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증시 활황으로 사모펀드들이 잇달아 패션 사업에 뛰어들 때 제기됐던 위험 경고등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돈 되는 사업을 찾아 단기간에 치고 빠지는 식의 투자로 수익을 창출하던 사모펀드들이 자금 경색에 몰리면서 패션 사업에서 서둘러 손을 빼거나 다른 매입자를 찾아 나서고 있는 것.
애초에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는 투자자 마인드를 갖고 있는 사모펀드들은 당초 예상했던 것처럼 패션 사업이 쉽지 않고, 특히 오뜨꾸튀르 하우스의 경우 화려한 외양과 달리 매출이 한정된 약점을 깨닫자 서둘러 투자자금을 회수하려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사모펀드들의 풍부한 자본력이 유통망 확장과 패션하우스 성장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던 패션계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패션 사업의 속내를 알지 못한 채 사업에 뛰어들었던 사모펀드마저 극심한 부채 부담에 내몰리고 있어, 화려한 외양과 달리 내실이 부실한 일부 패션하우스들의 반성이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와중에 페미닌한 레드카펫 드레스로 유명한 이탈리아 패션하우스 발렌티노(Valentino)가 부채 연장을 위해 은행들과 재협상을 펼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2007년 사모펀드 페르미라(Permira)에 530억 유로에 인수된 발렌티노는 UniCredit, Mediobanca, Citigroup 등 7개 투자은행에 올 여름까지 갚아야 할 25억 유로의 부채를 지고 있는데, 이들 은행이 채무불이행 상황을 피하기 위해 발렌티노에게 부채 상환 기간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페르미라가 발렌티노를 인수하는데 투자한 26억7000 유로는 사모펀드의 럭셔리 하우스 인수 역사상 최대 금액이었다. 그런데 발렌티노 패션 그룹의 얼굴이라 할 발렌티노가 지속적 매출 부진에 시달리고, 발렌티노 패션 그룹의 매출 75%를 담당해왔던 휴고보스가 지난해 매출이 27% 하락하면서, 자본압박이 심해졌고, 페르미라의 최대 투자자 SVG 캐피탈 PLC는 지난해 말 발렌티노에 대한 투자를 전년 대비 50% 삭감하며 자금 보전에 나섰지만 당장 갚아야 할 부채 문제는 여전히 골칫거리로 남아 있다. 지앙프랑코페레가 법정 파산보호 신청에 돌입했고, 연이은 주식상장 실패로 유동자금 압박에 시달려온 프라다도 은행과 부채 상환일자를 연장하는 등 이탈리아 패션계는 ‘돈’ 문제로 뒤숭숭한 분위기이다.
예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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