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니테일로 묶은 머리, 크고 짙은 선글라스, 사람의 접근을 막는 커다란 부채로 무장한 디자이너 라거펠트, 그의 사생활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또 한번 실망하게 됐다.
지난해 말부터 관심을 모아오던 칼라거펠트의 다큐먼터리 ‘라거펠트컨퍼덴셜(Lagerfeld Confidential)’의 뚜껑을 열어본 결과, 라거펠트의 비밀스런 사생활을 엿볼 수 있으리라는 대중의 기대감이 무너져 버린 것이다.
가장 은밀한 장면이라고 해봤자 롱샷으로 잡은 라거펠트의 저택 외부 모습과 세수하는 모습, 가운을 입은 장면 등의 정도로 ‘기밀(Confidential)’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민망하다는 평이다.
하지만 90분 상당의 다큐멘터리에는 그가 사진 촬영하는 모습이나 아이팟과 굵은 반지가 가득한 백을 챙겨들고 여행하는 모습, 유명 모델 및 배우들과 패션 이벤트를 벌이는 모습 등이 담겨있어 그나마 위안이 된다. 그러나 뭔가 자극적인 것을 기대했던 사람들이라면 심히 졸릴 수도 있다.
지난 2년 동안 라거펠트와 동행하면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로돌프마르꼬니는 수십년 동안 간진되어 온 라거펠트의 성 정체성(게이인가 아닌가)에 대한 질문을 어렵사리 던지지만, 라거펠트는 특유의 애매모호한 대답으로 대신했다.
그러나 라거펠트가 고용한 젊은 남성 모델과 강한 유대감을 갖고 있다는 느낌이 필름 속에 슬쩍 느껴져 벌써부터 호사가들의 입을 근질거리게 하고 있다.
라거펠트는 필름 속에서 합법화된 성매매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혔고 재능있는 포토그래퍼로서의 면모를 다시금 과시하기도 했다. 그 덕분에 라거펠트의 카리스마에 억눌린 티가 폴폴 나는 마르꼬니의 다큐멘터리는 더욱 설익은 느낌을 준다는 평이다.
지난해 150시간 분량의 필름자료를 기초로 라거펠트와 공조 작업으로 이뤄진 다큐멘터리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패션계는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그의 삶과 사진작가 또는 화가, 혹은 영화와 미술 애호가로서의 그의 히스토리를 펼쳐 보일 것으로 기대됐다.
강박적이고 예민하고 지배적이며 제멋대로인 그의 어두운 정서를 엿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돼 극단적으로 감정의 폭이 넓은 라거펠트의 사생활과 패션, 그리고 돈이 뒤엉킨 서사극이 전망되기도 했다.
특히 1989년 에이즈로 사망한 그의 오랜 파트너와의 격렬했던 관계 등 흥미로운 사생활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내심 원했던 사람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비감으로 자신을 무장해온 라거펠트가 슬쩍이나마 자신을 드러냈다는 점이 위안이 되기도 한다. 그는 디자이너와 사진에 대한 재능만큼이나 뛰어난 마케터의 재능도 가진 인물이다.
예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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