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과 몸의 새로운 관계를 규명하자’란 패션 디자이너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늘씬한 다리와 팔을 가진 몸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라며 신체장애자를 포함한 여러 바디를 디자인해 온 알렉산더 맥퀸. 움직이지 않는 몸의 아름다움에 스포트를 받아 종래와는 다른 옷의 조형에 심취한 안드류 픽스, 백발의 노파에게 새하얀 드레스를 입혀 파리 컬렉션에 유니버설한 시점을 던진 A.F.반디볼스트.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바디를 받아들이려는 디자이너들의 실험이 패션 디자인의 영역을 크게 확대시키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인이라면 몸짓 손짓이 격렬하죠. 몸을 움직이면 머리가 움직이지 않게 된다. 움직이지 않는 몸을 가진 고요함을 디자인해보고 싶었습니다”라고 이탈리아 사르데니아섬 출신의 앤드류 픽스는 말한다. 픽스는 99년 S/S 오뜨 꾸띠르 컬렉션에서 전신이 경직해 버린 듯한 가벼운 볼륨 드레스를 발표했다. 어깨를 움츠리고 허리를 구부리고 천천히 걷는 모델은 사르데니아의 양치기의 이미지를 따왔다고 한다. 중후한 교향곡을 배경으로 등장한 옷은 등과 발에 큰 뭉치를 달고 몸을 찌그러뜨려 왜곡시키고 있다.
A.F.반데볼스트의 99/2000 추동 컬렉션의 모델은 전원이 백발인 노파였다. 주름진 하얀 피부에 하얀 머리, 하얀 코트드레스가 전신을 감싼다. 깜깜한 회장에 잠시 멈춰 선 노파의 머리 위로 핀 스포트가 비취면 회장은 무언지 모를 엄숙한 분위기에 휩싸인다. 팽팽한 피부의 9등신 모델은 없다.
99/2000 F/W의 J.P.고띠에 컬렉션의 최후를 장식한 것도 백발의 모델이었다. 여기서는 웨딩수트. 노인 커플이 하얀 테일러드 수트를 입고 웨딩 벨 대신 몸을 장식한 것은 우레탄의 하얀 이불이었다. 이것보다 먼저 열린 99 S/S 오뜨 꾸띠르 컬렉션의 웨딩신은 터틀넥의 커플이 튤 베일을 덮어섰다. 남녀노소의 개념을 버린 바디로의 어프로치가 엿보인다.
의복에도 새로운 어프로치를 추구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준야 와타나베의 2000/2001 추동 컬렉션에 등장한 것은 구름과 같이 바디를 감싼 폴리에스터 드레스였다. 비치는 폴리에스터 테이프를 겹쳐 만든 드레스에 사용된 것은 종이세공 수법이었다.
말탄 마르제라의 2000/2001 추동 컬렉션의 테마는 인사이드 아웃. 속을 겉으로 끌어낸다는 아이디어다. 사이즈는 이탈리아 기준인 78호. 울트라 L의 헐렁한 옷이다. 입체를 중시하는 모드의 전통을 깬 옷을 디자인하기도하고(98/99 F/W), 리사이클 옷을 만들기도(2000 S/S)하는 등 상식을 깨는 아이디어가 특이하다. 마르제라는 옷을 몸에서 해방시켜 버렸다.
토포로지(位相기하학)을 응용한 프리 사이즈옷(2000 S/S)을 디자인한 松居에리. 짧은 다리, 비만, 보통의 아줌마를 패션의 최전선에 끌어들여(2000/2001 F/W), ‘이런류도 아름답다’를 디자인한 木下美伽. 일본 도쿄에서도 새로운 몸과 옷을 찾아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세계적인 새로운 바람으로 등장한 패션 디자이너들의 이와 같은 도전은 이제 유니버설을 넘어 새로운 의복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시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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