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여자’가 아름답다
가+
가-

2009-03-23 오전 10:16:25





나쁜 여자(Bad Girls)가 돌아왔다. 최근 런던패션주간에 펼쳐진 루엘라바틀리의 런웨이에는 전형적인 예쁜 모델과 거리가 먼 ‘터프하고 개성적인’ 금발(은발!) 모델 픽시겔도프가 캣워크를 누볐다.

나쁜 여자의 대모격인 디자이너 비비안웨스트우드의 레드 라벨 컬렉션에는 퇴폐적인 분위기의 데이지로우가 타락한 영국판 프레피룩을 한껏 빛내주었다.

정통 파워 테일러링 수트 안에 캬바레의 여가수나 입을 법한 코르셋을 입고 거만한 워킹을 한 이들의 모습은 라이크라 캣수트를 입은 여자의 섹시함을 능가하는 파워풀한 매력을 자랑했고, 담배 연기를 뿜어댈 듯한 런웨이의 타락 천사들은 오랫동안 디자이너들이 미쳐 있었던 ‘미성숙한 모델의 순수하고 연약한’ 아름다움을 단 칼에 정복해 버린다.

이제는 전설이 된 입셍로랑의 ‘르스모킹 룩’이 남성을 도발하는, 혹은 남성의 영역을 위협하는 나쁜 여자의 이미지를 담고 있음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나쁜 여자는 곧 힘!

그렇다면 ‘어리고 연약한 모델’에 심취, 말라깽이 모델 논란에도 꿋꿋하게 고집을 피우던 패션계가 슬그머니 강하고 제멋대로인 나쁜 여자의 이미지를 패션지 커버에, 런웨이에 올려대며 여성들의 동참을 호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짐작했겠지만 글로벌 경기 침체에 맞서야 하는 패션계가 다시 ‘강한 것이 아름답다’는 진리로 시선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즉 강렬하고 매혹적이고 자유분방한 ‘나쁜 여자’의 강인한 생존력이 바로 어려움에 취한 패션계가 간절히 갈구하는 속성과 상통한다.

실제로 마약과 방탕한 생활로 비난받으면서도 20대면 이미 ‘퇴물’ 취급당하는 패션계에 서른을 한참 넘은 지금까지 톱 모델 자리를 지켜온 케이트모스나 팝 아티스트 앤디워홀을 뮤즈로 마약과 문란한 섹스 라이프로 ‘타락’의 절정을 보여주었지만 남성복과 여성복을 자유분방하게 믹스 매치한 독특한 패션 감각으로 시대를 넘는 패션 아이콘으로 자리한 에디세즈윅, 찢어진 망사 스타킹과 헤어밴드+지극히 여성적인 블라우스와 십자가 목걸이+닥터마틴풍 부츠+컬러풀한 뱅글을 제멋대로 매칭한 거리의 ‘나쁜 여자’의 이미지를 1980년대 대표적 패션 스타일로 정착시킨 마돈나는 30년이 다 된 지금까지 패션의 흐름을 주도해왔고, 얼마 전에는 루이비통의 광고에 등장, ‘나쁜 여자’의 치명적 매력과 생존력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또한 시대를 뛰어넘는 프렌치쉬크의 대명사이자 외설스런 가사의 샹송을 요정 같은 목소리로 불러댔던 제인버킨은 에르메스 ‘버킨 백’을 통해 패셔니스타의 손에 끝없이 재생되고 있고, 모델 출신의 칼라부르니는 복잡한 연애사와 동거하던 연인의 아들의 아기를 낳는 쇼킹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영부인으로 또 패션 대사로 전 세계인들을 매혹시키고 있다.

굳이 멀리 갈 것도 없다. 할리우드는 그야말로 나쁜 여자들의 집합소이니까. 음주와 파티, 무절제한 사생활로 스캔들이 없으면 이상한 린제이로한은 감각적이고 트렌디한 스타일로 글로벌 여성들의 ’패션 아이콘‘으로 자리했고 패리스힐튼과 어울리며 못된 파티걸의 이미지를 제대로 보여준 니콜리치는 쉬크하고 우아한 패션 감각으로 ’나쁜 이미지‘를 대번에 바꿔놓았다.

동거와 결혼, 이혼을 반복하며 모델계의 악동으로 유명했던 밀라요보비치는 스타일리쉬한 감각과 외모를 무기로 성공적인 패션 사업-조보비치호크(Jovovich-Hawk)-을 이끌고 있고, 쥬드로를 시작으로 유부남과 연이은 스캔들를 터뜨려 유부남 킬러로 악명 높은 시에나밀러는 자신의 어패럴 라인 ‘Twenty8Twelve'을 런던패션주간에 런웨이 무대까지 올리며 패션 사업가로 실력 몰이를 하고 있다.
이밖에 임신한 약혼녀를 밀어내고 미식축구 스타 톰브래디와 결혼에 성공, “여자의 적은 정녕 여자인가?”를 되새기게 만들었던 지젤번천은 여전히 가장 잘 나가는 수퍼 모델이다.


영화도, 패션도 ‘나쁜 여자’는 통한다

나쁜 여자의 매력은 늘 패션과 함께 만나 더욱 극적으로 표현된다. 남성들을 파멸로 이끄는 팜므파탈 역할로 유명한 여배우 마들렌느디트히리는 매혹적인 슬립 드레스는 물론 루스한 남성용 화이트 셔츠+망사스타킹, 혹은 남성 수트에 허리띠를 졸라맨 대담한 스타일로 사회적 규범을 무시하는 도발적 여성미를 선도했고 히치코크의 영화 마니(Marnie)의 여주인공 티피헤드린은 착한 여자일 때보다 나쁜 여자일 때 훨씬 더 당당하고 대담한 여성미를 표현한다.

또한 호러 영화의 제왕, 다리아아르헨토 감독의 1970년 작 “Bird"에서는 블랙 PVC 레인코트와 가죽장갑을 낀 아름다운 여성이 매혹적인 공포의 분위기를 가중시키고, 아벨페라라 감독의 영화 ‘Ms .45’의 여주인공-연쇄 살인범-은 칼처럼 뾰족한 킬러 힐을 신고 끝없이 붉은 립스틱을 덧바르며 기묘한 매력을 패션으로 표출한다.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에서는 치열한 전쟁이 펼쳐지는 정글의 한 가운데 카우보이 부츠와 반바지 차림의 섹시한 여성 댄서들의 모습이 등장, 광기어린 전쟁 속에 동참한 여자들의 일그러진 욕망을 드러내더니 루이말 감독의 영화 ’Viva Maria‘의 여주인공 브리짓바르도와 잔느모로는 롱 화이트 스커트에+컬러풀한 허리띠를 매칭, 품격 있는 나쁜 여자의 매력으로 관객의 마음을 빼앗는다.

영화 “The Tenth Victim”에서 킬러로 등장한 우르슬라안드레스가 브래지어에서 권총을 꺼내 희생자를 사냥하는 모습은 나쁜 여자의 파괴적인 매력을 잔인하게, 혹은 코믹한 이미지로 보여주는 유명한 장면.

사실 패션은 늘 나쁜 여자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극대화시키는 필수적인 장치로 자리해왔다. 지금은 고전(?)이 되어버린 드라마 ‘Sex & the City’의 사만다는 늘 어깨를 강조한 화려한 컬러의 파워 수트로 지배적인 여성의 당당한 매력을 표출하고 착한 남자 에이든을 두 번이나 걷어찬 못된 여자, 캐리는 욕망과 현실 사이의 불안정한 갈등을 자유분방한 패션을 통해 효과적으로 표출한다. 그녀들의 화려하고 못된 매력 앞에 크리스틴의 ‘조신한 양가집 딸 내미’ 스타일은 상대적으로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

또한 요즘 젊은 여성들의 패션 교과서(!)로 자리한 가십걸(Gossip Girls)에서는 쉬크한 보헤미안 룩과 클래식한 헐리웃 스타일로 무장한 세레나와 블레어가 나쁜 여자의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을 제대로 표출, Sex & The City 이후 패션에 굶주린 여성들의 등대를 자처한다.

이처럼 나쁜 여자가 수요를 창출하고 파워를 과시하고 있는 시대적 흐름 속에 ‘강한 여성’을 요구하는 글로벌 불황까지 겹치면서 패션계는 섹시하고 지배적인, 당당한 나쁜 여자의 매력에 다시금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


글로벌 불황은 강한 여자를 요구해

사실 패션계만큼 사회적 규범을 어기고 본능과 욕망에 충실한 나쁜 혹은 반항적인 인물이 넘치는 곳도 드물다. 디자이너 코코샤넬은 여성의 몸의 해방을 이끄는 저지 원피스를 내놓기 이전, 미모와 감성을 무기로 권력층의 꽃으로 자리하며 사회적 통념을 비꼬았고 존갈리아노는 디올을 지휘하기 이전, 분방한 집시의 감성과 천박한 거리의 이미지에 꾸튀르 감성을 즐겨 빗대는 악동으로 악명이 높았다.

하지만 무대에 오른 모델의 옷 엉덩이에 대놓고 천박한 욕설을 써대고 손가락 욕설을 날리는가 하면, 방송매체에 대놓고 LVMH 제국의 악행(!)을 비꼬며 거리에서 동성 연인과 은밀한 행위를 하고 거친 입담을 날려대는 알렉산더맥퀸의 악동 짓을 보면 존갈리아노는 상당히 얌전했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알렉산더맥퀸은 이번 런던패션주간에 럭셔리 업계의 처절한 몰락을 빗댄 듯한 그로테스크하고 못된 매력이 넘치는 무대를 꾸며 악동 기질을 여실히 드러냈다)

하지만 나쁜 여자의 치명적 매력을 ‘럭셔리한’ 감성으로 업그레이드 시킨 톰포드가 없었다면 하이엔드 패션계는 지금보다 ‘심심한 스타일’로 배치되었을지 모른다. 거리의 여자의 ‘나쁜’ 매력을 상류층 여성의 모습에 대놓고 투영한 톰포드식 ‘관능미’는 나쁜 여자의 ‘매력’을 공식 인정하는 통로가 되었을 뿐 아니라 여성의 섹시한 매력(혹은 나쁜 여자의 치명적 매력)이 여성이 즐겨도 좋은 ‘강력한 무기’가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암코양이 같은 관능적이고 사악한 여성의 매력을 아예 브랜드 콘셉으로 삼은 돌체&가바나의 스타일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을 정도.

그러고 보니 글로벌 불황은 그간 길들여져 있던 디자이너들을 다시 야생의 감성으로 몰아내고, 사회적 통념에 길들여졌던 여성에게 다시 ‘나쁜 여자’의 생존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긍정적인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장미꽃의 가시는 늘 삶의 긴장을 주기 마련이니까.



예정현 기자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관련기사
• 로레알, 이베이와 전면전
• ‘헬레나크리스텐센’ 백 출시
• 브리트니 전 남편, 키즈웨어 론칭
• '까발리' 애완견 라인 나온다
• ‘노르딕 패션 비안날레’ 첫 개최
• '불가리' 매출 대폭 감소
메이비원(주) | 대표:황상윤 | 개인정보보호책임자:신경식
사업자등록번호:206-81-18067  | 통신판매업신고:제2016-서울강서-0922호
TEL 02)3446-7188  |  Email : info@fi.co.kr
주소 : 서울특별시 강서구 마곡중앙8로 1길 6 (마곡동 790-8) 메이비원빌딩
Copyright 2001 FashionInsight co,.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