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의 주인공 그르니에는 자신을 매혹시키는 향에 빠져 결국 살인을 저지르고, 그를 매료시킨 가장 아름다운 향을 모아 제작된 향수는 냄새를 맡는 모든 사람을 관능에 들뜨게 해 살인으로 몰고 간다. 읽는 이의 관점에 따라 책 전반에 깔린 지독한 악마적 미학에 거부감을 느끼기도 하고, 혹은 절대적 미를 추구하는 광적인 예술가의 정신에 동정심을 갖게 한다. 향에 대한 그르니에의 집착은 실제로 세상과 거리를 둔 채 은둔생활을 하는 쥐스킨트의 미(美)에 대한 욕망과 묘한 대비를 이루며 책을 읽는 내내 아름답고 음울한 향에 매혹당하고 만다. 실제로 그르니에 만큼 극단으로 치닫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를 기억할 때 그 사람의 향을 떠올리는 일이 많다. 오죽하면 소설 ‘젊은 느티나무’의 여주인공은 ‘그에게는 항상 비누 냄새가 난다’라는 말로써 글 전체에 갓 세수한 남자의 비누 향을 심어 놓았을까. 향수는 사람의 이미지를 결정하고 은밀한 꿈까지 후각으로 전달하는 비밀과 도발을 동시에 갖춘 야누스라 할 수 있다. <편집자주>
특별함을 잃은 향수
그르니에는 최상의 향을 얻기 위해 사람까지 죽였지만 지금 뷰티 업계는 너무나 많은 향수 때문에 전통적인 향수의 이미지가 깨어질까 우려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오랫동안 특별한 날, 특별한 이벤트를 위해 사용하는 고가의 제품으로 인식됐던 향수가 대중화되면서 생겨난 부작용이라고나 할까?
지금의 향수는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냥 화장품의 일부, 혹은 액세서리의 한 종류처럼 기분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하는 소모품처럼 됐다. 과거 향수업계가 ‘희소성’을 무기로 뭔가 비밀스런 이미지를 향수 속에 심어놓았다면 최근의 향수는 셀러브리티들 자신의 이름값을 인정받기 위해 가장 먼저 론칭하는 ‘셀러브리티 마케팅의 필수 도구’처럼 자리 잡았다.
셀러브리티(유명 인사)라는 말에서 드러나듯, 대중과 친숙한 셀러브리티 향수는 여배우 엘리자베스테일러의 향수 화이트 다이아몬드(White Diamond)를 시작으로 제니퍼로페즈(‘Glow by J.Lo’, ‘Still’, ‘Miami Glow’, ‘Live’), 브리트니스피어스(Believe), 데이빗베컴(Instinct), 카일리미노그(Darling), 패리스힐튼(Just me, Can Can), 사라제시카파커(‘Lovely’, ‘Covet’), 크리스티나아길레라(Christina Aguilera), 클로에세비그니(Chloe) 등 그 수는 나날이 늘어만 가고 있다.
코티(Coty), P&G(Procter&Gamble), 파룩스프래그런스(Parlux Fragrance) 등의 업체들은 소비자에 대한 유명인들의 파워를 향수사업에 연결시켰고, 가속화된 향수의 대중화는 이제 트렌드만큼이나 변덕스러워져 특정한 향수에 대한 고객의 충실도와 상품의 지속적 호소력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1920년대에 첫 선을 보인 ‘샤넬 No5’나 ‘미스디올(Miss Dior)’이 지금까지도 유명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셀러브리티 향수는 그 수명이 셀러브리티들의 인기 만큼이나 짧기만 하다.
향수에도 유행이 있다
1960년대 입셍로랑의 향수 ‘Y’, 기라로쉬의 피지(Fidji)가 등장하면서 일반 대중과 친숙해진 향수는 1970년대 입셍로랑의 ‘오피움(Opium)’ 랑콤의 ‘오드랑콤(O de Lancome)’, 까샤렐의 ‘아나이스 아나이스(Anais Anais)’ 등이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 여기에 에스티로더, 레블론(Revlon) 에이본(Avon) 맥스팩터(Max Factor) 등의 업체가 가세하며 더욱 활성화됐다.
특히 80년대는 캘빈클라인의 ‘옵세션(obsession)’ 조르지오아르마니의 ‘조르지오 비버리힐즈(Gorgio Beverly Hills)’ 등 디자이너들의 향수가 진한 향과 자극적인 광고 마케팅으로 향수는 필수품이라는 인식을 만들었고, 에스티로더의 ‘화이트린넨(White Linen)’은 상큼하고 부드러운 향을 선보여 진하고 관능적인 과거의 향을 벗어나 1990년대 향수 트렌드의 시발점이 됐다.
이후 이세이미야케의 ‘로디세이(L'Eau d'Issey)’는 뿌린 듯 안 뿌린 듯 은은함을 무기로 순수함을 사랑하는 여성들을 끌어들였고, 라거펠트의 ‘Sun Moon Star’, 랄프로렌의 사파리(Safari)는 좀더 개성있는 느낌을, 샤넬의 알루어(Allure)는 다시 여성스러운 향으로 복귀의 신호탄을 올렸다.
또 유니섹스한 분위기의 향수인 캘빈클라인의 ‘CK One’과 ‘Truth’, 까샤렐의 ‘노아노아(Noa noa),’ 랑콤의 ‘미라클(Miracle)’ 또한 부담스
예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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