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의 이목이 쏠렸던 미국 대선이 버락 오바마의 승리로 판가름 났을 때 21세기 글로벌 정치의 현장은 다시 패션의 현장으로 변모했다.
버락 오바마가 승리를 확인하는 연설을 하고 있을 때 디자이너 나르시소로드리게즈가 제작한 대담하고 모던한 블랙/레드 스쿱넥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미셀 오바마는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수상하는 할리우드 셀러브리티만큼이나 당당하고 화려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리고 호들갑스런 방송매체는 대선 기간 내내 화제를 몰고 다녔던 그녀의 패션 감각을 시종일관 뒤따랐고, 세기적 현장을 지켜본 세계의 여성들은 선명한 컬러 대비만큼이나 너무나 명확한 한 가지 교훈을 얻었다.
이제 더 이상 패션이 ‘자아도취적 허영’이 아니라 ‘성공을 원한다면 마땅히 갖춰야할 무기’라는 것.
마치 새로운 미국에 대한 야망과 자신감을 드러내듯 블랙+레드의 과감한 컬러로 치장한 그녀는 전통적인 ‘중성조’ 컬러의 의상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영부인이 입기에는 너무 튀는’ 선택이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역사적 현장에서 승리의 기쁨을 누리며 자신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데 더 없이 효과적이었다는 평가도 상당하다.
올 봄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의 부인 칼라부르니가 ‘뉴트럴한’ 컬러의 품격 있는 영부인 스타일로 패션계의 애정을 듬뿍 받았다면 안전한 컬러를 벗어나 화려한 컬러 감각을 자랑한 미셀 오바마식 패션 스타일은 전통적인 영부인 스타일을 살짝 비튼 유쾌하고 스릴 있는 즐거움이었다.
조용한 자신감과 존재감 - 그녀만의 ‘패션 스테이트먼트’
패션이 일종의 자기 의사 표시라는 말은 선거전 내내 미셀 오바마의 의상에 잘 드러났다. 사르코지 대통령의 뒤에 한 발 물러서 가능한 눈에 띄지 않는 회색과 카키, 블랙 컬러의 의상을 주로 입었던 칼라 부르니와 달리 ‘경계를 넘지 않는’ 화려한 컬러 드레스와 깔끔한 스커트 수트로 자신에 찬 모습을 보였던 그녀의 모습은 전통적인 정치가의 부인상-다소곳하고 튀지 않으며 은근한 미소를 짓는-과 다른 패션 스테이먼트로 새로운 영부인의 탄생을 알렸다.
동시에 오바마와 민주당 대통령 후보전에서 격돌했던 파워 정치가이자, 10여 년 전 클린턴 대통령 후보자가 대선 캠페인을 펼칠 때 적극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과시했던 힐러리 클린턴과 달리 트랙 선수처럼 강인한 몸매의 장점을 부각시키는 화려한 컬러와 실루엣으로 존재감은 강조하되 직접적인 정치 참여는 자제하는 영리한 태도로 ‘정치적인 영부인 형’에 거부감을 갖는 투표자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흥미로운 점은 패션계를 열광시켰던 그녀의 의상 대부분이 본인이 직접 온라인을 통해 구매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제이르노가 진행하는 ‘Tonight with Jay Leno’에 출연, 퍼스널 스타일러를 두고 있지 않다고 밝힌 그녀는 유명한 유럽 패션하우스들의 의상으로 치장해 모델 같은 금발 미녀의 모습을 구축했던 신디 맥케인과 달리 “자신의 모습을, 자신의 스타일로 표현한다”는 미국식 패션 정서를 잘 반영했다.
실제로 그녀는 제이르노 쇼에 J.크루의 의상을 입고 참석, 하이엔드 디자이너 패션을 즐기는 신디 매케인이나 15만 달러 상당의 의상 논란을 불러일으킨 페일린 공화당 후보자와 다른 서민적인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이처럼 쉬크하고 도회적이지만 일반인들에게 거부감을 사지 않는 적절한 세련미를 표현한 미셀은 9월 17일자 피플지가 선정한 ‘10대 베스트 드레서’로 꼽힌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정리 하자면 칼라 부르니가 21세기의 재클린 케네디를 모방했다면, 미셀 오바마는 클래식과 심플함을 절묘하게 보듬었던 재클린 케네디의 패션 세계에 컬러와 개성를 더했다는 점에서 진보적인 패션 감각을 가졌다고 평가된다.
스타 탄생 - 디자이너 마리아핀토, 도나리코
이번 美 대선은 일반인에게 친숙치 않은 브랜드와 디자이너가 부각되었다는 점에서도 개혁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버락 오바마 당선자의 슬림한 투버튼 수트를 제작한 하트새프너막스가 성공을 꿈꾸는 글로벌 남성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면, 미셀 오바마의 패션 스테이트먼트에 큰 힘을 실었던 디자이너 마리아핀토와 도나리코는 글로벌 여성들이 꼭 알고 싶은 하트한 디자이너로 급부상했다.
민주당 전당대회에 참석한 미셀 오바마의 드레스를 제작하며, 일약 스타 디자이너로 떠오른 디자이너 마리아핀토는 파슨스디자인 스쿨과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를 졸업한 후 매혹적인 칵테일 드레스와 이브닝 가운, 우아한 코트와 액세서리를 제작해 삭스피브스애버뉴, 바니스뉴욕에서 판매해 왔으며 얼마 전 시카고에 첫 번째 부띠끄를 오픈했다.
핀토는 지난 6월 버락 오바마가 민주당 대선 후보자로 결정되었을 때 미셀 오바마의 우아함을 더했던 퍼플 실크 드레스(소매가 900 달러)를 제작했던 인물이자 오프라 윈프리를 단골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는 실력파 디자이너다(미셀 오바마는 심플하고 슬림한 핀토의 퍼플 드레스에 아제딘알라이야의 블랙 벨트로 허리를 강조, 당당하고 매력적이 외모를 강하게 부각시켰다).
마리아핀토와 미셀 오바마의 인연은 몇 년 전 지인을 통해 처음 시작되었으며 미셀의 요청으로 드레스를 제작하게 되었다고. 강인하고 날씬한 미셀 오바마의 체형을 강조하는 슬림하고 섹시한 실루엣을 만들어낸 그녀는 과도하지 않은 쉬크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미셀 오바마의 스타일을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6월 미국의 인기 TV 프로그램 ‘The view’에 등장한 미셀 오바마의 의상-탱크리프 프린트 드레스를 제작, 스타덤에 오른 디자이너 도나리코는 ‘위스콘신-밀워키 미술학교’를 거쳐 ‘마운트 메리컬리지(Mount Mary College)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후 뉴욕에서 도나리코(Donna Ricco) 라벨을 론칭했다.
현재 드레스라인 ‘Donna Ricco Newyork’과 드레스와 단품류로 구성된 하이엔드 라인 Donna Ricco Collection)을 운영하고 있는 그녀의 의상은 노드스톰, 메이시 백화점에서 구입이 가능하며 미셀 오바마가 입었던 탱크리프 프린트 드레스는 그녀의 웹사이트에서 99달러에 판매된다.
진보적인 패셔니스타
한편 도나리코는 미셀 오바마가 선거전에서 수트 대신 드레스를 선택한 것은 뛰어난 전략이었다고 평가해 눈길을 끌었는데, 보통 여성의 키보다 큰 키(180cm)를 갖고 있는 미셀이 몸매를 강조하는 슬림한 드레스를 통해 페미닌한 여성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했을 뿐 아니라 수트를 선호하는 여타 후보자들의 와이프와 차별되는 효과를 얻었다는 점에서 그녀의 말은 충분히 수긍이 간다.
이처럼 딱딱하게 보일 수 있는 수트 룩의 단점을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는 심플하면서도 쉬크한 드레스’로 보완해내는 솜씨를 보인 미셀 오바마를 패션에 종속되지 않고 패션을 주도하는 진보적인 패셔니스타로 꼽는데 부족함이 없다.
슬림하고 컬러풀한 드레스와 함게 미셀 오바마의 이미지를 각인시킨 패션 엘리먼트는 바로 적절한 포인트 액세서리 활용이다. 마리아핀토의 퍼플 쉬스 슬리브리스 드레스에 아제딘알레리아의 블랙 벨트 착용, 쉬크한 멋을 강조하거나 오렌지 컬러의 슬림 드레스+굵직한 화이트 비드 목걸이, 심플한 화이트 슬리브리스 드레스+두 겹의 굵은 비드 목걸이를 매칭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세련미를 자랑하는 그녀의 옷차림은 스타일 구성에 익숙한 그녀의 패션 감각을 잘 보여준다.
또한 값 비싼 하이엔드 디자이너 의류나 티파니 스타일의 작은 진주 알 대신, 굵직한 모조 진주나 컬러 비드, 화려한 명성보다 내실 있는 디자인을 선보이는 미국 내 디자이너의 의상을 통해 미국적 이미지와 미국적 자신감을 드러낸 그녀의 모습은 패션에 지배되지 않고 패션을 즐기는 21세기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또한 일각에서는 컬러를 즐기는 미셀 오바마의 패션 스타일이 심각한 경기 침체로 우울한 미국인들에게 희망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분석까지 내리고 있어 미셀 오바마의 패션 스테이트먼트는 버락 오바마에 거는 미국인들의 기대만큼이나 강한 모습이다.
글을 맺기 전에 문득 던지고 싶은 질문 하나-“당신의 패션 스테이트먼트는 정확히 전달되고 있나요?”
예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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