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키니는 여자의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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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9 오후 11:17:09




여성의 노출이 미덕이 되는 시즌이 다가온다. 글로벌 불황의 탓인지 유난스레 미니 스커트와 울트라 숏팬츠, 클레비지를 강조하는 루즈한 네크라인의 탑이 트렌드를 깊숙이 파고 든 지금 보여줄 것보다 숨겨야 할 부분이 많은 체형의 여성들은 노출을 부추기는 트렌드가 심히 얄밉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올 여름 시즌에는 문자 그대로 수퍼 모델급 여성들도 지극히 조심해서 입어야 할 듯한 아슬아슬한 노출을 유도하는 마이크로 비키니가 포진하고 있다니 비키니 공포증 있는 대다수의 여성들은 그저 한숨이 나올 상황.

몸매 관리를 제대로 한 여성들에게는 “10점 만점에 10점”을 받을 수 있는 자부심의 표식이지만 대다수의 여성들에게는 그냥 멀찌감치 밀어놓고 싶은 존재인 비키니-여성을 타깃으로 한 아이템이 틀림없지만 그 어떤 패션 상품보다도 여성의 자존심을 있는 대로 구겨놓는 이중성을 갖고 있는 비키니, 그 속에 숨어 있는 욕망은 과연 어떤 것일까?


비키니, 페미니즘의 산물일까?

여름을 맞는 여성들의 부담 100배 아이템, 비키니가 공공장소(해변이나 수영장)에서 허용되기까지 수많은 사회/정치/종교적 억압이 타파되어야 했다는 점은 비키니가 여성의 신체의 자유를 허용한 ‘개혁적’ 아이템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실제로 남성의 지배력이 강한 시대-특히 중세-에 여성들의 노출은 곧 범죄로 여겨지고, 노출을 즐기는 여성은 저급한 여성이나 혹은 하층 계급의 여성으로 취급되었다는 점은 남성이 여성의 신체를 가두고 지배하려는 성향을 입증하는 증거가 된다. (흥미롭게도 남성과 여성간의 계급관계가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고대시대의 여성들-혹은 여신-자유로운 노출을 허용 받는 존재로 묘사되었고 수영과 목욕을 즐겼던 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수영은 쇠퇴하고 여성의 수영복은 일종의 사회악, 혹은 금기되는 경향을 보였다.)

그 결과 18세기 여성들은 아무리 더워도 팔과 다리를 드러내는 것은 언강생심, 물에 뛰어들어도 옷이 젖지 않는 초강력 패브릭으로 제작된 롱드레스형 목욕 가운을 입고 은밀한 신체 부위나 몸매의 곡선이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철저히 숨기는 강박적 ‘노출 봉쇄전’을 치러야 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비키니는 노출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시달려온 여성들이 자신의 신체를 통제하며 자신감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사회 도전적인 패션 스테이트먼트를 품고 있는 아이템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태생적 배경에서 뭔가 여성의 권익과 자유를 주창하는 페미니즘 운동이나 성적 자유를 부르짖는 성적 혁명(Sexual revolution)과 끈끈한 유대감을 연결고리를 갖고 있을 것 같은 비키니는 정말, 여성의 선택권과 혁명적 인식에서 시작된 것일까?

비키니가 사회적 통념을 깬 혁신적 아이템이라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지만 정작 비키니를 처음 제작한 사람은 여성의 ‘권익을 옹호하고 성적 자유를 주창’하는 개혁적 인식이 아니라 ‘새로운 디자인 실험’을 추구했던 1940년대의 남성 디자이너 자끄하임(Jacques Heim)와 엔지니어 루이리어드(Louis Reard)였다.

애초 파리 패션가에서 ‘Pace-setter’로 불렸던  배딩 수트는 원자폭탄 실험이 이뤄졌던 비키니아톨(Bikini Atoll) 군도가 당시 뉴스의 초점이 되자 비키니로 명칭을 변경, 충격적인 노출과 충격적인 ‘핵탄두‘의 이미지가 묘하게 비교되면서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이미지가 강화되었다.

하지만 정작 비키니가 처음 소개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낯설고 민망하기까지 한 노출도에 놀라긴 했지만 비키니 자체는 어떤 정치적 신조- 페미니즘이나 여성의 성적 자유-를 표방한 것이 아니라 디자이너의 전진적 창의성이 담긴 실험적 창조물에 불과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1946년 루이리어드가 비키니를 선보였을 때 자유분방한 분위기로 유명한 파리 패션가에서도 그 옷을 입고 대중 앞에 서려는 모델이 없어 결국 ‘카지노드 빠리‘의 누드 댄서, 미쉘린벨나르디니가 모델로 등장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사회/도덕적 도전으로 여겨졌다.

흥미로운 점은 30인치 정사각형의 천+뒷부분에 G-string이 강조된 스트링 비키니를 입은 미쉘린, Piscine Molitor에 처음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가장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며 당혹해 했던 사람들은 남성들이 아니라 여성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비키니가 여성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사회적 방종을 유도할 뿐 아니라, 여성을 저급한 존재로 치부한 것이라며 비키니에 대한 불쾌감과 거부감을 드러냈고, 비키니 착용은 여성들 사이에서 쉽게 동참하지 못할 타부처럼 여겨졌다. 다시 말해 초창기 비키니는 결코 여성의 권익과 자유를 부르짖는 페미니즘과 성적 혁명의 산물은 아니었던 것.

하지만 이후 사회적/도덕적 억압과 편견에 반발하는 여성들이 비키니를 착용하고, 도발적이고 진취적인 영화 속의 여주인공들이 비키니를 입고 등장하면서 비키니는 ’체제에 순응하는 길들여진 여성이 아니라 도전적이고 도발적인‘ 여성의 상징으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비키니는 이를 받아들이고 착용하는 사람들이 사회/도전적 이미지를 담으면서 후천적으로 ’변혁과 도전적‘ 이미지로 거듭나게 된 셈이다.

실제로 카톨릭의 영향력이 강한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칼 등 카톨릭 국가들은 여성의 비키니 착용을 금지시켰고, 구 소련은 비키니를 ‘퇴폐한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비난했으며 할리우드 영화에 비키니를 입은 여성이 등장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는 종교/도덕 단체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50년 브리짓바르도가 비키니를 입고 영화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에 등장, 유럽 여성들을 비키니 물결에 동참시켰고 미국의 경우 이보다 늦은 1960년대 들어 영화나 노래에 비키니가 등장해 시대적 아이콘으로 일반 여성들의 호응을 얻기 시작한다.


금기가 깨어졌을 때

일단 공개적 노출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을 깨는데 성공한 비키니는 1960년 또 하나의 시대적 아이콘인 히피 문화와 결합되면서 사회 변혁적 이미지가 더욱 강화되었고 고탄력 소재 라이크라가 개발된 1970년대 들어 더 몸에 달라붙는 타이트하고 작은 디자인으로 사이즈의 전쟁에 돌입한다.

일례로 얇은 끈을 연결, 중요 부위만 아슬아슬하게 가린 스트링 비키니가 등장, 노출의 실험을 극대화 한 것도, 어깨 끈 없이 가슴 부위만 가린 베어탑(bare top)이 등장한 것도 모두 1970년대의 일로 비키니는 더 이상 ‘금기를 깨는 문화 아이콘’이 아니라 패션 아이템으로 본격적 진화를 이뤘다.

다시 말해 패션 아이템으로 시작됐던 비키니가 사회/문화적 개혁과 변혁, 여성의 해방을 상징하는 ‘정치성’을 덧입었다가, 금기가 깨어지면서, 다시 순수한 패션 아이템으로 회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단 금기가 깨지면 금기시되었던 사회/도덕적 의미는 더 이상 의미를 잃게 되기 마련이니까.

아이러니 한 점은 의도했던 의도 하지 않았던 ‘사회적/종교적’ 압력에 맞선 도전의 상징이자 여성 해방의 산물처럼 자리했던 비키니가 지금은 오히려 여성의 ‘성적 상품성’을 조장하는 비판적 시각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여성의 권익과 자유를 주창하며, 여성의 몸을 옥죄는 브래지어 벗기 운동을 펼치고, 비키니 입는 것을 ‘도전적이고 진취적 여성’의 상징으로 지지하던 진보적 여성 단체들이 비키니가 대중화된 지금 오히려, 여성의 몸을 활용한 상술의 극치이자 여성의 신체상을 왜곡하는 장치로 비키니를 비난하고 있는 것.

동시에 많은 여성들은 비키니가 자신의 신체에 대한 자신감과 통제력을 시험 받고 평가 받는 까칠한 아이템으로 여기며 비키니 공포증까지 드러내고 있으니 비키니를 여성 해방의 상징으로 평가했던 과거 진보 단체 및 페미니스트들은 머쓱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여성에 신체에 대한 편견-날씬하되 있어야 할 볼륨은 있어야 한다-이 공공연한 진리처럼 부담을 주고 있는 요즘,  여성들에게 비키니는 사회/종교적 압력을 뚫고 살아남은 매력적인 아이템이 아니라 강박적 다이어트를 유발하는 사회적 재갈에 다름 아니다.

이래저래 비키니는 사회적 편견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오묘한 존재인 것만은 틀림없다.



예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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