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패션가의 수다쟁이들을 흥분시키고 있는 가장 흥미로운 화제거리는 ‘아나윈투어가 「보그」에서 밀려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일명 ‘애나게이트(Anna-Gate)’라고 불리는 이 같은 소문은 지난해 말 뉴욕 고십 컬럼니스트들 사이에 떠돌기 시작했는데 「보그(Vogue)」를 발행하는 인쇄제국 Conde Nast가 아나윈투어와 재계약을 하는 대신 보그 파리판 에디터인 카렌로이필드를 영입하기 위한 접촉을 벌이고 있다는 내용이 사건의 전모다.
아나윈투어는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Devil Wears Prada)’에서 도도하고 오만한 패션지 편집장, 미란다프리슬리의 실존 모델이었다고 알려진 인물로 ‘얼음 여왕’ 처럼 불릴 만큼 냉정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패션 디자이너와 광고, 모델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해온 인물이다.
실제로 뉴욕/밀라노/파리 패션 주간에 그녀가 참석하는지, 혹은 어떤 디자이너의 런웨이 무대를 지켜보고 있는지가 곧바로 그 디자이너의 성공과 패션쇼의 성공을 가늠하는 잣대로 자리할 만큼 절대적 권력을 누려온 그녀는 신비로운 은발과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짙은 선글라스로 디자이너계의 카리스마로 군림해온 칼라거펠트처럼 아나 역시 트레이드마크인 뱅 헤어와 차가운 표정, 짙은 빅 선글라스로 다가가기 힘든 카리스마를 구축해온 존재였다.
그런 만큼 1988년 이후 20년 동안 보그 미국판 에디터 자리를 지켜온 그녀가 보그를 떠날 지도 모른다는 소문만으로도 패션계가 흥분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아나윈투어 시대 저무나?
일각에서는 아나윈투어의 어시스턴트로 일했던 로렌와이즈버거의 소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통해 못되고 야멸찬 이미지가 부각되면서, 아나윈투어의 이미지가 손상을 입었다고 분석하지만 영화를 통해 일반인들이 패션 에디터라는 직업을 ‘매력적이고 당당한 그 어떤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꼭 책의 내용이 그녀에게 불리하게 작용한 것은 아니다. 즉 패션 디자이너나 모델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비자들의 관심을 덜 받던 패션지의 ‘에디터’에 대한 관심과 호감이 급증하게 된 것.
한 마디로 드라마 ‘Sex & The City’가 대다수 소비자들과 거리가 있던 ‘하이엔드 디자이너’ 브랜드를 친숙하고 ‘꼭 갖고 싶은 대상’으로 자리하는데 공헌했다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일반 여성들에게 패션 에디터란 직업적 매력을 최대한 끌어올린 셈이다.
그리고 이처럼 ‘대중의 관심’을 끌어올린 주역이 바로 미란다의 모델이 된 아나윈투어였던 만큼 영화 속 미란다프리슬리의 이미지가 아나윈투어와 Conde Nast의 재계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판단은 적극 동의하기 힘들다. 또한 까탈스럽고 성마른 그녀의 성격과 모피를 즐겨 입어 PETA의 공격을 받는다는 약점(?)은 그녀보다 더 까탈스럽고 예민한 에디터나 디자이너, 포토그라퍼, 모델이 넘쳐나는 패션가 전체의 시각에서 볼 때 그리 큰 사건도 아니라는 것이 뉴욕 패션가의 시각이다.
차라리 안나윈투어가 20년 동안 ‘장기 집권’ 해온 만큼 뭔가 자연스럽게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고, 글로벌 경기 침체로 패션 잡지들도 광고와 구독량이 줄어든 이 때 새로운 얼굴로 화제 거리를 만드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는 판단이 은퇴설을 자극한다는 편이 설득력 있다.
까린로이필드, 그녀는 누구인가?
그렇다면 20년간 보그의 철옹성을 지켜온 아나윈투어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는 보그 파리판 에디터 까린로이필드는 누구일까? 짙은 눈 화장과 그보다 더 깊은 눈빛으로 유명한 까린로이필드는 Conde Nast의 수장 조나단뉴하우스의 총애를 받아 2001년 보그 파리판 에디터로 취임한 러시아계 파리지안으로 18세에 거리에서 픽업되어 모델 활동을 할 정도로 이국적인 미모를 갖고 있다.
1954년 출생한 그녀는 프리랜서 스타일리스트로 활약하다 유명 사진가 마리아테스티노와 팀 작업을 시작, 보그 미국판/파리 판과 인연을 맺었고 디자이너 존갈리아노와 라거펠트는 물론 구찌와 입셍로랑을 지휘하던 톰포드의 뮤즈로 패션계의 이목을 독차지할 정도로 패션계의 사랑을 받아온 인물이다. 또한 구찌, 미소니, 베르사체, 입셍로랑, 칼빈클라인 등과 사진작업을 하고, 하이엔드 니트 브랜드 Lutz & Patmos의 게스트 디자이너로 활약하는 등 쉬크하고 감각적인 스타일로 널리 알려진 주인공이다.
다시 말해 아나윈투어가 패션 디자이너들보다 한 계단 위에서 지켜보고 판단하는 ‘선생님’ 같은 자세를 견지한다면, 까린로이필드는 맨발로 디자이너들과 피크닉 자리에 껴도 좋을 만큼 패션계와 친밀한 정서를 갖고 있다. 실제로 매혹적인 외모만큼이나 보헤미안적인 정서와 자유로운 영혼, 그리고 럭셔리 브랜드와 하이스트릿라벨, 혹은 벼룩시장 물건을 제멋대로 믹스&매치하는 전형적인 파리지안적 정서 또한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리미로 다려놓은 듯 말끔한 아나윈투어의 스타일과 상당히 대조적이다.
어떤 면에서 그녀는 전형적인 패션지 에디터의 ‘다듬어진’ 이미지와 품격과 거리를 둔 이질적인 정서를 자랑하는데 ‘아나윈투어’의 후임자로 그녀가 거론되었다는 소문이 더 큰 화제로 번진 것도 ‘자유롭고 보헤미안적인’ 까린의 정서에 계산되고 다듬어진 ‘아나윈투어의 감각’이 밀려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포브스 선정 美 패션에디터 Top 10
흥미롭게도 까린은 보그 파리판 에디터로 취임한 이후 미국 패션지 편집장들에게 위협적 존재로 자리해왔다. Conde Nast의 갑작스런 천거로 파리판 에디터로 취임 주목을 받은 그녀는 2006년에는 Bazaar를 출판하는 출판제국 허스트(Hearst) 관계자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Bazaar 미국판 편집장 글렌다베일리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한 바 있다.
특히 글렌다베일리의 패션인 답지 않은(?!) 소박한 외모와 까린로이필드의 매혹적인 외모가 비교되면서 글렌다베일리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따라서 미국 패션 잡지들의 자존심인 아나윈투어가 까린로이필드에게 밀린다면 가뜩이나 파리 패션가에 칼날을 세우고 있는 미국 에디터들의 심기는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까린로이필드는 자신이 아나윈투어의 후임자로 거론되고 있다는 소문에 대해 보그 파리판 에디터 일에 만족한다는 입장을 밝혀 소문을 진화하고 나서 일단 ‘아나게이트’는 ‘소문’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교체설이 나왔다는 자체만으로도 아나윈투어의 자존심은 심각한 손상을 입은 터라 양측의 관계자 그다지 매끄럽지는 않을 듯하다. 그렇다면 아나윈투어는 정말 명성만큼이나 막강한 패션 에디터로 자리하고 있을까?
2008년 포브스(Forbes)지는 잡지 판매량, 구독량, 온라인 독자수 등을 기준으로 가장 영향력있는 미국 패션 에디터 10인을 선정했는데 1위는 글래머(Glamour)지의 에디터 신디라이브에게 돌아갔다. 선정 이유는 그녀가 에디터로 활약하면서 글래머의 전년대비 구독율이 4.1% 상승했고, Glmaour.com의 독자도 118% 증가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아나윈투어는 엘르(Elle)의 편집장 로베르타마이어스와 공동 2위를 차지했는데 신진 디자이너들의 ‘성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인정받았다고. 하지만 엘르가 리얼리티쇼 Project Runway와 스폰서쉽을 구성하며 온라인/오프라인 인지도를 높이고 광고와 구독률 상승에 기여한 것과 달리 소극적 행보를 한 것으로 평가되어 아쉬움을 더한다.
4위는 매달 트렌드와 패션 팁에 관해 20페이지에 달하는 패션 에디토리얼을 작성하는 코스모폴리턴의 편집장, 케이트화이트로 적극적인 그녀의 활약에 힘입어 코스모폴리탄 웹사이트는 가장 높은 ‘온라인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한편 5위는 셀러브리티 패션란을 구성, 구독률을 2.64% 끌어올린 In Style의 샬라로혼. 6위는 충실한 뷰티란과 패 션에디토리얼로 ‘패션의 가치’를 높였다는 평가를 얻은 Allure의 린다웰스, 7위는 수익은 상승했지만 여타 패션지에 비해 구독률이 떨어지는 Bazaar의 편집장 글렌다베일리, 8위는 10대들 사이에서 인기상승 중인 Teen Vouge의 애이미애쉬틀리, 9위는 2007년 가판대에서 가장 높은 판매고를 올린 10대 패션지 Teen Vogue의 편집장 앤소켓, 10위는 마리끌레르(Marie Clair)의 편집장 조아나콜스가 차지했다.
특히 그녀는 엘르의 前에디터이자 ‘Project Runway’로 유명세를 더한 니나가르시아를 영입, 분위기를 재편하고 ‘Project Runway’ 시즌 6의 스폰서로 나서는 등 마리끌레르의 인지도 상승에 적극적인 모습이 높게 평가받았다.
달콤 씁쓸한 패션 에디터들의 세계
이처럼 많은 패션 편집자들이 소비자들을 좀더 포섭하기 위해 적극적인 프로모션에 나서 구독률 상승을 지휘하는 것과 비교할 때 아나윈투어는 대중과의 소통보다는 ‘패션과 패션인’들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만큼, 경기침체에 따른 패션계의 불황이 광고수주 감소로 이어지는 현 상황 속에서 안나윈투어의 위상이 다소 불리한 것은 사실이다.
뉴욕 패션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아나게이트’는 Conde Nast와 까린로이펠드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진화에 나서고 있어 한바탕 ‘헛소동’으로 마감되는 분위기지만 막강 카리스마를 자랑하던 아나윈투어 역시 시대의 흐름에 밀릴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라는 점을 확인시킨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패션 에디터 한 명의 ‘이동’에 패션계가 이렇게 흥분하고 관심을 보인다는 것만으로 그녀의 ‘존재감’이 더욱 강조되었으니 삶이라는 것은 화려하든 소박하든 역시 달콤 씁쓸한 이면을 갖고 있는 듯 하다.
예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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