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990년대는 구찌의 화려한 재탄생 시기였다. 당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취임한 미국 출신의 톰포드는 화려하고 관능적인 이미지로 구찌를 새 단장했고 매 시즌 패션지와 패셔니스타들을 애타게 하는 아이템을 잇달아 선보이며 구찌의 로고는 젊은 럭셔리의 상징처럼 되어버렸다.
또한 폐쇄적이었던 럭셔리 브랜드가 트렌디한 아이템처럼 진화되고 할리우드 스타를 쫓던 카메라가 디자이너에게 쏠리면서 디자이너의 스타 탄생을 알린 시발점이기도 했다. 이에 따라 라이벌 럭셔리 업체들도 매스컴이 좋아할만한 스타 디자이너를 영입해 라벨을 운영하기 시작했고 럭셔리 업계는 활기 넘치는 스타들의 집결지가 되었다.
하지만 비대해진 파워를 무기로 톰포드가 CEO 도미니크드솔레와 공동 전선을 구축, 경영권 참여를 조건으로 재계약에 딴지를 걸면서 럭셔리 업계는 디자이너 파워가 경영권을 위협하는 역사적인 상황을 맞았다.
시장通 로버트플렛
하지만 매스컴을 등에 업고 파워를 과시한 톰포드의 세상은 곧 끝나고 말았다.
구찌의 대주주 PPR이 구찌의 잔여주를 모두 매입, 구찌 그룹의 주인이 되면서 “Gucci by Tom Ford" 공식을 구축했던 톰포드+도미니크드솔레 체제는 퇴각하게 된 것.
권력을 쟁탈한 PPR은 스타 디자이너를 내세우는 대신 인하우스 디자이너 체제를 중시하는 중앙집권적, 팀워크 중시 풍토를 새롭게 정립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즉 도미니크드솔레 체제하에서 디자이너의 놀이터가 되어버린 구찌를 다시 사업의 전방에 내세우는 체질 개선을 통해 경영권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으로 전환한 것이다.
패션사업 경험이 전무한 로버트플렛이 구찌의 CEO로 입성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다국적 기업 유니레버 의 경영/마케팅 디비젼을 고루 경험하며 팀 작업과 글로벌 마켓 개척에 관록을 쌓았다는 점이 후한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1978년 유니레버에 입사한 후 전 세계 마켓을 이동하며 마케팅과 경영진 등 다양한 활동범위를 쌓은 시장통 로버트플렛은 소수의 소비자를 타깃으로 움직이는 럭셔리 업계와 괴리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소비재 시장에서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소비자의 욕구 충족이란 점을 잘 아는 그는 럭셔리 업계에 소비자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작업에 돌입한다. 먼저 그는 Bain&Co에 의뢰해 구찌의 시스템을 점검, 디자인/생산/배송 과정이 불필요하게 길다고 지적하며 스피디한 생산/유통 시스템을 자랑하는 자라의 시스템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파격적 결론을 내렸다.
자라의 경우 3~4주 간격으로 전체 머천다이징의 75%를 교체하는데 구찌는 일년에 겨우 4~5번의 컬렉션만을 선보인다는 것. 즉 소비자들이 1년에 17번 자라 매장을 찾게 되는데 반해 구찌 고객은 잘해야 1년에 4번 매장을 찾게 되기 때문에 그 만큼 매출 구축의 기회는 적어진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디자이너 보다는 브랜드를 스타로
사실 럭셔리 업체들은 그동안 소비자의 욕구를 파악하고 반영하기 보다는 ‘디자인은 간섭받을 수 없는 예술’이라는 아집에 빠져 소비자를 이끈다는 착각에 빠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로버트플렛은 바로 이 예술가인척 하는 태도를 버리고 소비자의 욕구를 반영, 소비자들이 좀더 편하게, 적극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구찌 그룹의 목표임을 명확히 했다.
이를 위해 그는 기대 이상의 매출을 올리지 못하더라도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파워를 약화시키고 포커스 집단을 축출, 소비자들의 욕구와 반응을 분석하여 제품의 생산/유통에 반영하는 기본적인 체제를 도입했다. 이는 “Gucci by Tomford" 라는 표현에서 보듯 브랜드 보다 디자이너 파워를 강조했던 톰포드의 그늘을 없애는 동시에 구찌의 브랜드 파워를 키워내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었다.
소비자 범위를 확대한 것 역시 로버트플렛의 경영 마인드를 엿보게 하는 점이다. 그는 ‘소수를 위한 럭셔리’에 초점을 맞췄던 ‘톰포드-도미니크드솔레’와 달리 실크스카프나 아이스바켓 등 일반 소용적 제품을 머천다이징에 포함시켜 ‘소비자를 따라가는’ 마켓 중심형 노선을 선택했다. 다시 말해 브랜드 자체의 파워와 포섭력을 높여 소비자를 유인한다는 것이 로버트플렛식 럭셔리 시장 길들이기인 셈.
경영과 디자인의 매개체, 마크리
이처럼 ‘스타 디자이너 대신 브랜드를 스타로 만들자(MAKE THE BRAND, NOT THE ALENT, THE STAR)’는 명제 아래 소비자/수익 중심형 전략에 힘을 더하기 위해 로버트플렛은 입셍로랑 디비젼을 지휘했던 머천다이징 전문가 마크리와 손을 잡는다.
마크리는 미국의 브랜딩 컨설턴트 ‘팔론(Fallon)’ 그룹을 고용해 뉴욕/도쿄/밀라노에서 소비자 포커스 세션을 주관, 소비자의 취향과 욕구 파악에 나서는 동시에 소비자들이 1966년 그레이스 모나코 왕비를 위해 디자인 했던 플로펄 패턴의 스카프에 관심이 높다는데 착안, 프리다지아니니(Frida Giannini)를 통해 플로럴 패턴이 가미된 토드백과 지갑을 선보였다.
이 작전이 적중, 기대 이상의 매출을 올리면서 제품 디자인-생산이 디자이너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경영진과 디자이너의 합작품이어야 한다는 로버트플렛의 주장은 힘을 얻었다. 또한 섹시한 분위기의 이미지 광고를 중시했던 톰포드식 광고 대신 가능한 제품을 집중 조명하는 분위기로 광고 방향이 수정되었다. 전통과 실용성, 그리고 대중성이 조화되는 구찌의 새로운 틀이 구축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함께 그는 또한 산하 10개 브랜드에 두 사람으로 구성된 팀(크리에이티브 디렉터+ CEO)를 두고 디자이너는 비전을 세우고 CEO는 제품의 사업가능성과 생산/유통/마케팅 등 사업적 측면을 담당하는 시스템을 구축, 크리에이티비티가 디자이너의 독점물이 되던 관행을 과감히 잘라냈다.
하지만 ‘디자인에 대한 대화는 중시하되 결정권은 디자이너에게 전임’하는 융통성을 발휘, 크리에티비티를 목숨처럼 중시하는 디자이너들의 자존심을 지켜주었다.
라벨의 대중화, 그 빛과 그늘
사실 ‘마켓’을 중시하는 로버트플렛의 접근법은 당장의 수익 증진에는 도움이 되지만 장기적으로는 브랜드의 가치를 ‘싸구려’로 만든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실제로 일부에서는 구찌가 수익성에 치중, 라이선스 사업을 확대할 경우 방만한 라이선스 사업을 통해 싸구려 브랜드로 전략한 피에르가르뎅 꼴이 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을 정도.
그러나 로버트플렛은 ‘구찌 브랜드의 대중화가 아닌 ‘소비자에 대한 서비스 마인드’를 강화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강조하며 브랜드의 대중화에 대해 명확한 한계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소비자 접근력이 높아지는 상품을 통해 매출 구축에 집중할 경우 구찌 로고의 산재 현상을 전혀 피할 수 는 없어 로버트플렛 집권 후 지속적인 구찌의 매출 증가세가 오히려 구찌의 대중화를 가속시키는 악재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밖으로는 소비자 중심형, 안으로는 수익 중심을 외치는 로버트플렛의 경영에 힘입어 구찌 라벨의 매출을 2배 이상 증가시켰고 스텔라맥카트니, 알렉산더맥퀸 등이 흑자로 돌아섰으며, 보테가베네타는 울트라럭셔리 숭배자들의 머스트해브 브랜드로 성장하고 있어 구찌의 대중화에 대한 걱정은 슬며시 묻혀지는 모양새다.
한편 구찌(Gucci)의 CEO 마크리는 지난 9월 개인적 사유로 돌연 사퇴했는데 전문가들은 구찌의 경영악화가 그의 퇴진을 압박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구찌는 루이비통, 헤르메스 등 경쟁업체에 밀려나는 모습을 보이며 실적악화를 겪고 있다. 구찌의 영업이익은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며 6개월 기준 매출도 10억1천700만 유로에 불과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2009년 1월부터 마크리 대신 구찌의 CEO로 활약할 인물이 바로 파트로찌오 디마르코라는 점이다. 보네타게베네타를 파워 매출 브랜드로 이끌며 뛰어난 경영수완을 발휘한 그는 사실 2004년 마크리에게 구찌의 CEO 자리를 내주었던 당사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로버트폴렛의 총애를 받던 마크리가 퇴장하고 디마르코가 다시 구찌의 해결사로 등장했다는 점은 로버트폴렛식 구찌 경영방식에 의미있는 균열이 일고 있다는 추측을 낳는다.
예정현 기자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