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그대, 에르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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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0 오후 5:42:45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의 메신저이자, 제우스의 아들인 에르메스는 날개 달린 모자와 신발, 그리고 뱀이 둘러싼 지팡이를 들고 마치 인간의 눈에는 볼 수 없는 빠른 속도로 바람처럼 날아다닌다.

그 속도가 너무나 빨라 ‘투명 인간’처럼 여겨질 정도인 에르메스(Hermes)는 상인의 수호신이면서, 동시에 도둑의 수호신이기도 한 이중적 속성으로 신비감을 더하는 존재이다.

이름이 주는 우연일까, 혹은 필연일까? 전 세계를 우울증에 빠지게 한 금융위기 속에서도 넘보기 힘든 매출 구축과 수익 탄력을 이뤄내며, 평범한(?) 브랜드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패션하우스 에르메스의 위엄과 위상은 대다수의 보통 사람과는 다른, 별개의 영역에 살고 있는 듯 하다.

하긴 글로벌 불황이 많은 업체들의 적자로 몰아내도 버킨백의 웨이팅 리스트는 점점 더 길어지고, 에르메스 매출은 타격하나 받지 않고 있다니 럭셔리 브랜드 에르메스는 상인의 수호신 에르메스의 애정을 톡톡히 받고 있는 듯도 하다.





귀족 브랜드의 귀족 파워


1987년 티에리에르메스가 그 자신의 성을 딴, 마구용품을 제작하면서 문을 연 에르메스는 수작업으로 제작된 고품격 마구로 글로벌 로열 패밀리와 귀족들에게 호평 받으며 시작부터 일찌감치 ‘평범한 소비자’와 다른 고객들과 친근한 관계를 쌓아간다.

귀족 문화라는 승마에 뿌리를 두고 귀족적 삶과 친숙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속성(!)을 감안하면 버킨 백 구입을 일종의 ‘경제적 상징’ 혹은 ‘신분적 상징’으로 인식하며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차례를 기다리며 애를 쓰는 요즘상황은 일찌감치 예견된 일인 듯도 싶다.

에르메스 매장의 오픈 유무에 따라 그 나라의 국민소득을 가늠할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1997년 첫 번째 매장을 오픈한 데 이어 2006년 도산공원 근처에 거대한 규모의 플래그십 매장, ‘메종에르메스부띠끄’가 문을 연 한국은 에르메스가 매력을 느낄 만큼 경제력과 소비력을 갖춘 큰 시장인 셈이다.

물론 에르메스 백의 가격대가 높은 이유가 일반 가죽이 아닌 타조 가죽/악어 가죽 등 이국적 가죽을 사용하고 에르메스 하우스의 정통 가죽 장인들이 일일이 수작업을 통해 제작할 뿐 아니라 귀족들의 마구 용품을 제작할 때 사용하던 특유의 새들 스티칭 기법이 도입된 백이라서 대를 물려도 좋을 만큼 품격과 내구성이 갖춰진 점은 확실하다.

즉 일시적 유행에 민감한 트렌디 백이 아니라 ‘브랜드의 정통성과 역사성, 옹골찬 장인 기술 그리고 상류층의 이미지가 가미된 브랜드 이미지가 글로벌 불황에도 위축되지 않는 파워의 핵심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힘든 사실.


은근한, 우연한, 혹은 필연적인 귀족 마케팅

에르메스를 신화로 만든 배경 속에 은근한 셀러브리티, 혹은 귀족 마케팅이 한 몫을 한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자신이 유명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 ‘버킨 백’을 구입했을 때라고 인터뷰에서 밝혔던 유명 모델처럼 성공한 여성들의 곁에는 늘 버킨 백과 켈리 백이 함께 한다.

컬러별로 버킨백을 갖고 있다는 디자이너 베라왕이나 다양한 컬러는 물론 각기 다른 가죽 소재의 버킨 백을 모두 구비하고 있다는 빅토리아베컴, 키모라리시몬즈, 패리스힐튼 등은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여성들의 질투를 사기에 충분하다.

사실 버킨 백은 1984년 파리지안 쉬크의 대명사, 제인버킨의 스타일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탄생부터 ‘셀러브리티’와 밀접한 제품이며, 1956년 모나코 왕비 그레이스켈리가 들어 유명해진 켈리 백이나 부러진 그녀의 팔을 감쌌던 에르메스 스카프 또한 우연인지, 필연인지 셀러브리티 이미지와 오버랩된다.

세기적인 패셔니스타 오드리헵번이나 재클린케네디, 팝의 여왕 마돈나가 에르메스 백의 열렬한 애호
가인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이 밖에 패셔니스타로 불리는 할리우드 말썽장이들 -니키힐튼, 린제이로한 등 젊은 셀러브리티들이 자유분방한 보헤미안 스타일에 잠그지 않은 에르메스 백을 들고 다니는 일은 파파라치 사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불황 비웃듯 오히려 유통망 확대 주력

한편 에르메스는 올해 수익 예상치를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잡아, 새들 스티칭만큼이나 강한 내구성을 과시하고 있다. 패션계를 강타한 글로벌 불황으로 여타 럭셔리 브랜드로 매출 하락을 기정 사실화 하고 있는 지금 에르메스가 지난해와 비슷한, 혹은 더 나은 수익을 확신하는 이유로 1/4분기 매출이 +12% 상승하며 불황과 상관없는 강한 탄력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럭셔리 브랜드들이 부자조차 지갑을 단속하고 나서면서 매출 부진을 경험하고 있지만 에르메스는 고가의 핸드백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호주에 직영 악어농장까지 운영하고 있을 정도로 불황의 타격을 전혀 입지 않고 있는 상황.

물론 고급 테이블 웨어와 시계 매출이 하락하긴 했지만 핸드백/러기지 수요가 증가하고 미국과 일본 시장이 각각 1.4%, 0.4% 매출 상승을 기록하면서 긍정적 결과를 얻었다. 이쯤 되자 글로벌 불황이 진정한 럭셔리 브랜드를 판가름 내는 결정타가 되었다는 분석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한편 지난 상반기 전체 매출을 살펴보면 -4% 매출 하락을 경험한 일본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매출이 9% 상승했고, 패션 액세서리와 가죽 제품이 꾸준한 강세를 유지한 반면 향수 부문의 매출은 하락세를 피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금융 불황의 진원지라 할 미국 시장의 전체적 럭셔리 수요가감소했음에도 에르메스의 수요는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에르메스의 브랜드 파워를 제대로 확인되는 분위기.

또한 불황에 버이어들이 몸 사림을 한 탓에 도매 매출은 같은 기간 -22% 줄었지만 최종 소비자를 상대로 한 소매 매출은 상승세를 놓치지 않아, 에르메스의 고객은 경기 흐름에 민감한 ‘일반 럭셔리 구입자’들과 차별적인 경제적 기반을 갖고 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실제로 도매 매출 하락의 원인은 불황에 타이트한 재정집행을 하고 있는 스페셜티 유통 매장이 주문량을 줄였기 때문으로 에르메스가 자사, 혹은 직영 매장 유통망 확장에 주력하고 있는 이유도 도매와 달리 경기침체에도 파워를 놓치지 않은 소매 매출을 더욱 촉진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에르메스는 지난 6개월 동안 미국에 2개의 지사, 한국과 영국, 중국에 각 1개의 지사를 오픈하며 유통망 확장을 진행하는 파워를 과시한 바 있다. 그룹 전체 매출의 19%를 담당하지만 글로벌 불황에 강한 내구성을 보인 소매 매출의 주역, 직영 매장의 파워를 제대로 확인한 에르메스는 유통망 확충을 장기적 전략의 1순위에 놓고 올 하반기에 아시아와 미국 등지에 10개 매장을 오픈하고, 기존의 매장을 리노베이트 할 계획을 세워놓았다. 특히 지난 30년간 적절한 로컬 파트너를 찾지 못해 매장 오픈이 지연되는 브라질, 상파울로에 드디어 첫 번째 매장을 오픈하게 되어 어패럴 업계가 주목하고 있는 브라질 시장공략을 위한 기지 마련에 성공했다.

올 9월 중 상파울로의 업스케일 백화점, Cidade Jardmin 쇼핑몰에 들어설 에르메스 매장은 169m²의 규모에 에르메스의 영원한 베스트셀러 켈리백과 버킨백은 물론 슈즈/쥬얼리/액세서리 등 14개 라인이 비치되며 브라질 경제의 탄력성과 환율의 이점, 또한 수입품을 좋아하는 브라질 소비자들의 성향에 따라 에르메스의 매출에 긍정적 결과를 더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상파울로 매장은 루이비통 매장의 맞은 편에 있어 글로벌 불황에도 도도한 브랜드 파워를 과시했던 두 럭셔리 하우스의 흥미로운 경연이 기대된다.

럭셔리 시장의 꿈의 경연장인 중국 시장의 경우 조만간 4개 매장을 추가 오픈할 계획이었지만 유통망 다변화와 시장 흐름을 좀더 지켜보기 위해, 또한 보다 효율적인 재정 집행을 위해 2개 매장 오픈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에르메스의 글로벌 매장 수는 2004년 이후 꾸준히 늘어 지난 연말 현재 286개로 급증했다.


꿈의 브랜드

혹자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고급 명품이라는 이미지로 럭셔리 업계에서 조차, 계급차를 만드는 에르메스의 위상이 지나치게 위압적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명품 시장이 점점 더 세분화되고 명품 소비 계층도 보다 다양화되는 만큼 가격에 따른 브랜드의 서열화, 혹은 계층화는 어떤 면에서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행위라는 점은 분명하다.

물론 모든 여성들이 그레이스켈리나 패리스힐튼의 부와 명예를 타고 나진 못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욕망과 아쉬움, 그리고 약간의 허영심이 기폭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럭셔리(Luxury)의 속성이 아닐까?

예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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