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라크로와'…결국 파산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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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5 오후 5:30:06






안타까운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지난 몇 년간 매출 부진과 자금 압박에 시달려온 패션하우스 「크리스챤라크로와」가 파산신청을 한 것이다.

1980년대 예술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푸프 드레스로 명성을 얻었던 크리스챤라크로와는 지속적인 매출 부진과 유동성 압박, 글로벌 불황이 겹치면서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파리 상업법원에 자발적인 파산신청서를 제출했고, 조만간 법원에서 라크로와를 청산할지 리스트럭쳐링을 진행할지 결정된다. 만약 크리스챤라크로와가 완전 청산되는 상태가 된다면 파리 꾸튀르의 전성기를 열었던 입셍로랑을 잃었던 파리 패션가는 또다시 큰 충격에 휩싸일 전망이다.

크리스챤 라크로와의 CEO 니콜라스코피욜은 법원의 판결이 진행되는 동안 평상시와 다름없이 라크로와의 운영은 정상적으로 이뤄진다고 단언했지만 파산신청 소식이 전해지면서 ‘수익지상주의‘를 주창하는 럭셔리 비즈니스에 대한 회의감이 패션계를 휘감고 있다.


수익 중심 사업 모델의 빛과 그늘

1987년 현재의 LVMH(모에헤네시루이비통) 수장 베르나르아르노가 럭셔리 패션 사업의 가능성을 감지하고 오뜨꾸뜨르 사업을 시작으로 레디투웨어/액세서리/향수 등 럭셔리 비즈니스를 확대하면서 럭셔리 브랜드들은 일종의 ‘대기업 내 산하 브랜드’ 식 구조로 모이기 시작했고 크리스챤디올과 샤넬은 체계적 경영지원 아래 높은 수익을 낳는 블루칩으로 자리했다.

하지만 크리스챤라크로와는 비평가들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수익 창출은 커녕 기존의 수익조차 보존하지 못해 2005년 LVMH의 그늘을 떠나 Falic Group으로 매각되었고 Falic Group은 전성기 시절의 럭셔리한 라크로와의 이미지를 되살리기 위해 편안한 가격대의 어패럴 라인과 데님 라인을 의도적으로 열외 시키는 강수를 두었다.

문제는 글로벌 불황이 시작되면서 럭셔리 마켓이 타격을 받게 되자 가뜩이나 취약한 크리스챤라크로와가 미처 제 모습을 갖출 기회조차 갖지 못하게 된 것. 상황이 악화되자 Falic Group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재정 지원자나 투자자, 혹은 인수자를 찾아나 섰지만 글로벌 불황의 여파로 매력이 떨어진 럭셔리 하우스를 선뜻 구매하려는 투자자가 나서지 않아 결국 파산신청까지 이르게 되었다.

(실제로 뉴욕과 라스베가스에 문을 연 라크로와 매장의 경우 버이어들의 주문이 삭감되거나 취소되었고, 올 가을 시즌 레디투웨어 주문도 35%나 하락한데다 2008년 적자액만 1400만 달러에 달하는 등 패션하우스 크리스챤라크로와의 입지는 매우 불안한 상태)

사실 라크로와가 파산까지 몰리면서 럭셔리 사업의 ‘안정성’에 대한 회의론은 노골화되고 있다. 당초 미국 발 불황의 신호탄이 울렸을 때만해도 럭셔리 마켓은 ‘금융혼란과 경기 불안도 거뜬히 감내할 수 있는 손 큰 소비자’를 확보하고 있어 수익 타격이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라는 낙관적 시각이 나왔었지만, 경기불안이 본격화된 지 1년이 안 된 지금 베르사체, 에스까다, 질샌더, 알렉산더맥퀸은 물론 구찌, 버버리 등 관록을 자랑하는 럭셔리 패션하우스들도 수익 하락의 화살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영국의 자존심 버버리는 수익 하락이 유통망 확장 투자 비용가 환차손에 따른 ‘단기적 하락’이라 분석하고, 구찌는 중국과 아시아 신흥시장이 활성화되고 있어 다소의 매출 하락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태연한 모습이지만 매출부진이 파산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라크로와의 전례는 럭셔리 업계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하다.

‘전통과 디자인 크리에이티비티’를 무기로 역사를 이어온 럭셔리 하우스들이 ‘수익’과 ‘경쟁’이라는 현대 시장 환경 속에서 ‘전통과 크리에이티비’로만은 버틸 수 없는 ‘매출압박’의 두려움을 절감하고 있는 것.

특히 전문경영인 지안까를로디리시오를 영입, 벼랑 끝에서 겨우 벗어 나는가 했던 베르사체가 ‘사업방향과 마케팅 투자’에 대한 견해차이로 베르사체를 떠나려 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패밀리 형태’로 운영되어온 럭셔리 하우스들, 소규모 이탈리아 패션하우스들은 글로벌 위기와 함께 ‘체계적인 경영 마인드’ 부족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올 1분기 수익이 13% 하락해 우울한 베르사체는 CEO 지안까를로리시오가 제안한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3개년 전략’을 확인하며 디리시오와의 결별설을 부인하고 있다)


오뜨꾸튀르 하우스의 몰락

어떤 면에서 크리스챤라크로와의 몰락은 변화되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작고 고집스런 오뜨꾸튀르 하우스의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핵심 브랜드를 꼭지점에 두고 다수의 브랜드를 인수, 피라미드식으로 복합 브랜드 제국을 건설한 LVMH나 PPR(구찌그룹의 실소유주), 프라다나 전문적인 부문 확장으로 탄탄한 제국을 건설한 아르마니처럼 수익 중심의 시장 체제에 완전히 노출된 지금의 럭셔리 마켓에서는 기업적 의식과 사업모형, 그리고 전문적 투자와 유통체제가 구축되지 않는 한 살아남기가 힘들다.

다시 말해 전통을 내세운 패밀리 비즈니스 형태의 럭셔리 하우스나 한 사람의 꾸튀리에가 단기적 시작으로 사업을 지휘하던 전통적 오뜨꾸튀르 시스템이 설 자리가 없어지고 전문적인 경영 마인드와 치밀한 브랜드 확장전략을 진행할 수 있는 전략가, 사업가적 마인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 된 것. 일례로 아르마니는 브랜드의 위상을 더욱 끌어올리고 셀러브리티와 상류층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아르마니프리베(Armani Prive) 꾸튀르 라인을 론칭하는 영리함을 보이고 있다.

오뜨꾸튀르 하우스가 위기에 몰린 지금 오히려 오뜨꾸튀르 고객을 유치하는 아르마니의 모습은 시장을 읽는 전략적 분석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다시 말해 확고한 브랜드 인지도를 바탕으로 각 부분을 ‘독립적 가치와 타겟을 둔 독립적 브랜드’로 확대시켜 글로벌 마켓을 포섭하고 있는 조르지오아르마니처럼 디자이너와 전략가, 사업가적 면모를 모두 갖춘 르네상스적 디자이너가 아니라면 어패럴 시장과 유통 부문의 노하우가 충분한 전문 경영인을 영입, 시장의 흐름을 읽는 효율적인 사업환경과 전략을 절박한 상황이다.

동시에 과거 충실한 고객을 중심으로 움직였던 오뜨꾸튀르 하우스들이 할리우드 패션하우스들에 의존한 마케팅에 매출을 의존하는 기묘한 상황에 처하고, 변덕스런 트렌드 만큼이나 변화무쌍한 고객들의 브랜드 충실도가 약해지면서 시장의 흐름에 능숙한 공격적 경영을 펼치는 젊은 패션하우스와 디자이너들의 약진은 시대를 읽지 못하면, 도태되고 만다는 적자 생존의 원칙을 절감하게 한다.

이제 지난 5월 프랑스 왕족 출신의 장드프랑스의 신부, 필로메나 드 토르노스의 가운이 크리스챤라크로와의 작품이었고 얼마나 높은 신분의 여성이 크리스챤라크로와의 고객인가라는 사실보다는, 또 그가 에어프랑스의 유니폼을 디자인하고 호텔과 프랑스 고속철 TGV의 데코레이션을 지휘한 감각적인 디자이너라는 사실보다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라크로와의 가운을 구입했고 얼마나 높은 매출을 올렸는가?’라는 사실이 수익 중심으로 재편된 럭셔리 마켓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 것이다.


파리는 이제 어디로

실제로 2002년 패션계에 미친 공로를 인정받아 레종도뇌르 훈장을 받고 올 7월 꾸튀르 시즌에 맞춰 프리젠테이션을 기획하고 있는 디자이너 라크로와가 명예로운 퇴장이 아니라 도태되는 모습으로 비쳐지는 것은 패션의 중심가로서의 위상이 이전 같지 못한 파리 패션가의 쓸쓸함을 더하고 있다.

하지만 크리스챤라크로와가 파산신청에 나설 만큼 절박한 상황에 처한 것은 결국 시장의 흐름에 재빨리 적응하지 못한 오뜨꾸튀르 하우스들의 실태를 드러낸 것으로서 무한경쟁에 돌입한 럭셔리 시장의 힘겨운 현실을 다시금 절감케 한다.



예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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