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그 냉정과 열정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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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윔블던 패션

2009-07-06 오전 10:09:25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린 영화 ‘전망 좋은 방(A room with a view)’은 도도한 영국식 액센트 만큼이나 강하고 유머러스한 테니스 코트 장면이 영화의 즐거움을 더한다.

작가 E,M 포스터의 작품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미국식 ‘자유와 열정’과 영국식 ‘형식과 절제’의 충돌이 가져온 경쾌한 ‘균열’을 표현하고 있다.

전통적인 영국의 상류층과 거리가 먼 철없는 프레디(여주인공 루시의 남동생)와 루시를 사랑하는 미국 남자 조지가 화이트 셔츠 + 베이지 팬츠, 블루  스트라이프 서스펜더 차림의 쉬크한 모습으로 제멋대로 공을 치는 장면은 매우 유쾌하고 파워풀한 에너지가 가득하다. 테니스 코트의 붉은 흙과 선명히 대비되는 화이트 셔츠, 그리고 두 남자의 넘치는 에너지가 열기를 더하는 이 장면은 ‘강요된 절제의 틀’속에서 고민하던 여주인공의 감정을 순식간에 깨뜨리는 도화선이 된다.


때론 뜨겁고, 때론 차가운 화이트

화이트 컬러는 이 영화 속에서 주인공의 감정을 표출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자리한다. 피렌체 시골의 몽환적인 보리밭에서 조지와 첫 키스를 나누었을 때 루시는 눈처럼 순결한 화이트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조지와 다시 피렌체를 찾은 마지막 장면에서는 뜨거운 열정이 숨어있는 흐트러진 화이트가 화면을 채운다.

또한 프레디의 화이트 수트가 건강한 열정과 순진한 장난 끼를 담고 있는 경쾌한 화이트라면, 형식과 허세를 벗지 못하는 세실(루시의 약혼자)의 화이트 수트는 자로 잰 듯 갑갑한 ‘규제’의 화이트였고, 받아주지 않는 사랑에 애가 탄 조지의 흐트러진 화이트 셔츠는 욕망과 젊음이 뒤엉킨 반항적인 화이트였다. 같은 화이트이지만 각기 다른 성격이 담기는 변화무쌍한 컬러 화이트, 냉정과 열정을 함께 담은 화이트가 2009 윔블던에서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2009 윔블던 패션 키워드 - 모던 밀리터리

지난해 점잖은 아이비리그 풍 크림 빛 카디건을 착용, ‘클래식한 품격이 느껴 진다’는 평과 ‘노티 나는 아버님 스타일’이라는 혹평을 동시에 받았던 로더페더러는 올 해 긴 화이트 사파리 재킷과 롱 루즈 트라우저, 웨이스트코트를 곁들어 윔블던의 ‘경기병’을 연상시켰다.

실제로 그는 지난해 크림 컬러에 골드로 액센트를 준 스웨터에서 보듯 자신의 이니셜 ‘RF’를 재킷 포켓마다 골드 컬러로 새겨 넣어 골드 RF를 아예 자신의 상징으로 굳히는 듯한데, 웨이스트 코트와 트라우저를 벗고 골드 트림으로 살짝 ‘포인트’만 준 심플한 테니스 웨어를 입고 등장, 경기장에서는 실용성을 잊지 않은 것도 눈에 띤다.

반면 영국의 희망 앤디머레이는 점잖고 트레디셔널한 프레디페리(Fredy Perry)의 자켓을 입고 등장, 품격을 더했는데 우연찮게 프레디페리는 윔블던에서 우승했던 마지막 영국 선수, 프레드페리와 이름이 같아 승리에 대한 앤디머레이의 야심을 엿볼 수 있었다. 일찌감치 2회전에서 탈락, 실망을 준 마리아샤라포브 또한 밀리터리풍 나이키(Nike) 재킷을 곁들어 매스큘린한 절제미를 강조하는 분위기였다.

샤라포바는 지난해 윔블던 대회에서도 테일러드 숏팬츠와 홀터넥 플리티드 베스트, 장식 벨트가 달린 화이트 크롭드 자켓을 입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이번에 2회전에서 탈락, 적어도 샤라포바의 경기력이 노출이 심한 옷차림일 때가 월등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백화점에 입고가도 될 듯한 화이트 크롭드 재킷과 테일러드 숏팬츠/와이드렉 팬츠 + 5000달러 상당의 티파니 다이아몬드/플래티넘 귀걸이를 착용, 상류층 자제의 ‘럭셔리한 외유’ 분위기를 뽐냈던 그녀는 올 윔블던에서는 홀터넥 테니스 드레스 위에 밀리터리풍 벨티드 자켓을 착용, 요트 여행을 떠날 듯한 분위기를 구성, 패션 욕심을 조금 절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영국 선수 조지아스툽은 프릴이 겹치는 레이어드 스커트를 통해 사랑스러움을 표현했는데 포핸드 스윙을 할 때마다 팔락이는 프릴 스커트 안에 입은 짙은 붉은 팬츠가 드러나 순결과 관능이 뒤섞인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평.

테니스코트의 패션화를 주도한 장본인 세레나 윌리엄스 선택 또한 미니트렌치 코트와 플레어 스커트로 화려한 컬러와 경쟁적인 노출이 주도하는 US오픈과 달리 윔블던 대회에서 만큼은 ‘몸을 가리는데’ 치중한 모습인데 그녀는 작년 윔블던 대회 때도 60년대 풍 화이트 미니트렌츠 코트를 입고 등장한 바 있어 남들은 피크닉 가는 간호사 같다고 조잘대도 그녀만큼은 뭔가 레이디라이크(Ladylike)한 화이트 트렌치코트에 상당히 매료된 것이 확실하다. (세레나윌리엄스는 패션 라벨 ‘Aneres’(세레나의 철자를 거꾸로 쓴 것)을 론칭, 패션 사업를 진행하고 있다.)

이밖에 세르비아 출신의 양코이프자레비치는 윔블던 드레스코드에 맞는 심플한 화이트 티셔츠와 쇼츠 위에 화이트 프레임 고글로 포인트를 주어 패션보다는 경기 본연에 충실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테니스 선수가 패션이 아닌 ‘실력’으로만 평가되던 지난 1980년대에 비하면 상당히 패션에 신경을 쓴 것으로 스웻밴드와 트랙 수트의 파이핑 컬러를 매칭시켰던 매켄로나 모델을 능가하는 외모를 자랑했던 비욘보그가 미니 쇼츠를 입고 등장해하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되었던 80년대와 비교하면 지금의 윔블던은 패션 런웨이로 불러도 무방하다.

정리하자면, 2009 윔블던 패션의 핫 트렌드는 모던 밀리터리 룩으로 어찌보면 테니스가 클래식한 상류층 스포츠의 대명사이고 시대가 바뀌어도 화이트 복장 코드를 고집하는 124년 전통의 윔블던 대회의 ‘복장 코드’를 감안하면,  화이트 컬러의 밀리터리 재킷이나 트렌치 코트는 ‘절제와 품격’을 중시하는 윔블던 구장에 어긋나지 않는 패션 크리에이티비티를 표출한 ‘타협적 변혁’이라 봐도 좋을 듯 하다. 

윔블던 패션 런웨이의 진정한 승자는 나이키(Nike)라는 점에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테니스 황제 로더 페더러와 테니스코트의 톱 모델, 마리아샤라포바를 확보하고 있는 나이키는 그 자체만으로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특히 지난해 너무 ‘점잖았던 카디건 룩’에서 벗어나 컨템퍼러리하면서도 스타일리쉬한 수트의 향기가 느껴지는 페더러의 밀리터리-사파리 룩은 윔블던을 통해 나날이 패셔너블 해지는 나이키의 감각을 엿보는 기회가 되었다.

스탠드업 컬러와 골드 컬러의 지퍼, 그리고 골드 RF 로고가 절제된 품격을 자랑하는 페더러의 자켓은 화이트+골드 남성 남성용 백이 함께 구비되어 칵테일 파티용으로도 부족함이 없었다. 다만 날씨가 너무 더워 경기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그가 구슬땀을 떨어뜨렸다고 하니 테니스 코트의 모델 노릇(!)도 쉬운 일은 아닌 듯.


패션과의 상업적 제휴…일종의 브랜딩

이처럼 스포츠와 패션의 상업적 제휴가 가속화되는 지금, 스포츠가 패션에 종속되는 부작용이 일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즉 스포츠를 패션으로 ‘포장’하는 모습은 본래의 스포츠 정신과 어긋난다는 것.

하지만 “선수의 능력이 곧 상업성으로 직결되는 현 상황 속에서 스포츠 선수를 이용한 패션 마케팅은 어패럴 업계에서 놓치기 힘든 달콤한 기회가 아닐 수 없고, 선수들 역시 ‘스포츠의 틀’에 머무르는 대신 자신의 상업성을 펼칠 기회를 적극 수용하고 있어 단순한 ‘도덕적 논리’로 스포츠와 패션의 상업적 결합을 비판하기는 무리가 있다.

실제로 여전히 셀러브리티로 높은 인기를 누리는 안나쿠르니코바의 생명력을 볼 때 언제라도 ‘경쟁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선수들에게 그들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주는 패션의 힘은 매우 매력적인 장치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윔블던 대회에서 일찌감치 고배를 마신 마리아샤라포바가 여전히 패션계의 ‘핫 셀러브리티’로 높은 몸값을 자랑하는 것은 그만큼 그녀가 자신을 ‘브랜딩’하는데 성공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예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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