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이 패션의 중심지로 성장하고 있는 것과 달리 뉴욕 Garment District(유명 패션 의류업체가 몰려있는 맨하턴 서쪽 34번가-43번가, 8th 애버뉴) 는 살아남기 위한 안간힘을 쓰고 있다.
Mercedes-Benz Fashion Week가 시작되며 화려한 조명이 런웨이를 비추고 있지만 1950-60년대 미국에서 판매되는 어패럴의 95%를 제조하며 전성기를 보냈던 가먼트 디스트릭트는 노동력이 싼 중국과 동남아시아에 시장을 빼앗기면서 고사 위기에 직면한 상태.
실제로 현재 가먼트 디스트릭에서 생산되는 미국 어패럴의 양은 5%에 불과하다. 이런 와중에 글로벌 불황까지 겹치면서 타이트한 재고 관리와 생산량 조절에 나선 미 어패럴 업체들의 수주 감소로 가먼트 지역 제조업체들의 절대 절명의 위기감을 느끼는 상황이다.

美, 위기 빠진 ‘가먼트 디스트릭트’ 재건 노력
가먼트 디스트릭트의 쇠락을 부채질 한 또 다른 요소는 1987년 뉴욕시가 타임즈 광장 인근 재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지대설정 법안을 수정, 이 지역의 공장을 사무실 용도로 전환할 수 있게 허용하면서 개발이 촉진되고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자 토지 소유자들이 공장 대신 더 높은 임대료를 받을 수 있는 사무실 임대에 집중하게 된 점이다.
따라서 제조업체들은 임대료가 높은 이 지역에서 공장을 유지하기도 힘들고, 미 어패럴 업체들 대다수가 값싼 해외 하청 제작으로 전환하고 있어 이래저래 제조업을 포기해 하는 상황에 몰린 것.
그나마 자본과 시장이 한정적인 젊은 디자이너들이 제품의 생산 수량을 즉각 조절할 수 있는 가먼트 디스트릭트에 일감을 가져오면서 이곳의 명맥은 이어지고 있지만, 갈수록 주문은 감소하는데다 가능한 한 ‘낮은 가격에 고품질’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의 욕구가 겹치면서 점차 Made in USA 상표를 단 미국 내 어패럴 업체는 도태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가먼트 지구에 둥지를 틀고 있는 제조업체들은 뉴욕시가 지대설정 법안을 철회하도록 로비를 펼치며, 적어도 일부 빌딩만이라도 ‘패션 지정 공간’으로 설정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뉴욕주가 패션 업계에서 거둬들이는 세금만도 연간 15억 달러가 될 정도로 패션 산업이 뉴욕 경제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가먼트 지구는 뉴욕 패션의 동맥과 마찬가지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최근 케이블 채널 HBO에서 방송된 “Schmatta: Rags to Riches to Rags”는 뉴욕 가먼트 디스트릭트의 성장과 몰락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미 어패럴 제조업체들이 당면한 어려움을 잘 드러내고 있다. 특히 가먼트 디스트릭트의 보존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제조업체들은 이곳이 미국 패션 업계의 산 증인일 뿐 아니라 미국으로 들어온 이민자들의 눈물이 녹아있는 곳으로 뉴욕시가 특단의 조치를 취해 가먼트 디스트릭트의 명성과 역사를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가먼트 디스트릭트 보존 노력은 노력에서 정치적,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제품의 단가를 낮추기 위해 시작된 해외 하청 풍토가 미국의 제조업 중심지를 벼랑으로 몰아낸 모양새가 된 아이러니 한 모습은 다시금 ‘경제 논리’란 말 속에 숨은 차가운 현실을 느끼게 만든다.
EU, 인권 문제 들어 스리랑카 하청 어패럴 제조업체 철퇴
미국이 가먼트 디스트릭트를 보존하기 위해 운동을 펼치고 있는 지금, EU 국가들은 값싼 노동력을 무기로 한 동남아시아 제조업체들의 공격에 맞서 유럽이 뭉쳤다. 유럽 공동체인 EU가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지 않는 스웻삽 공장을 운영하고 심지어 아동 노동력을 활용, 값싸게 의류를 제조해온 스리랑카에서 하청 생산된 란제리와 캐주얼 의류, 스포츠 웨어를 판매해온 NEXT, TESCO, Marks & Spencer 등의 리테일러들에게 해당 의류 반입을 금지시키기로 한 것.
EU 가입국들은 지난 4년간 2004년 쓰나미 발발로 고초를 겪는 스리랑카에 대한 지원책의 일환으로 수억 파운드 상당의 의류를 관세도 물리지 않고 수입해 왔는데 스리랑카 제조 하청 업체들의 인권 침해 사례가 확인되면서 스리랑카에서 제조된 의류는EU 시장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어패럴 업계의 스웻샵(sweat shop)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영국의 대표적인 하이스트리트 리테일러 톱숍(Topshop)이나 미국의 갭, 리바이스 등은 지난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동남아시아 하청 제조업체가 노동자의 인권을 착취하는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했다고 밝혀져 거센 비난에 직면한 후 해당 업체와 하청 계약을 끝내고 이미지 쇄신을 위한 캠페인과 사회운동을 벌인 바 있고 나이키와 아디다스 등 글로벌 패션/스포츠 어패럴 업체들도 노동자의 인권착취라는 ‘오명’이 불러올 이미지 실추를 당하지 않기 위해, 조금이라도 논란이 있는 하청 업체와는 재빨리 관계를 끊어왔다.
또한 환경운동 및 제3세계의 인권 보호 전사로 변신한 듯한 U2의 프론트맨 보노는 아예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환경자원을 보호하는 제품 생산 과정’을 내세운 어패럴 라인, Edun을 론칭, 스웻샵 논란을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처럼 여러 국가가 동시에 한 국가(스리랑카)와 어패럴 하청 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리는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번 결정의 밑바탕에는 어떤 이유가 깔려있는 것일까?
사실 이번 사태는 스리랑카의 타밀 분쟁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26년간이나 지속되어온 타밀 반군과의 내전을 종식시키는 과정에서 스리랑카 정부군이 반군에 대해 무자비한 인권 탄압을 가했고 이잃 가유럽 국가들이 스리랑카에서 제조된 어패럴 제품들의 수입을 금지시키게 만든 것.
표면은 노동자의 인권 침해, 속내는?
하지만 이로 인해 많은 스리랑카의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생계 현장을 잃고 어패럴 산업에 많은 부분을 의존해온 스리랑카 경제도 부정적 영향을 받게 된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는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즉 인권을 이유로 그간 유럽 어패럴 제조 업체 어패럴의 눈엣가시처럼 여겨왔던 ‘값싼 아시아 노동력’을 합법 방향을 맞추려 하는 음모라는 것이다. 즉 인권을 이유로 스리랑카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한순간에 빼앗아 버렸다는 것.
동시에 이번 결과로 어패럴 업체들의 제조가 인상이 발생하고, 낮은 단가로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또 다른 하청 국가를 찾아내야 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는 것은 모순이라는 주장도 있다. 따라서 이번 조치는 실질적인 하청 업체들의 ‘인권 보호’가 아니라 아시아 정치와 경제에 대한 입김을 강화시키려는 EU의 정치적 계산이 크게 작용했고, 값싼 노동력으로 서구 패션 업체들의 의류를 생산해온 여타 하청 국들에게 일종의 ‘경고’ 메시지인 셈이다.
실제로 EU 관리들은 스리랑카가 지난 5월 타밀 분쟁 종식 과정에서 발발한 잔혹한 범죄 행위를 조사하라는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스리랑카에서 제조, 수입되는 의류에 대한 GSP Plus(관세 혜택 제도)를 연장시킬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정치/경제적 압력이 뒤엉키면?
EU의 압박에 대해 스리랑카는 자국 내 어패럴 산업에 1억5000만 달러를 투자하고 유럽 대신 인도와 중국 등지에 수출을 늘리는 쪽으로 이번 문제를 해결하려는 입장이지만, EU가 스리랑카에서 제조되는 어패럴의 52%를 수입하는 가장 큰 시장이어서 고민이 깊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정치·경제 논리가 뒤엉킨 서구의 불편한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즉 서구 어패럴 업체들이 가난한 하청 국의 제조업체들에게 더 낮은 단가를 외치기 때문에 하청 노동 환경은 더욱 취약해질 수밖에 없는데 인권 착취 논란이 일어나면 자신들은 결백한 양 재빨리 자세를 바꾸고 정치/경제적 압력으로 이를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글로벌 불황으로 많은 유럽 내 어패럴 제조업체들이 문을 닫거나 노동력이 싼 중국과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공장을 옮기는 현상이 늘면서 직장을 잃게 된 유럽 노동자들의 마음은 아시아 노동력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내재해 있다는 설명도 설득력이 있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단순히 스리랑카 어패럴 제조업체들의 인권 착취 문제 뿐 아니라 아시아에 생산 공장을 빼앗긴 유럽 노동자들의 상실감과 아시아 시장에 대한 정치적 입김을 강화시키려는 EU의 전략이 뒤엉킨 한편의 드라마라 할 수 있다.
예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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