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도 쌀쌀하니 분위기 그럴싸한 가을, 뜬금없는 질문 하나 던져보자. 패션(Fashion) 하면 연상되는 것이 창작의 고통에 고뇌하는 디자이너의 모습인가? 아니면 매혹적인 모델의 멋진 자태인가? 유명 디자이너의 작업실을 둘러 볼 기회와 헤더막스를 직접 볼 기회 중 하나만 선택하라면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아니, 탁 터놓고 말해서 리카르토티시와 케이트모스 중 어떤 이름이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가?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전공자라면 모를까, 대다수 일반 소비자들은 모두 후자 ‘패션 모델’을 답으로 선택할 것이다. 왜? 복잡하고 수사적인 표현으로 설명되는 디자이너의 창작 의도를 듣는 쪽보다는 그 옷을 걸친 매력적인 모델에 눈길이 더 가는 것이 일반적인 일일테니까. 이 같은 결과는 케이블 채널에서 상영되는 모델 선발 프로그램, ‘America's next Top Model’, ‘I am a model’과 디자이너를 뽑는 ‘Project Runway’의 시청률을 비교해 봐도 명확히 드러난다. <편집자주>
내겐 너무 소중한 모델
디자이너의 입장에서는 인정하기 껄끄러운 일이지만, 소비자의 눈길을 끄는 모델은 특정 브랜드와 소비자를 가깝게 연결시켜 주는 고리이자 선전 도구인 것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소비자들은 각종 매체에 등장하는 모델들의 너무나 비현실적인 깡마른 몸매를 부러워하고, 대충 걸쳐도 멋진 스타일을 시샘하기도 한다. 때론 아름다움 자체를 숭배하면서 패션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기도 한다.
또 좋아하는 모델이 등장한 광고 속의 그 옷을 입거나 가방을 들면, ‘나도 저들처럼 멋져 보이지 않을까?’하는 망상에 광고 아이템을 열심히 수집하기도 한다. 간단히 말해 모델은 소비자를 매장으로 이끄는 가장 강력한 광고판인 셈이다.
이처럼 소비자 포섭력이 높아지다 보니 과거 디자이너들의 마리오네뜨처럼 움직이던 모델이 아닌, 자신의 네임밸류를 활용해 독립적인 ‘비즈니스맨’으로 그 영역을 넓히며 파워를 키우고 있다.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무기’라는 말을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한 때 디자이너들은 모델들의 비위를 맞추느라 창작의 고통만큼이나 진땀을 빼기도 했다. 물론 동구권에서 쏟아져 들어온 모델 지망생들과 인터넷을 기반으로 번성하는 모델 사이트, 여기에 셀러브리티들의 패션 파워가 커지면서 모델들의 공급은 넘쳐나되 수요는 한정된 불안정한 상태에 처해있긴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패션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하는 세력이다.
수퍼모델의 등장과 몰락
패션계에서 모델의 파워가 본격적으로 커진 것은 디자이너들이 더 이상 ‘입소문’에 의지하지 않고, 방송매체나 빌보드 광고를 적극 시작한 1980년대 부터였다.
과거 ‘패션에 관심 있는 소수’에게 노출됐던 패션 모델들이 매체 광고를 통해 일반 대중들에게 직접 모습을 드러내게 되면서 이들은 자신이 광고하는 브랜드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친숙한 이름이 됐다.
폴리나폴리츠코바나 캐롤알트, 엘맥퍼슨 등 인기 모델은 대중의 지지도를 기반으로 자동차부터 음료까지 다양한 부문의 광고작업은 물론, 영화와 패션 사업에 진출하면서 모델의 상업적 파워를 증명하기 시작했다.
이후 1990년대는 문자 그대로 ‘수퍼모델’이 패션계를 주도(?)했다고 할 만큼 세력이 강해져서 런웨이 무대뿐 아니라 각종 토크쇼, 잡지, 혹은 나이트클럽에 등장한 이들의 시시콜콜한 상황이 대중들에게 회자되기도 했다. 린다애반젤리스타, 나오미캠벨, 크리스티틀렁턴, 클라우디아쉬퍼, 신디크로포드, 케이트 모스 등은 할리우드 스타보다 더 많은 인기를 누렸다.
이처럼 모델 파워가 커지면서 상대적인 불안감을 느낀 디자이너들은 갈수록 높아지는 이들의 몸값과 할리우드 스타들 못잖은 거만한(!) 태도에 넌더리를 내면서, 콧대 높은 모델보다는 아예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친숙하고 패션에 대해 경외심을 갖고 있는 할리우드 스타를 광고에 등장시키는 방향으로 선회,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은 셀러브리티 파워가 패션계를 장악하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이처럼 패션 모델의 존재감과 상업적 가치를 높여주는 패션지 커버나 광고 캠페인을 셀러브리티들에게 빼앗기게 되자 모델들은 이전의 파워를 잃게 됐고, 러시아 연방 해체와 자본주의 도입으로 경제적 혼돈에 빠진 동구권의 모델들이 뛰어난 신체적 장점을 무기로 패션 디자이너의 러브 콜을 받으면서 모델간의
예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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