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시장에 장미빛 꿈을 가졌던 서구 어패럴 업계가 내심 당황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백만장자가 늘면서 신규 매출에 굶주린 패션가의 달콤한 매출 기대처로 떠오른 인도였지만 정작 인도 시장에 제대로 진입, 매출을 구축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인도는 오랫동안 서구 패션계에 코튼과 수직 실크, 그리고 각종 어패럴 부자재를 제공해왔고 낮은 임금에 숙련된 노동으로 하청기지 기능을 충실히 해오는데 만족했지만 오랜 인도의 역사 속에서 태생적으로 많은 재산을 보유한 상류층 외에 디지털 테크놀로지 발달을 주도한 젊은 부자들이 증가하면서 서구 패션가의 매혹적인 매출처로 눈길을 끌어온 것이 사실. 특히 또 다른 신규 매출처로 각광받고 있는 아시아·중동 시장과 달리 인도는 영어 의사 소통이 가능해 서구 어패럴 업체가 인도 시장에 보다 쉽게 접근하고 파고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인도 시장에 진입하고 날개를 펴려는 시도를 했던 어패럴 업계는 인도 시장이 결코 만만찮은 도전지역이라는 점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복잡다단한 인도 시장, 그 속내를 한번 들여다보자.
까다로운 인도 시장
가장 큰 문제는 서구 패션가가 인도 소비자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데 기인한다. 서구 패션 브랜드들, 특히 럭셔리 패션 브랜드들은 화려한 광고를 무기로 인도 시장에 진입하면서 전통적인 상류층을 타깃으로 움직이면서 이들의 서구 럭셔리 브랜드에 무조건적인 구매욕을 과시할 것으로 기대했다. 즉 일부 아시아 시장에서 그러했듯 인도 소비자들도 브랜드 네임에 광적으로 집착하며, 신분을 과시하는 장치로 절대적인 럭셔리 브랜드 흡수에 몰두할 것으로 자신했던 것. 하지만 이것은 나르시스적인 오만한 판단에 불과했다.
실제로 인도 전통 부자들은 해외 여행이 빈번하고 해외 패션 브랜드들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갖고 있어 특정 브랜드에 대한 무조건적인 숭배보다는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브랜드를 비교하고 분석하고, 디자인과 제품에도 더 까다롭게 선택 기준을 주는 매우 ‘단련된 소비자들’이었던 것. 뒤늦게 이를 깨달은 브랜드들은 곧 인도 시장의 속성과 타깃층 재분석에 도입, 보다 젊은 신규 부유층에 타깃을 돌리고 있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인도 럭셔리 시장의 실질적인 구매층은 해외 경험이 적지만, 각종 방송매체와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통해 서구 시장에 관심을 ‘키운’ 젊은층으로 전통적인 대규모 리테일 매장과 평이한 마케팅에는 큰 매력을 느끼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를 반영하듯 이제까지 인도에 진출한 37개 이상의 글로벌 브랜드들은 기대에 못 미치는 매출을 구축, 인도 시장이 초창기 일본이나 중국, 러시아 시장과 달리 서구 패션에 무조건적 숭배감을 드러내는 소비자들이 아님을 뼈져리게 깨닫고 있다.
인도 어패럴 시장 자체가 해외 브랜드들의 진입하기에 까다로운 장벽을 두고 있다는 점도 서구 패션가의 고민을 깊게 한다.
인도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인도 통상법 상 현지 업체와 합자 벤처를 구축할 수밖에 없는데, 인도 유통 경험이 풍부한 현지 파트너를 찾기도 힘을 뿐 더러 설령 합자 벤처를 구성해도 인도 시장 매출이 부진하면 현지 업체들이 계약 파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인도 최대의 패션 하우스 마두르가먼츠, 아르빈드, 레이몬드의 소유자이자, 서구 패션의 현지 진입 파트너로 활약해온 퓨처 그룹은 프랑스 패션 브랜드 「에땅」이 부진한 실적을 올리자 합자 벤처 계획을 철회하고 해외 브랜드 유통 사업에 미련을 버리는 냉정한 모습을 보였다.
서구 패션가가 힘없는 신규 시장에 진입할 때 흔히 저질렀던 경제적 압력- 즉, 현지 시장 구축에 대한 재정적 부담을 현지 파트너에 부담시키던 관행이 인도 시장에서는 통렬한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는 점도 서구 브랜드들을 당황시키는 점이다. 즉 능력 있는 현지 업체와 합자 벤처를 구성하는 것 자체도 힘들지만 효과적 시장 진입을 위한 장기전을 펼치기도 힘든 상황이 되는 것. 다시 말해 인도 어패럴 시장에 노하우가 풍부한 현지 업체들은 해외 브랜드의 매출 부진과 운영 수익 악화를 용납해줄 정도로 참을성이 많지 않다.
실제로 지난해 이탈리아 데님 브랜드 「가스」나 휴고보스는 기존의 합자 파트너, 레이몬드가 계약 연장을 철회함으로써 급히 적당한 파트너를 찾지 못해 유통자체가 미지수에 빠지는 상황에 처한바 있다.
「구찌」 「칼빈클라인」 「프렌치커넥션」 「지미추」 「보테가베네타」 「라뻬를라」 등 유명 브랜드의 인도 시장 라이선스를 확보하고 있는 BMIL(Brand marketing India: 인도의 무르자니 가문의 패션 제국) 또한 지난해 「지미추」와 「보테가베네타」의 인도 내 라이센스를 포기하고 론칭 계획이 있던 란제리 브랜드 「라뻬를라」의 라이선스도 포기하면서 능력 있는 인도 로컬 파트너의 선택폭은 점점 더 좁하지는 추세.
인도 현지의 비싼 임대 비용과 규제가 심한 사업 환경 또한 인도 시장의 달콤함을 기대했던 서구 패션가의 어깨를 쳐지게 하는 부분이다.
서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들의 신천지로 사랑받던 인도 시장에 대한 조심스런 재평가가 이뤄지는 분위기다. 실제로 글로벌 불황을 경험한 인도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유동 자금 확보를 위해 대규모 쇼핑몰 개발에 적극적이지 않아 대규모 유통망 구축을 원하는 어패럴 업체들에게 제약이 되고 있는 것. 즉 인도의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면서 유통망 구축이 용이하지 않은데다 이를 흡수할 인도의 전통적 어패럴 인프라스트럭쳐 자체도 부족한 상태여서 인도 시장이 욕심나도 정작 날개를 펼칠 공간이 없다.
여기에 인도 시장에 진입하는 해외 브랜드들이 자체 유통망을 통한 브랜드 사업을 허용하지 않는 인도의 통상법까지 가미되면서 서구 브랜드들에게 인도 시장은 꼬이고 엉킨 거미줄 같은 상황이다.
토미힐피거의 성공적 안착이 시사하는 것
이런 와중에 토미힐피거 「켈클라인진스」 등 프리미엄 라벨이 인도 시장에서 호응을 얻고 있어 눈길을 끈다. 2004년 인도 시장에 입성한 「토미힐피거」는 어패럴 뿐 아니라 몸바이 홈텍스타일 업체 Creative Portico India와 라이선스를 체결, 홈텍스타일 및 퍼니싱 제품으로 시장 확대에 나섰는데 기존의 대형 유통몰 대신 델리, 뭄바이, 방갈로어 등 15개 숍인숍 매장 및 기존의 단독 쇼룸을 설치 더 많은 고객과 더 자주 접촉할 수 있는 기획을 마련했다.
현지 업체 Creative Portico India를 통해 인도 소비자들의 취향을 배려한 작품을 선정, 인도 현지 소비자의 특성에 맞는 제품을 유통시키는 영리함을 발휘하고 있다.
서구 럭셔리 남성복 브랜드들이 인도 시장 흡수력이 높다는 점도 인도 시장의 독특한 현상이다. 태생적으로 정통성과 혈통을 중시하는 습성, 그리고 뛰어난 색채감을 갖고 있는 인도 남성들은 전통 있는 럭셔리 브랜드에 민감하고 꾸미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 메트로섹슈얼한 디자인도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서구 럭셔리 남성복 브랜드들의 인도 진입은 여성복 보다 한결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실제로 조르지오아르마니, 까날리(Canali) 꼬르넬리아니(Corneliani) 겐조(Kenzo) 브리오니(Brioni) 팔찔레리(Pal Zileri) 제냐(Zegna) 등은 이미 인도 시장에서 남성복 매장을 오픈, 긍정적 매출을 거두고 있다.
결국은 기본에 충실해야
글로벌 경기불황이 계속되고 있는 지금,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와 매출을 구축해야 하는 서구 패션가에게 인도 시장은 결코 쉬운 상대는 아니다. 하지만 러시아와 중국 소비자들이 서구 어패럴 브랜드를 ‘분석’하고 ‘선택’하는 생각있는 소비를 시작하고 있는 지금 원자재 수출과 테크놀로지 발달로 충분한 소비력을 확보한 인도 시장을 외면하는 것은 가시가 두렵다고 장미를 외면하는 어리석은 선택에 불과하다. 결국 해답은 모든 시장 도전이 그러했듯 가장 기본적인 원칙현지 시장을 보다 면밀히 분석하고 현지 소비자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제품을 제공하는 것에 놓여있다.
예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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