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국 모 디자이너 브랜드의 뉴욕 소호 진출에 잠시 비공식적으로 관여한 적이 있었다. 그 브랜드는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 주위에 100평 크기의 매장을 열기를 희망했다. 먼저 나는 비어있는 괜찮은 매장 몇 군데를 찍어 건물 임대를 맡고있는 부동산 중개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중개인에게 대충 필요한 매장 정보를 설명하고 임대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러나 부동산 중개인이 던진 첫 한마디는 날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누구나 들어보면 브랜드 이름을 알 수 있는 세계적인 브랜드여야 임대를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갤러리와 가난한 순수 예술가들이 모여있던 소호가 이젠 메디슨과 피프스 에비뉴와 같은 패션 쇼핑거리로 더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냥 패션 쇼핑거리가 아닌 각 브랜드의 명성과 전통성이 묻어 있는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의 새로운 세일즈 전략적 장소로 변해가고 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오픈되어 있는 유럽피언과 아메리칸 디자이너 브랜드 샵 주위로 「샤넬」 「프라다」 「페라가모」 「토미」 「도나카란」 등이 이번 봄을 전후로 소호 럭셔리 중심상권에 매장을 오픈할 예정이고 「바나나 리퍼블릭」 「알마니 익스체인지」 「자라」가 자리 잡고 있는 브로드웨이 에비뉴에는 「H&M」이 곧 오픈 예정이다.
4년전 소호를 처음 방문했을 때는 여기저기 작고 아기자기한 액세서리와 무명 디자이너들이 만든 값싸고 독톡한 상품들이 다양하게 디스플레이되어 있었고 많은 갤러리와 안티크 샵들이 품위있는 레스토랑과 함께 즐비해 있었는데 이젠 모두가 떠나간 것 같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는 임대료에 하나 둘씩 들어서는 자본력 있는 유명브랜드들 사이에서 가난한 예술가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어진 것이다.
누구나 들어서 알 수 있는 세계적인 브랜드에게만 매장을 임대한다는 것은 브랜드 명성을 따져 매장을 빌려준다는 의미보다는 집 주인 입장에서 비싼 임대료를 제때 낼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척도를 유명한 브랜드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또 하루에 몇 건씩 들어오는 임대 문의 덕분에 가능하면 더 유명한 브랜드에 임대해줘 자리 값을 높이고 싶은 것이 집주인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왜 소호에는 그 이름높은 브랜드들이 너도 나도 진출해 들어오는 것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소호지역에 장관을 이루고 있는 고풍스런 빌딩들과 그 빌딩들 사이에 속속 들어 있는 갤러리와 샵. 소호 바로 밑에 자리잡고 있는 차이나타운과 옆에 위치한 이탈리안 타운. 이곳을 통과하면 세계자본을 움직이는 월 스트리트와 세계최고의 쌍둥이 빌딩을 볼 수 있으며 자유의 여신상 뒤로 광활하게 펼쳐지는 아틀란틱 오션이 있다. 이 곳을 보기 위해 매일 몰려오는 전 세계 수십만의 관광객들과 이 지역에서 근무하는 미국 최대 연봉자들이 이곳 소호에서 뿌리는 금전을 상업적인 마인드로 똘똘 뭉친 의류브랜드와 리테일러들이 가만히 바라 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쇼핑의 명가 5번가와 메디슨가를 재쳐놓고 소호가 럭셔리 쇼핑장소로 변해가는 이유는 이렇다. 많은 바잉 파워를 가진 관광객들 외에 현지에 거주하는 시민들의 생활 패턴을 보면 맨하탄 다운타운 지역에 살고있는 뉴욕시민의 상당수가 23번가 윗 쪽에서 쇼핑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5번가와 메디슨가의 50∼60번 스트리트의 미드타운 지역에서 쇼핑을 하는 다운타운 지역 주민들이 적고 이들은 보통 다운타운 지역에서 모든 쇼핑을 하며 그들이 가진 경제력은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이런 변화들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만은 아니다. 소호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의 걱정은 소호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명성을 잃고 단지 쇼핑 타운으로만 전락해 메디슨 에브뉴와 별반 틀린 모습이 없이 동질화해간다는 것과, 소호만의 고풍스런 빌딩의 모습이 브랜드 매장의 상업적 목적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이에 브랜드 운영자의 입장에선 “소호는 그 자체의 이름만으로 상업적 문화적으로 훌륭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말하며, “최대한 소호의 전통적 양식에 맞는 인테리어어와 외벽공사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제 누가 아무리 말려도 소호는 고급 브랜드의 전시장으로 변하게 되어있다. 소호의 옛 모습은 그대로 간직하고 유명 브랜드의 특성을 살려 지역주민과 브랜드 운영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도록 변화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세계 어떤 도시든 1군데 이상의 쇼핑 명가가 있듯 뉴욕의 소호도 5번가와 메디슨가를 이을 제2의 명품 쇼핑가로 변화, 발전되길 기대해본다.
뉴욕=이승협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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