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 정신이 깃든 디자인을 선보이며 진정한 의미의 꾸뜨리에의 계보를 이어갔지만, 자본이 좌우하는 패션계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프라다(Prada)에 대량의 지분을 매각했던 아제딘알레이야(Azzedine Alaia)가 다시 디자이너 알레이야의 손에 돌아왔다.
지난 2000년부터 유망한 브랜드를 인수, 패션 제국을 꿈꾸던 프라다그룹과 파트너쉽을 맺어 소자본의 어려움을 털고 유통 마인드를 배워왔던 알레이야는 프라다에 매각했던 지분을 모두 되찾아 자신의 패션하우스의 단독 소유주이자, 브랜드 네임을 확보함으로써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씻을 기회를 마련했다.
열혈 매니아들과 패션 전문가들에게 사랑받았지만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거리감이 있었던 아제딘알레이야는 프라다의 우산 아래에 체계적인 재정·유통 지원을 받았다.
그 결과 지난 해 매출이 30% 성장한 1320만 유로를 기록, 브랜드 입장에서는 극적인 성공을 거뒀지만, 프라다그룹 전체 수익에 대한 매출 기여도는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
사춘기 열병 같았던 브랜드 인수전을 벌이다 극심한 유동자본 압박에 시달렸던 프라다가 야심차게 인수했던 질샌더, 헬무트랑, 펜디 등의 매출 부진을 겪던 브랜드를 매각하고, 핵심 브랜드 중심의 브랜드 다이어트전을 펼쳐오는 중에 아제딘레이야를 놓아주기로 결정한 것도 결국 아제딘알레이야 라벨의 성장이 전체 매출에 미치는 영향이 기대에 못미쳤다는 분석이 나왔기 때문인 듯.
Who is 아제딘알레이야?
패션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에 충분하다고 평가되는 디자이너 아제딘알레이야는 튀니지 출신으로서 조각을 전공한 후 꾸튀르 드레스 제작에 관심을 갖게 됐고, 기라로쉬에서 두 시즌을 보내며 섬세한 재단-봉제-디자인 기교(crafting)를 익혔다.
1970년대에 그가 지휘한 ‘챨스쥬르당(Charles Jourdan ) 컬렉션’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조각을 통해 익힌 인체에 대한 감각과 섬세한 크래프팅이 빚어내는 바디 컨셔스한 디자인이 1980년대 높은 찬사를 받으며 영화배우들과 수퍼모델, 상류층 인사들을 고객으로 확보하며 그의 패션쇼는 패션계의 유명 인사들이 모이는 모임의 장이 되기도 했다.
장인적인 디자인 마인드에 마켓에 대한 자신감까지 겸비한 아제딘알레이야가 가져올 즐거운 충격에 패션계는 들썩인다.
예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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