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콘브라로 상징되던 볼륨 강조형 브라는 1964년 루디게르라이히가 시스루 스트레치 네트를 소재로 ‘입지 않은 듯 가벼운 ’ 브라를 제작하면서 변혁을 맞았다. 그리고 1965년 Warners사가 스타킹처럼 트랜스패런트한 재료로 제작한 브래지어(일종의 바디스타킹)을 선보이면서 브래지어는 몸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몸을 좀 더 편안하게 보정해주는 개념으로 전환되었다.
실제로 1960년대 Lovable 사가 내놓은 브라의 경우 얇고 탄성있는 라텍스 러버와 레이스 패브릭으로 제작되어 가슴 모양을 잘 잡아주면서도 편안해 과장적으로 가슴을 ‘끌어 모으는데’ 집중했던 스웨터걸 글래머풍 브래지어의 파워는 약화되는 모양새였다.
원더브라를 기억하라
그래도 여전히 여성의 특권이라 할 가슴의 곡선을 원하는 여성들은 가슴을 모아주고 올려주는 콘브라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가슴이 빈약한 여성도 ‘제법 있어보이게’ 만들어주는 콘브라는 가슴의 볼륨을 강조하는데 치중, 기능적인 면에서 가슴을 단속하고 가두는 느낌을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 1990년대, 디자이너 장폴고띠에가 마돈나의 무대 의상으로 제작했던 미래지향적 첨탑형 콘브라의 원천은 결국 글래머 스웨터걸의 미래지향적 변혁으로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가슴의 볼륨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여성들에게 마치 ‘하나의 계시’처럼 등장한 것이 있으니 이름부터 황송한 원더브라(Wonder Bra)다. 1968년 Gossard社가 선보여 ‘혁명을 일으킨’ 원더브라는 콘브라의 부담스런 ‘뾰족한 틀’을 버리는 대신 착용자의 가슴 선을 받쳐주고 보정해주어 작은 가슴도 크게, 큰 가슴은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언더와이어드(컵 아래 선에 와이어가 장착, 가슴을 받쳐주고 모양을 틀어지지 않게 해준다) 브라로 V넥 드레스가 대세였던 1960년대 후반 여성들의 필수품이자, 아직까지 ‘큰 것이 아름답다’를 추구하는 여성들에게 가슴의 자부심을 보장해주는 것으로 브라 역사상 가장 ‘혁명적’ 아이템이다.
특히 원더브라는 남성들이 결코 따라하지 못하는 여성의 신체적 특권- 가슴 계곡(Cleavage)-을 강조하는 절호의 아이템으로서 가슴을 강조하고 노출하는 의상과 찰떡 궁합이다. 게다가 원더브라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가슴을 풍만하게 만들어주지만 브라컵 안쪽에 여분의 폼러버나 패드를 넣을 수 있는 작은 포켓이 있어 ‘가슴 보완’이 필요한 여성들은 얼마든지 볼륨을 더할 수 있다. 말하자면 원더브라는 여성의 가슴에 대한 찬양이자 가슴의 크기에 대한 편견과 집착을 만들어낸 장본인인 셈.
여성의 몸에 대한 ‘환상과 집착’을 교묘하게 활용한 원더브라는 1990년대 가슴확장 수술에 대한 부작용이 논란이 되면서 다시금 날개 돋힌 듯 팔렸고 Gossard社는 가슴을 모아주고 올려주는 울트라브라(Ultrabra)를 통해 가슴에 대한 여성의 ‘욕망’을 계속 자극하고 있다.
브라의 변주곡 - 브라 슬립에서 심리스 브라까지
원더브라가 여성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었다면 짧은 미니드레스와 잘 어울리는 브라슬립은 1960년대 또 다른 히트 아이템이었다. 언더와이어드 브라에 미니 나일론 슬립이 올인원 형태로 접목된 브라슬립은 울트라미니가 유행인 올 시즌, 매우 소중한 아이템이 될 듯하다. 실제로 브라의 컵 크기로 가격 차별 정책을 펼쳤던 막스 & 스펜서(Marks & Spencer) 매장에도 편안하고 섹시한 브라슬립이 비치되어 있다.
여성의 클레비지를 강조하는 브라가 1960년대를 주도했다면 1970년대는 타이트한 티셔츠를 입어도 브라와 브리프의 솔기가 드러나지 않는 심리즈(Seamless) 언더웨어가 트렌드로 떠오른 시기다. 동시에 베이지나 화이트로 일관했던 브라에 좀더 도발적인 프린트 패턴과 컬러 믹싱이 이뤄져 브라에도 ‘패션 관념’이 활발히 접목되기 시작했다. 물론 대다수의 여성들은 여전히 피부색의 속옷을 좋아했지만 퍼플과 핑크 믹스, 심지어 Day Glo 풍 네온 컬러도 과감한 여성들을 위한 브라에 사용되었을 정도.
이처럼 1970년대는 자유분방한 실험의 시대였지만 동시에 일반 브라와 차별적인 럭셔리 레이스 브라와 프렌치 니커즈가 등장, 에로틱한 란제리로 분화되는 계기를 마련했고 1980년대는 아름다운 디자인을 중시한 로맨틱하고 화려한 브라가 언더웨어 시장에 본격 등장한 시대로 자리한다.
달라스(Dallas), 다이너스티(Dynasty) 등 TV 미니시리즈가 히트하면서 드라마 속에 등장한 매스큘린 한 수트 속에 기묘한 대비를 이룬 페미닌하고 럭셔리한 언더웨어가 여심을 사로잡았다. 1980년대 이전의 브라가 ‘볼륨’을 중시했다면 1980년대는 실크같은 광택의 새틴과 고급 레이스 등 럭셔리한 소재를 사용, 화려하고 여성스러우면서도 바디컨셔스 효과를 배려한 란제리 개념의 언더웨어가 힘을 얻었다.
동시에 에어로빅이 붐을 이루면서 화려한 컬러의 스포츠 브라가 일종의 ‘짐(gym) 복’으로 변화되고 브라 역할을 하는 컵이 달린 상의가 모던하고 활동적인 여성의 필수품으로 자리하며 여성의 활동력을 보강해주는 현상도 1980년대의 특징. 실제로 심플한 캐미솔과 잘 어울리는 프렌치 니커스(French Knickers), 힙 브리프에도 레이스가 장식되면서 화려하고 산뜻해진 캐미솔은 속옷의 영역을 벗어나 수트와 잘 어울리는 패셔너블한 탑으로 진화되었다.
여성스러움, 혹은 에로틱 로맨티시즘이 지배하던 브라 시장은 1990년대 마돈나가 Blonde Ambition 투어 무대에서 뾰족한 원뿔모양 브라가 연결된 코르셋을 입고 등장하면서 다시 ‘볼륨’ 혹은 가슴골 (cleavage)를 강조하는 흐름으로 변화된다.
그 결과 La Senza. La Perla, Rigby, Peller, Triump, Victoria’s Secret 등 란제리 업체들은 가슴골을 살려주는 섹시한 레이스 브라와 브리프 등을 내놓았고 몸의 굴곡을 살려주고 통기성이 좋은 탁텔(Tactel)이나 라이크라가 브라의 소재로 도입되면서 1990년대 여성들은 뛰어난 착용감과 보정효과를 동시에 제공하는 패브릭 테크놀로지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되었다.
60년대 풍 스웨터 글래머 룩 브라부터 몸매 보정효과가 뛰어난 브라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브라를 선보인 막스 & 스펜서가 영국 언더웨어 시장을 주도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쯤.
패브릭 테크놀로지의 힘
21세기의 시작을 알리는 2000년은 가슴을 올려주고 보정해주는(uplift & Contour)는 효과가 뛰어난 바이오폼 브라(Bioform Bra)가 등장한 시기이자 이전에는 시장에서 외면 받았던 G 컵 사이즈 여성을 위한 브라가 본격 상품화 된 시기다.
Charnos사가 G 컵용 업리프트 브라를 통해 가슴 큰 여성’을 고객군에 포함시키면 브라 시장은 디자인 뿐 아니라 사이즈의 대결에 접어들게 된 것. 바이오폼 브라는 옆면에 단단한 몰딩 플래스틱 소재가 들어있어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지만 젊고 탄탄한 가슴 모양을 유지시켜주면서 브라 시장의 중요 품목으로 자리했다.
하지만 숄더 스트랩이 살을 파고 들고 착용감이 불편하다는 지적은 피하기 힘들었다. 이후 등장한 것이 바로 실리콘 젤을 브라 안쪽에 채워 편안함을 제공하면서 막강한 가슴골을 만들어주는 울티모브라(Ultimo Bra)였다. 영화 ‘에린브로코비치’에서 농염한 가슴 라인을 선보였던 쥴리아로버츠가 착용, 이름을 알린 울티모브라는 할리우드 스타들의 필수 아이템이 되면서 수술 없이도 풍만한 가슴을 원하는 여성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고품질의 마이크로파이버 폴리아미드를 사용, 실크처럼 부드러운 패브릭과 실리콘젤의 절묘한 만남으로 편안하면서도 뛰어난 몰딩 효과를 주는 울티모 브라는 클레비지와 친하지 않았던 여성들에게 고마운 기회를 제공했다.
원더 브라든 울티모 브라던 기본적인 개념은 볼륨있는 가슴이 ‘더 아름답다’는 것에서 출발한 것임은 부인할 수 없다. 실제로 브라의 역사는 납작한 가슴을 선호했던 코코샤넬 시대를 제외하고는 줄곧 ‘볼륨 있고 가슴 계곡을 살려주는’ 테크놀로지 개발에 집중해온 시간이라 해도 무방하다.
따라서 막스 & 스펜서의 ‘큰 가슴 차별’ 논란은 ‘작은 가슴을 볼륨있게’ 보이는 테크놀로지 개발은 당연하지만 큰 가슴을 보정해 주는 테크놀로지에 개발은 외면하는 업계의 속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오버 사이즈 브라에 대한 ‘추가 가격 정책’은 철회되었지만 뒷맛이 깔끔하지 않은 이유 또한 ‘큰 가슴이 아름답다’고 주창해온 브라 업체가 정작 큰 가슴을 가진 여성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일각에서 이번 사태의 바탕 이면에는 마른 여성이 아름답다는 패션계의 ‘지독한’ 고정관념이 작용했다고 비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예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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