통하는 릭오웬스, 알렉산더왕 등 미국 디자이너들의 활력까지 감안하면 프랑스 패션가는 패션 주간 뿐 아니라 디자이너 자원까지 힘이 빠지는 상태.
속도에 밀리고 디자이너 지원까지 아쉬워
전통과 자부심의 파리 패션계가 힘을 잃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패션계의 소통 방식에 혁신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국경과 시간 제약 없이 라이브 스트리밍을 통해 캣워크 쇼를 전달하고 인터넷을 무대로 활약하는 패션 블로거들을 통해 소비자가 컬렉션에 대한 즉각 반응을 보일 수 있게 되면서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런웨이 무대의 매력이 상대적으로 적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어찌 보면 패션 주간, 혹은 런웨이 무대는 인터넷 시청자를 위한 일종의 프로그램으로 전락하게 되어 패션주간 자체에 쏠리던 시선이 분산되는 현상이 벌어지는 상황이 나타난다. 다시 과거 패션 주간이 글로벌 바이어와 디자이너들의 의미 있는 만남의 장이 되었던 것과 달리 최근의 패션 주간은 온라인 웹사이트에 라이브 스트리밍을 전달하기 위해 모여든 패션 기자들과 패션 블로거, 그리고 자신의 유명세를 확인하려는 셀러브리티들의 파티장이 되어 버린 느낌이 강하다.
그 결과 일부 디자이너들은 런웨이 무대를 생략하고, 온라인을 통한 컬렉션을 선보여 경비 절감과 소비자의 관심을 함께 끌어들이는 영리한 시도를 하고 있으며 직접 패션 주간에 참석하기 보다는 인터넷을 통해 컬렉션을 살피고 제품을 주문하는 리테일러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인터넷, 소셜 네트워크에 부탁해
일각에서는 패션 주간이 20세기 패션을 이끌고 통합시켰다면 21세기에는 인터넷과 소셜 네크워크의 효율적 차용이 패션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주장한다.
즉 패션 주간의 런웨이 무대에 등장한 디자인이 실제 매장에 반입되는 시간적 차이를 없애려면 버버리가 그러했든 런웨이 무대에 오른 디자인을 즉각 인터넷을 통해 주문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 스피디한 소비자와의 만남을 가능케 하라는 것.
소셜네크워크를 통해 ‘손 안의 광고 및 유통 통로’가 될 모바일 채널을 끌어안는 모습도 현 패션계의 두드러진 현상이다. 패션 주간에 충실해왔던 럭셔리 하우스 루이비통이 페이스북이나 모바일 비디오 스트리밍을 통한 감성적 접근을 통해 소비자와 보다 친밀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 좋은 예가 된다.
루이비통은 얼마 전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The Art of travel by Louis Vuitton’ 캠페인을 진행, 관심을 끌고 있는데 소셜 네트워크를 주요 마케팅 채널화 한다는 전략에 따라 1주일에 몇 차례 멀티미디어 콘텐트를 업데이트하는 것은 물론 매 시즌 캠페인 홍보도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2011 봄·여름 패션 쇼를 볼 수 있는 페이스북 유저를 한정시키지 않고 guest 리스트에 오른 사람이면 누구든지 볼 수 있게 배려, 소비자와 한 걸음 가까이 하려는 자세를 취했고 방문객들이 런웨이 주변의 카메라 뷰를 360도 회전시킬 수 있도록 배려해 상호성과 참여성을 높였다.
사실 루이비통은 2009년 10월 페이스북에 라이브 패션쇼를 선보인 최초의 패션 브랜드이며 페이스북을 갖고 있는 패션 브랜드 중 가장 인기있는 Top 5에 포함되어 있다. (루이비통은 10월 6일 페이스북을 통해 2011 봄·여름 패션쇼를 쌍방향 웹캐스트 하며 www.louisvuitton.fashionshow.com에서는 아이패드나 아이폰을 통한 라이브 스트리밍도 제공한다.)
결국은 소비자와의 소통이 관건
루이비통 관계자는 소셜 네크워크 차용이 대다수의 실수요자, 즉 고객과의 거리를 좁혀줄 수 있는 흥미로운 통로라면서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가 다소 폐쇄적인 패션 주간의 단점을 보완할 효율적인 장치라고 말한다.
이 같은 흐름을 감안하면 패션 주간의 파워가 약해진 만큼 인터넷을 통한 소비자와 적극적이고 스피디한 소통과 소셜 네트워크를 통한 감성적이고 친밀한 접근법은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직영 유통망을 확대하는 최근 럭셔리·디자이너 업계의 동향과 궤적을 같이 하는 21세기의 필연적 진화 과정일 수도 있다.
예정현 기자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