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칵테일처럼 감각을 사로잡는 사람이 있다면, 조용히 젖어 드는 와인처럼 은은하고 질리지 않는 사람도 있다. 첫눈에 빠져드는 미친 듯한 사랑은 아니지만 볼수록 애틋하고 그리워지는 사랑이 있다. 굳이 자신을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더라도 자꾸 보고 싶고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보테가베테나(Bottega Veneta)는 이처럼 알면 알수록 그리움과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묘한 매력을 갖춘 레더 브랜드다. 굳이 럭셔리 브랜드임을 보여주는 뚜렷한 로고로 치장하지 않지만 은근한 시선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알리는 백, 화려한 장식과 장신구에 의존하는 대신 수양하듯 찬찬히 가죽을 꿰어 만들어 장인의 땀과 노력으로 이뤄지는 보테가베네타의 백은 자신에 대한 믿음과 인내로 세상을 헤쳐 나가는 심지 굳은 사람을 보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인내의 제작 과정을 거친 보테가베네타의 백은 이제 전 세계 소비자의 마음을 깊이 건드리며 럭셔리 레더 브랜드의 앞줄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아는 사람만 안다는 은둔자적 럭셔리 브랜드, 화려한 컬러와 네온이 난무하는 시대에서 고적한 자태를 유지하는 비밀의 화원 같은 럭셔리 핸드백 보테가베테나가 조용히 당신의 심장을 빼앗는 그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토마스마이어의 힘
도산 위기에 몰려있던 보테가베네타를 지금의 ‘파워 브랜드’로 만들어낸 힘은 바로 독일 출신의 크리에이티브디렉터 토마스마이어(Tomas Maier)의 힘이다.
2001년 쇠퇴한 사원처럼 방치되어 있던 보테가베테나를 지휘하게 된 그는 로고를 드러내지 않고 오로지 가죽의 품질과 우븐 기법으로 승부하는 보테가베네타의 정신을 지키면서도 실용성과 모던한 디자인 감성을 덧칠한 핸드백을 내놓으면서 6년만에 보테가베네타를 5억5500만 달러의 흑자 브랜드로 재탄생시킨 마법을 발휘했다.
디자이너 자신의 라벨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라이프스타일 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장인 정신으로 일궈낸 보테가베네타의 전통을 유지하며 조용한 변화를 더한 것이 바로 바로 토마스마이어가 보네타베네타를 이해하는 방식이었다. 과거를 부인하는 혁명보다는 과거의 유산을 새롭게 해석하는 르네상스적 사고방식이라고 할까?
럭셔리 브랜드들이 거대 제국의 기틀 아래 뭉치면서 사업가적 면모를 드러내던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진군했던 톰포드가 ‘구찌 by Tomford’ 혹은 ‘구찌=톰포드’라 할 만큼 자신의 파워와 디자인 감성으로 브랜드 자체를 흡수해버린 것과 달리 토마스마이어는 그 자신을 보테가베네타 전통 속에 흡수시켜 디자인 감성을 녹여내고 이어 붙여 ‘보테가베네타 속의 토마스 마이어’를 이끌어냈다. 다시 말해 그는 보테가베네타를 자신의 디자인 세계에 점령시키기보다는 자신을 보테가베테타 속으로 던져 넣은 자기 희생적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그 결과 보테가베테타는 ‘토마스마이어’의 그늘 속에 가려지지 않고 브랜드 자체의 힘으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파고들었고 토마스마이어는 화려한 조명 속에서 빛나기 보다는 보테가베네타의 작업실에서 조용히 자기 할 일을 하는 ‘장인적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살아남게 되었다.
이 같은 토마스마이어의 ‘욕심내지 않는 마인드’는 하나 하나 가죽을 꿰어 만드는 보테가베네타의 ‘인내와 조화’의 철학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점이 톰포드 광풍이 구찌를 휩쓸고 지나며 패션계 안팎의 스캔들로 비화되었을 때도 토마스마이어와 보테가베네타는 점점 더 강한 파워를 내며 매출 파워를 이어나갈 수 있던 비법이었다.
브랜드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환상의 복식조
아이러니하게도 토마스마이어를 보테가베네타로 불러들인 것은 바로 구찌의 전성기를 이끌던 당시의 톰포드였다.
독일에서 건축가의 아들로 태어나 자신의 라벨 ‘토마스마이어(Tomas Maier)’를 운영하며 플로리다
예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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