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살면서 저지른 가장 큰 죄는 무엇일까? 언제나 탈출을 꿈꾸며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빠삐용이었지만 그의 꿈 속에 등장한 재판관은 빠삐용에게 ‘시간을 낭비한 것이 유죄’라는 평결을 내린다. 섬뜩한 진실이다. 똑같이 주어진 24시간, 12달, 그리고 365일이 누군가에게는 뜨거운 정열과 노력으로 충만하게 사는 시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의미 없고 소모적인 시간이라는 것. 이처럼 매년 새로운 달력 앞에서 설레는 기대감과 공포감을 동시에 느끼는 사람들에게 젊은 구찌의 전성시대를 일구며 화려한 조명을 받다 차갑게 버림받고 자신의 라벨을 론칭, 패션계의 중심으로 성공적으로 복귀하고, 이제 성공적인 영화 감독으로 또 다른 날개를 펼치고 있는 톰포드의 달콤한 시간 관리법은 손가락 사이로 시간을 흘려보내며 그저 ‘바쁘다’를 외치는 대다수의 사람에게 부끄러움과 자기반성을 유도한다.
강한 ‘싱글맨’ 톰포드
경영진과의 갈등으로 2004년 구찌를 떠날 당시 그가 영화계에 진출에 대한 욕심을 드러냈을 때만 해도 일각에서는 ‘톰포드의 허세’ 정도로 여기는 시각이 있었다. 실제로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혹은 영화에 출연한다는 무성한 소문과 달리 톰포드의 실질적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았고 고가의 아이웨어 라인이나 향수, 혹은 코스메틱 라인을 컬레보레이션 형식으로 론칭하며 ‘기존의 이미지에 편안히 묻어가며 돈을 버는 정도의 모양새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톰포드의 사랑은 결코 허세가 아니었다. 패션계로 방향을 돌리기 전 영화배우를 꿈꿨던 그는 성공적 여정을 이끌었던 구찌를 떠난 후 영화 제작사 ‘Fade to Black’을 설립했고 영화 ‘007 Quantum of Solace’에서 주인공 다니엘크레이그의 의상을 맡아, 미국적 미니멀리즘과 이탈리아 클래식을 접목시킨 테일러링 수트 350벌을 제작하며 디자이너 영화의 성공적 행로에 큰 기여를 했다. 또한 2009 베니스 영화제에서는 자신이 직접 감독한 영화 ‘A Single Man’으로 레드카펫을 밟으며 영화인으로서의 시작을 선언했는데 콜린퍼스, 쥴리안무어 등이 출연한 이 영화는 66회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후보로 지명되었을 뿐 아니라 주인공을 맡았던 콜린퍼스가 남우주연상을 탔으니 톰포드의 뛰어난 재능은 패션계에서 영화계에도 충분히 ‘통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실제로 영화계에서는 ‘A Single Man’이 가슴을 파고드는 아름다운 영화라고 칭찬했을 정도로 작품성이 뛰어나 관능적이고 도발적이었던 구찌 시절의 톰포드의 크리에이티비티, 그리고 울트라 럭셔리를 표방한 담대하고 대범한 그의 맨스웨어 컬렉션과는 다른 톰포드의 진솔한 면을 엿볼 수 있다는 평.
드라마틱한 삶, 패션과 영화 모두 품어
럭셔리 패션계와 영화계, 누구나 탐내는 두 분야에서 당당히 성공을 일궈낸 톰포드 그의 매력은 무엇일까? 유럽 출신 디자이너들이 럭셔리 하우스를 지배하던 당시, 카우보이 부츠와 셔츠, 청바지 차림으로 구찌에 진군, 뜨거운 미국적 크리에이티비티의 파워를 수혈했던 섹시한 남자 톰포드는 텍사스 오스틴에서 출생, 산타페에서 성장한 인물이다. 파슨스디자인 스쿨과 파리에서 건축을 공부하며 리차드기어를 잇는 영화를 배우를 꿈꿨던 그는 1990년 구찌(Gucci)의 여성복 디자이너로 자리를 잡았고 1992년에는 디자인 디렉터로 등극한 뒤 구찌의 모든 라인의 의류-향수 전반의 디자인을 지휘하는 전방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자리하며 유럽 패션가에 충격을 주며 패션가의 ‘핫 스타’로 떠올랐다. 남성과 여성을 모두 사로잡는 마초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용모, 관능과 정숙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특한 크리에이티비티, 카메라를 압도하는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헐리웃 스타만큼 요란한 스폿라이트를 받은 톰포드의 등장은 디자이너가 ‘핫 셀러브리티’로 등극하는 길을 닦고, 거만한 패션하우스의 부속품이 아닌 패션하우스를 ‘지배하는’ 파워풀한 디자이너의 가치를 알린 혁신적인 인물이기도 했다. 아직도 기억하는 ‘Gucci by Tomford’라는 문구에서 보듯, 톰포드는 노쇠했던 구찌에게 뜨거운 젊은 피를 수혈했던 인물이자 어떤 의미에서 디자이너를 하나의 부속품처럼 대했던 콧대 높은 경영진을 진압한 정복자이기도 했다. 실제로 톰포드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구찌 그룹의 광고와 이미지, 스토어 디자인을 모두 지휘한 인물로 패션계의 르네상스적 인물이었다. 그리고 디자이너가 경영진의 파워에서 벗어난 독립성을 가진 지휘자로, 패션 마케터로, 광고 제작자로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게 한 힘은 디자인이 갖고 있는 파워와 소통 능력에 대한 톰포드의 신념과 영화적 상상력이 풍부했던 매스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그의 관심이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처럼 톰포드의 특유의 매력이 구찌의 이미지에 투영되면서, 구찌=톰포드라는 공식이 성립되었고 요즘 패션가에 셀러브리티 마케팅이 매출을 구축하듯 톰포드는 자신의 디자인 크리에이티비티를 그 자신의 개인적 매력과 능란한 마케팅 능력, 그리고 매스컴을 휘어잡는 매력으로 구찌를 ‘갖고 싶은 럭셔리’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
메력적인 수퍼맨, 톰포드
톰포드의 진짜 힘은 2004년 구찌와 결별한 후 본격화된다. 바로 헐리웃 영화에 출연하게 된 것이다.
영화 감독으로 진출한다는 무성한 소문 속에서 다른 패션하우스의 영입 제안에 반응을 보이지 않던 그는 2005년 톰포드(Tom Ford) 브랜드 창설, 자신과 함께 구찌를 떠난 도미니크드솔레를 회장으로 선임하며 패션계 재 진군을 선언했고, 아이웨어 업체 마르꼴린(Marcolin)과 제휴 「톰포드」 선글라스/프레임을 생산,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매진 사례를 이룰 만큼 이름값을 톡톡히 확인했다. 이후 그는 스티로더와 손잡고 톰포드뷰티 브랜드를 론칭, 여성들에게 화려한 색체를 선사했고 톰포드 뷰티 라벨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자 톰포드 뷰티 라벨을 단독 론칭하며 사업 감각을 단련시켰다. 2006년 11월에는 울트라 럭셔리를 표방한 시그너쳐 향수 ‘Tom Ford Black Orchid’를 론칭, 강렬한 존개감을 각인시킨 후 2006년 2월 에르메네질도제냐 그룹과 제휴, ‘톰 포드(Tom Ford) 럭셔리’ 남성 레디투 웨어/ 맞춤 의류/ 풋 웨어/ 액세서리 라인을 통해 완벽하게 복귀했다. 여성복을 기대했던 사람들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고 초고가의 울트라 제냐 남성복으로 무장하고 그의 삶이 하나의 영화처럼 맨스웨어로 복귀한 그 순간은 그의 영화를 지켜보던 사람들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준 ‘반전’이었던 셈이다. 관능적인 구찌 여성 컬렉션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슬림한 실루엣에 정통 테일러드 감성을 섞은 에디슬레이만 스타일의 남성복 수트, 그것도 양말 한 켤레가 75달러, 파자마 한 벌만 1900달러를 상회할 정도로 울트라 럭셔리를 표방한 맨스웨어 컬렉션은 톰포드 특유의 관능미를 기대했던 사람들을 실망시킬 수밖에 없었던 것.
하지만 경솔할 정도로 높은 가격과 자만심에 가득 찬 컬렉션이란 악평에도 글로벌 마케티들은 톰포드와 앞다퉈 제휴를 요청했다. 톰포드는 맨하턴 매장을 필두로, 아시아와 러시아, 아랍에미리트까지 진군하며 성공적 패션 행보를 시작했고, 영화 감독으로 화려한 성공을 거둔데 이어 여성복 컬렉션 론칭 소식만으로도 뭇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다. 톰포드의 글로벌 네트워크는 밀라노, 모스크바, 취리히, 생모리츠, 홍콩, 쿠웨이트, 두바이, 카타르, 런던, 상파울로, 도쿄 등지로 이어지며 계속 성장 중이다.
예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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