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디자이너의 국적이나 혈통이 성공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리고 패션가를 흔드는 디자이너의 혈통 분화는 어떤 흐름을 보일까. 10년 전만 해도 유럽, 특히 이탈리아와 프랑스 출신 디자이너여야만 ‘세계적’인 디자인하우스를 지휘할 수 있었다. 또한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히 여겨지는 불문율의 공식이 성립했을 정도로 유럽 출신 디자이너들은 콧대 센 패션계의 블루 블러드로 자부했다.

1990년대 초반, 미국 텍사스 출신의 영화배우 지망생이었던 톰 포드가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자, 유럽 패션가 일각에서는 철없는 카우보이가 귀족(유럽 패션가)의 정원을 어지럽힐 것이라고 비아냥거렸다.
특히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공기와 토양만이 진정한 디자인 창의성을 보일 수 있다며 톰 포드의 원맨쇼를 1막에 끝날 쇼처럼 홀대했다.
그러나 어릿광대 취급을 받았던 톰 포드가 노쇠한 구찌를 젊고 화려한, 관능적인 구찌로 재편해 가며 일약 패션가의 골든 보이로 떠오르자 유럽 패션가는 나쁜 피(!) 수혈로 유럽의 전통이 끊어질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여기에 ‘루이비통’과 ‘셀린’마저 미국 출신의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와 마이클 코어스를 각각 영입하면서 유럽 출신 디자이너만이 제대로 된 디자인을 할 수 있다는 선입견을 깨고 미국인도 세계적으로 통하는 디자인 감성을 가지고 있다며 울며 겨자 먹기로 아메리칸 파워를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미국 디자이너들이 유럽 패션하우스에 자리하면서, 미국의 실레브러티들은 유럽 패션하우스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것은 바로 매출로 연결되었다. 정말 거부할 수 없는 미끼였던 셈이다.
비주류 패션 혈통(?)의 외침
패션 캐피털이라 불리는 파리에서 아방가르드 패션이 각광을 받던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벨기에 출신 디자이너들인 앤 드묄르미스터, 더크 반 세인, 드리스 반 노튼, 더크 비켐버그, 발터 반 바이렌도크 등이 특유의 북유럽 감성으로 전폭적인 주목을 받으며 벨기에 패션 파워를 자랑했다. 또한 일본 출신 디자이너들인 요지 야마모토, 레이 가와쿠보, 이세이 미야케 등은 이국적인 컬러와 아방가르드한 감성으로 유럽 패션과 유럽 디자이너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이들은 어디까지나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장악한 주류 패션가에 ‘그들만의 리그’를 구축한 마이너리그에 불과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톰 포드나 마크 제이콥스, 마이클 코어스 등 미국 출신 디자이너들의 본격적인 등장은 귀족 혈통을 자랑하던 유럽 패션하우스의 디자인 방향을 커머셜한 럭셔리 비즈니스로 완전히 바꾸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는 독립적으로 움직였던 벨기에, 일본 출신 디자이너들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즉, 국력에 따른 바잉 파워가 백업되지 않는 상태에서의 파리나 밀라노 진출은 한순간의 일장춘몽으로 끝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는 역으로 세계 최고의 강대국인 미국 출신 디자이너들도 이 정도의 신출내기 취급을 받았을 정도라면 아시아나 남미 출신 디자이너들이 세계 패션시장에서 과연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한국 출신 디자이너들이 파리나 밀라노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기란 거의 하늘의 별 따기와 같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아프리카 혈통을 가진, 탄탄한 운동신경만이 가치 판단 기준인 건장한 흑인 남자라면 유럽 패션가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아프리카 가나 혈통, 오스왈드 보탱
이런 질문에 명쾌한 답을 주는 디자이너가 바로 오스왈드 보탱이다. 오랫동안 방향을 잃고 헤매온 지방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취임, 클래식한 테일러드 전통과 컬러풀한 디테일로 지방시를 부활하게 만든 실력파 디자이너 오스왈드 보탱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철저한 아프리카계 흑인으로 트랙 선수와 같은 날렵한 몸매를 자랑한다.
그는 기존의 몽환적이거
예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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