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패션 유통가 “우리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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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9 오전 10:13:54


글로벌 경기 침체를 촉발시킨 美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와 파생상의 주역으로 눈총 받는 美 금융 업계와 투자 은행들이 정부의 엄청난 재정 지원을 받고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물론 미국 내에서 조차 취약한 자동차 업계에도 논란 많은 자금이 투입되는가 하면, 어려운 시기일수록 인간의 원초적 감정을 일깨우는 포르노 산업이 중요하다며 포르노 업계까지 당당히 지원금을 달라고 조르는 판국이다.

그러나 급격한 매출 하락으로 사실상 패닉 상태에 빠진 미 패션가는 그저 “미셀 오바마가 패션 업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길 바란다”는 소심한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연이어 발표되는 美 어패럴 업계의 실적을 보면 미 패션계가 자존심 뒤에 절박한 마음을 숨길 만큼 여유가 있는 상황이 아니다.

사실 미국의 패션계는 오뜨꾸튀르의 전통을 바탕으로 끈질긴 생명을 자랑해온 유럽 패션 명가들과 달리 ‘실생활 속의 옷’에 주력하는 구조여서 경기 침체와 매출이 더욱 밀접한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뼈 속까지 도도한 럭셔리 감성을 자랑하는 패션하우스 「샤넬」이 인원 감축을 단행하고, 영국 최대의 하이스트릿 업체 「막스앤스펜서」가 1000여명의 직원을 해고하고, 프랑스의 업체 「모르간」이 대다수의 유통망을 정리하고 매각 시장에 나온 이 시점에 글로벌 패션가를 강타한 태풍의 눈 속에 자리한 미국의 상처는 더욱 깊을 수밖에 없다.


진정되지 않는 매출 부진의 늪

베이직으로 머천다이징을 재구성한 후 조금씩 회복세를 보이는가 싶었던 갭은 글로벌 금융 상태의 불황에 가장 민감히 반응하는 모습이다. 올해 1월 3일 기준 갭의 5주간 순매출은 전년대비 12% 하락한 19억3000만 달러로 나타났고 지난해 12월 기준 비교 매장 매출 또한 14% 떨어져 리테일 매출이 좀처럼 안정을 되찾지 못하는 모습이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갭의 북미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9%, 바나나리퍼블릭은 15%, 올드네이비는 16% 각각 감소했고 글로벌 시장의 매출 또한 5% 하락, 크리스마스 홀러데이 매출을 기대했던 업계의 소망을 무색하게 했다.

또한 올해 1월 3일 기준 48주간 순매출이 130억7700만 달러로 전년대비 7% 하락했고 비교 매장 매출도 11% 떨어져 매출 하락세가 지속적인 그래프를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갭 관계자는 경기 침체로 소비가 둔화되고 어패럴 업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 시대적 상황을 매출 부진의 원인으로 지적하면서 매출은 하락했지만 현금 유동성이 높아 기업 경영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는 입장.

실제로 갭은 지난해 12월 1억2800만 달러의 부채를 탕감해 이제 5000만 달러의 부채만 상환하면 되고, 올 한해 10억 달러 정도의 유동자본 확대가 기대되어 모르간 처럼 매각 시장에 내몰릴 확률은 적은 것으로 분석된다. 갭은 미국과 영국, 일본, 아일랜드 등지에 3100여 개의 매장을 운영 중이며 프랜차이즈 형태로 아시아와 유럽, 남미, 중동 지역에 진출, 글로벌 시장 확대를 통해 북미 시장 매출감소를 상쇄하려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한편 백인 지향적/논란 마케팅으로 짭짤한 재미를 보았던 아버크롬비&피치의 지난해 12월 매출은 24%, 동일 매장 매출은 23.5%나 각각 급감했고 올해 1월 3일 기준 5주간 순매출도 11% 하락한 4560만 달러에 불과해 2007년부터 눈에 띠던 매출 부진 바람이 더욱 거세진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그간 A&F를 ‘쿨’한 브랜드로 인식했던 10대들이 자라나 망고, 타겟 등 트렌디한 패스트 패션 리테일로 시선을 돌리면서 A&F의 리테일 시장 자체가 흔들리는 것이 A&F 매출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이라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3/4분기 아버크롬비의 재고율이 51%의 달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아버크롬비의 매출 하락이 단순히 글로벌 금융 시장 악화의 영향 때문이 아니라 리테일마켓의 균열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업스케일 백화점 삭스의 상황도 그리 만만하진 못하다. 12월 기준 삭스의 매출은 전년대비 19.8% 감소로 나타났고 동일 매장 매출 하락폭은 10%에 달해 패션에 민감한 소비자도 쉽게 지갑을 열지 않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게다가 1월 3일 기준 5주간 매출 또한 18.9% 하락한 3억6300만 달러로 나타나 우울한 한 해의 시작을 알렸고 4/4분기 매출이 깊은 하락폭을 낼 것으로 전망도어 올해 기대 수익을 한껏 낮춰 잡어야 하는 분위기.


잡지 광고도 줄고, 패션쇼 경비도 줄고

어패럴 업계의 불황은 패션 잡지에도 파급되고 있다. 보그 미국판의 편집장, 아나윈투어가 보그를 떠날 것이라는 소문을 뒷받침하는 이유 중 하나로 광고지면이 대폭 줄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 것처럼 보그, 알루어 등 패션 잡지를 차지하던 광고 부수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1월 알루어에 실린 광고 지면이 71페이지였던 반면 올해 1월호에는 41페이지로 줄어들었고 언론재벌 Conde Nast 산하의 잡지들-Vogue, Lucky, Wired 등-의 광고지면은 거의 절반 가까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Media Industry Newsletter 자료).

특히 보그의 경우 전체 광고 지면수가 44%나 하락, 도도한 아나윈투어의 자존심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을 듯. 그나마 글래머는 광고 지면이 15%, 배니티페어는 5.9% 각각 하락해 Conde Nast의 체면을 어느 정도 살려주었고 독특한 화보 구성이 매력적인 W는 2.4% 정도만 광고 지면수가 줄어 패션가 불황에 나름 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속을 들여다보면 알루어가 패션/뷰티에 주력하는 반면 글래머는 건강/음식 관련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보그가 여성 패션 광고만 싣는다는 각 잡지의 특성을 생각하면 패션과 뷰티 전문 잡지의 광고가 대폭 줄어든 것은 결국 패션 업계의 불황에 이들 잡지가 더 민감하다는 점을 증명한다.


패션쇼… 규모 작아지거나 트렁크쇼로 대체

한편 디자이너들은 불안한 경제 상황에 유동성 확보를 위해 긴축재정에 돌입, 많은 비용이 투자되는 패션쇼 대신 개별적인 트렁크쇼 정도로 몸을 낮추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뉴욕 패션 주간을 진행하는 IMG 패션에 의하면 오는 2월 13일부터 20일까지 진행될 뉴욕 패션 주간에 참여하기로 확정한 디자이너 수가 예년보다 확연히 줄었다고 밝히면서, 도나카란, 캘빈클라인, 마이클코스의 런웨이 쇼는 진행된다고 밝혀 그나마 체면을 살렸다.

하지만 베라왕, 벳시존슨 등은 공식적인 런웨이 쇼보다는 소규모 트렁크 쇼를 진행한다고 밝혀 시장 불안에 몸을 사리는 모습이다. 실제로 의상과 사운드시스템, 조명, 메이크업, 기타 보안 시스템 등이 갖춰야 하는 런웨이 쇼는 10만 달러 이상이 투자되는 돈 먹는 하마라 경기침체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디자이너에게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베라왕이 런웨이 쇼 대신 자신의 소호 매장에서 작은 스테이지를 구성, 트렁크 쇼를 열기로 결정한 것도 그 때문.

이처럼 디자이너들의 런웨이 쇼를 취소하거나 의상 중심의 소규모 프리젠테이션을 선택하면서 패션 주간을 목 빼고 기다려온 모델들은 수입처를 상당 수 잃을 전망이다. 한 마디로 글로벌 금융 불황이 어패럴 업계를 강타하고, 어패럴 업계의 매출 부진이 잡지의 생존을 위협하고, 불안한 시장 환경이 디자이너의 투자를 단속하고, 디자이너가 투자에 몸을 사리면서 패션쇼는 위축되고, 비쩍 마른 모델들의 지갑까지 말라가는 도미노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

상황이 이쯤 되면 미 어패럴 업계도 자존심을 버리고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 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추구한다는 포르노 업계도 당당히 자금지원을 신청하는 판국에 ‘아름다움’을 일깨우는 패션계가 뭐가 부끄러운가 말이다.



예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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