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라크 전이 구체화되면서 패션계에도 전쟁의 파장이 미치고 있다.
경기침체의 파장으로 몇 년째 매출 부진을 겪고 있는 어패럴 업계에게는 이번 전쟁이 매출 악화를 가속시키는 결정타가 될 수도 있다. 1년여 동안 끌어온 미-이라크의 대립, 국제 사회의 혼란한 대립 속에 불안정한 상태를 지속해왔던 소비자들과 어패럴 업체들에게 이번 전쟁이 가져올 결과를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회색, 블랙 그리고 블루
전쟁의 기운이 감돌 때 패션계를 지배하는 대표적인 색상은 ‘회색’ ‘블랙’ 등 마음을 가라앉히는 색조들이다.
미-이라크 전 발발이 가시화되면서 럭셔리 업계부터 매스 브랜드까지 회색과 블랙 색상의 아이템을 집중배치하고 있는 것은 전시(戰時)패션의 일반적인 성향을 반영한 것이다. 전쟁의 고통과 불안에 움츠러든 소비자의 정서와 동떨어진 감정을 표출할 수 없는 어패럴 업계의 속성을 엿볼 수 있다.
반면 희망을 상징하는 색상인 ‘블루’나 평화를 상징하는 ‘레인보우’ 색상이 급부상하고 있는 것은 전쟁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달래고 낙관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어패럴 업계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점이다. 소비자의 마인드를 파악하는 것이 어패럴 업계의 사명인 만큼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전쟁’이라는 주제를 외면할 수 없는 패션계의 현실이 회색과 블루 그리고 레이보우 컬러에 숨어있다.
밀리터리 트렌드·30년대 클래식 룩
지난해 하반기부터 디자이너 컬렉션의 단골로 등장하는 밀리터리 룩 역시 전쟁을 반영한 일종의 테마 룩이다.
럭셔리한 실크·새틴으로 제작한 컴뱃 팬츠, 닳은 듯한 조직감이 돋보이는 코튼 컴뱃 팬츠, 기름에 절은 듯한 더티 진 팬츠까지 컴뱃 팬츠(combat:전투복)는 패션계의 핫 트렌드로 일찌감치 자리잡았다. 버뮤다 숏 스타일부터 발목뼈를 덮은 길이, 스트링이나 밴드로 자유롭게 길이 조정이 가능한 제품까지 다양한 스타일이 등장했다.
어깨 견장이 돋보이는 더블 브리스트 재킷, 배지로 장식한 군복 색상 코튼 아우터 역시 밀리터리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아이템들.
이처럼 전쟁에서 모티브를 얻은 밀리터리 룩이 패션가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면 전쟁의 두려움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고 평안한 시절에 대한 향수를 일깨워주는 우아하고 클래식한 1930년대 스타일이 또 다른 흐름으로 서서히 힘을 얻고 있다.
컬러와 커프스를 겹겹이 더해 우아하고 기품있는 멋을 주고 흐르는 듯한 드레이프 성이 돋보이는 1930년대 스타일은 스타일 자체보다 정서적인 아름다움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무언가에 의지하고 기대고 싶은 소비자의 마음과 맞닿는 부분이 있다.
Do - it - yourself 패션
반전 물결이 거세었던 지난 1960년대 히피 패션이 부상했던 것처럼 또 다른 전쟁을 앞둔 지금, ‘마음대로 입는(do-it-yourself)’패션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파리패션주간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do-it-yourself’ 패션은 소비자들이 자신의 욕구에 맞게 스타일을 표현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자유롭게 겹쳐 입을 수 있는 레이어드 아이템을 통해 소비자들 스스로의 스타일을 창조하는 스타일을 제안한 「헬무트랑(Helmut Lang)」 역시 ‘마음대로 입는’ 컨셉을 도입했다.
브랜드들도 레이오셀, 라이크라, 쉬폰, 면 등 얇은 소재를 취향에 따라 같은 디자인으로, 혹은 다른 디자인의 제품을 겹쳐 입도록 구성한 ‘알아서 입는(as- you- like -it)’ 컨셉을 제안하고 있다. 어패럴 업체들은 몸이 뚱뚱해 보이지 않도록 소재와 스타일 재단에 신경 쓰고 있다. 겹쳐 입는 레이어드(layerd style) 스타일의 강점은 기본적인 디자인 틀에 소비자 자신의 취향을 더해 ‘남과 다른’스타일을 만들어내면서 자신의 독창적인 감성과 기본의 틀에 구속되고 싶지 않은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현상은 브랜드 이름에 충실했던 기존의 관행을 벗어나 소비자 스스로 스타일 구축에 참여하는 성향이 강해진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디자이너가 트렌드를 결정하면 사람들이 우르르 쫓아가던 시절의 종말을 의미한다. 정치에 대한 사람들의 참여의식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지금, 스스로 자신의 스타일을 결정하고자 하는 소비자들 ‘주인의식’이 강해지고 있다는 증거로 디자이너들이 소비자의 성향을 좀더 다각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스트라이프 무늬가 뜬다
갑자기 스트라이프 무늬가 어패럴 마켓의 전면에 나서고 있는 것 역시 주목할만한 현상.
레이투웨어 브랜드에 필수 아이템으로 등장한 스트라이프 무늬는 평범한 디자인에 포인트를 주고 시각적인 환상을 준다는 디자인 측면 외에도 시선을 집중시킨다는 점에서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소비자의 심성에 어필하는 요소가 있다.
스트라이프 간격을
예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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