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부인 패션의 조용한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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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9 오전 10:42:57




「샤넬」도 「디올」도 「캐롤리나헤레나」도 없었다

남자는 자신감과 미래에 대한 비전으로 무장했고 여자는 대중에게 익숙한 서민적 브랜드로 사회적, 인종적 통합을 외쳤다. 남자는 기차를 타고 백악관으로 향해 재벌 가문의 자제였던 케네디와 다른 면모를 과시했고, 세기적 패셔니스타 재클린 케네디와 비교돼 온 여자는 대만과 쿠바 출신의 디자이너와 중저가 브랜드를 통해 하이엔드 패션을 즐겼던 재클린 여사와 차별성을 강조했다.

남자의 단호한 음성이 미국인의 마음에 자신감을 전달할 때 여자의 미소는 자신감이 가장 호소력 있는 패션 스테이트먼트이자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것을 만방에 알렸다. 전 세계의 관심이 쏠렸던 버락 오바마 美 대통령 취임식은 그렇게 자신 있고, 당당하고, 의식 있는 정신과 패션이 조화를 이룬 역사적 순간이자 새로운 희망의 현장이었다.


인종적 화합과 서민에 대한 애정

미국 패션가가 바라오던 ‘퍼스트레이디’ 효과가 적어도 제이크루에게만은 기적 같은 현실이었다.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 취임식에 자리한 미셀 오바마가 제이크루 장갑을 끼고 등장하자 제이크루 주가는 10% 상승했고 미셀 오바마와 두 딸이 제이크루의 스웨터와 스커트, 드레스 및 액세서리를 각종 행사에 착용하고 나오면서 제이크루 웹사이트는 해당 제품을 구입하려는 쇼핑객들로 연속 다운되는 해프닝을 겪었다.

게다가 취임식 무도회에 등장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제이크루 화이트 새틴보우 타이를 착용하고 나서면서 美대통령 취임식은 제이크루 대탄생의 날이자 어려움에 처한 미어패럴 업계에 대한 대통령 부부의 배려를 읽을 수 있었던 감동스런 순간이었다.

특히 오바마 여사는 트렌디한 주얼 톤이나 점잖은 중성조 컬러를 선택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레몬 옐로우 컬러의 드레스와 코트를 선택, 화려하고 여신적인 이미지를 강조, 눈길을 끌었다. 쿠바계 디자이너 이사벨톨레도가 디자인한 드레스와 제이크루의 장갑, 그리고 녹색 지미추의 펌프스를 신은 그녀의 모습은 인종과 사회적 편견을 부끄럽게 만드는 당당한 자신감이 넘쳐났다.

그리고 이사벨톨레도는 취임식 선서에 자리한 미셀 오바마를 위해 레몬 옐로우 쉬스 드레스와 오버코트, 옐로우 카디간과 보석이 장식된 네클리스를 제작, 명실공히 영부인의 디자이너로 이름을 높였다. 또한 취임식 당일 진행된 무도회에서도 ‘밝은 컬러’에 대한 미셀 오바마의 자신감은 계속되었다.

플로럴 아플리케와 비딩 디테일이 화려함과 품격을 더하는 크림 컬러의 원숄더 드레스는 대만 출신으로 파슨즈 디자인 스쿨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제이슨우의 작품. 페미닌한 실루엣 속에 당당함이 드러난 크림 컬러의 매력적인 드레스는 회색과 블루 등 안전한 색깔을 주로 선택해온 기존의 영부인들과 차별성이 부각되었다.

전문가들은 미셀 오바마가 화려하고 페미닌한 컬러와 대만/쿠바계 디자이너의 의상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경기 침체로 우울한 미국인들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되살려 주고 ‘이민자의 나라’라는 이름과 달리 사실상 백인 중심의 나라로 성장해온 미국에서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껴온 아시아인과 히스패닉인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화려하고 페미닌한 그녀의 모습은 보수적이고 클래식한 그레이 테일러드 수트 차림의 로라 부시 여사와 비견되면서 밝고 젊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전달하고자 한 마음이 드러났다는 평. 일각에서는 크림 컬러의 드레스를 선택한 이유가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던 날 입었던 블랙 컬러의 나르시스로드리게즈 드레스가 ‘흑인의 승리’를 노골적으로 표현했다는 일부의 비난을 받았던 것을 감안, 백인 친화적인 컬러를 선택했다는 분석을 하기도 한다.

속내가 어떻든 간에 WGSN의 여론조사 경과 미셀 오바마의 취임식 무도회 드레스는 투표 참여자 88%의 긍정적 반응을 얻었고 취임식 전체 의상에 대한 여론조사에서도 40% 이상이 ‘바람직했다’는 평가를 내린 것으로 나타나 미셀 오바마의 패션 스테이트먼트는 일단 합격점이다.

한편 디자이너 나르시스로드리게즈는 취임식 다음날 행사에 미셀 오바마가 착용한 카멜+블랙 드레스와 코트를 제작, 미셀 오바마와의 인연을 이어갔다.


영부인, 옷 입기도 쉽지 않아

대통령 취임식장에 함께하는 영부인의 의상은 늘 세계적 관심이 끌어왔다. 마치 아카데미 영화상을 수상한 사람들보다는 어떤 여배우가 얼마나 더 멋진 드레스로 (혹은 끔찍한 드레스로) 화제가 되는 것만큼 ‘흥미’를 자아낸다고나 할까?

실제로 전 세계 매스컴의 시선이 쏠리는 미 대통령 취임식에 자신의 의상을 입히기 위해 유명 디자이너들은 일찌감치 백악관 안주인과 연줄을 대기에 바쁘고 언론 플레이를 하는가 하면, 정치/사회학자들은 영부인의 옷차림을 일일이 해부하며 사회/정치학적 의미를 부여하느라 부산을 떤다. 그리고 패션 관계자들은 패션 트렌드와 디자이너의 위상(!)에 영부인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계산하느라 한껏 들뜨는 흥분과 기대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취임식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영부인이 너무 고급스런 하이엔드 디자이너 의상을 입으면 ‘서민 경제에는 관심 없는 속물 같은 여자’라고 분노하고, 또 너무 점잖고 소박한 옷차림을 하면 ‘촌스럽고 감각없는 여자’로 비판하며 자기 입맛에 맞춰 재단하기 바쁘다. 따라서 미국 최초의 ‘흑인’ 영부인이 어떤 의상을 입을지 비상한 관심이 쏠린 것은 지극히 자명한 일.

하지만 미셀 오바마는 패션 잡지들이 수개월 전부터 유명 디자이너들과 손잡고 ‘추천 의상 리스트’를  써대도 무관심으로 일관했고 취임식 며칠 전까지 어떤 옷을 입을지 밝히지 않아, 패션계의 속을 태웠다.

일각에서는 값비싼 디자이너 의상을 입고 모델 같은 모습을 과시, 서민들의 분노를 샀던 공화당 대선 후보의 아내, 신디 맥케인과 달리 실용적이고 감각적인 무명 디자이너의 옷을 선택해 ‘자기주관이 강한 감각적인 패셔니스타’의 면모를 과시했던 미셀 오바마였던 만큼 취임식 의상도 전통적인 영부인 스타일-재클린 케네디 스타일의 하이엔드 디자인이거나 로라 부시 스타일의 ‘점잖은 여비서풍 수트’-과는 거리가 있을 것으로 짐작하는 데 만족했었다.

그리고 화려한 레몬 옐로우/크림 컬러의 드레스와 인종적 배려가 깃든 듯한(!) 디자이너 선택, 너무나 대중적인 가격대의 브랜드를 멋진 스타일로 미셀 오바마가 등장하자 비판의 칼날을 갈아대던 패션 전문가 및 사회/정치 분석가들은 내심 당황한 분위기였다.

전통적 편견을 깨뜨리는 컬러 선택과 적절한 디자인/브랜드의 믹스&매치, 그리고 자신감 있는 태도는 미국인들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패션에 민감한 여성들에게는 ‘꼭 브랜드가 전부는 아니다’는 깨우침을 준 의미 있는 현장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때론 ‘닮고 싶은 스타일로’ 때론 ‘조롱거리’로 패션계에 기억되고 있는 영부인의 패션스타일은 어떤 것이 있을까?

앞서 말했듯 19601년 대통령 취임식을 지켜본 미국인들은 케네디 여사의 우아하고 심플한 화이트 드레스(벅도프굿맨의 에델 프랑카우 제품)를 통해 젊고 경쾌한 미국의 미래를 지켜보았고 1977년 로잘린 카터의 검소하고 실용적인 블루 쉬폰 드레스(6년 전 로잘린 카터 여사가 남편의 주지사 취임식 때 입었던 옷)를 통해 검약한 미국인의 정신을 보았다.

패션계에서는 ‘재활용’ 드레스에 대해 ‘취임식 의미를 표현하지 못한 생각 없는 선택’이라며 로잘린 카터의 블르쉬폰 드레스를 ‘최악의 영부인 스타일’로 꼽았지만 서민들은 검약과 절약의 의미를 읽으며 ‘동반 의식’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우연인지 카터 대통령 재임 시절은 미국이 국제 정치에 부각되지 못한 시절이기도 해서 ‘적당한 화려함'은 영부인의 스타일에서 필수요소인 듯.

한편 로잘린 카터 여사의 지나치게 소박한 의상이 조롱거리가 되자 낸시 레이건 여사는 화려하고 글래머러스한 ‘헐리웃 스타일’ 드레스로 낙관적이고 자신 있는 미국의 모습을 표현, 남편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함께 화려한 ‘미국의 시대’를 이끌었다. 이밖에 ‘멋진 할머니’ 스타일을 보여준 1989년 바바라 부시 여사의 로열 블루 가운+진주 목걸이, 핑크 라인스톤이 장식된 핑크 도트 실크 가운으로 사랑스런 화사함을 드러냈던 매미 아이젠하워 여사의 취임식 의상도 패션계가 기억하는 영부인 스타일이다.

흥미로운 점은 정작 대통령의 패션 스타일은 패션계나 국민 모두에게 크게 화제거리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스타일 부문에서는 영부인이 대통령보다 서열이 높다.



예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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