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의 상하 경계가 약화되는 것일까? 아니면 불경기 후유증으로 패션 지도가 ‘상업성’ 중심으로 재편성되는 것일까? 그도저도 아니면 ‘디자인 카피’에 대한 소비자들의 무관심이 매스밸류 브랜드를 거대 패션 파워로 만들어낸 것일까? 내년 봄·여름 시즌을 겨냥한 2006 봄·여름 런던 컬렉션에 참가한 패션 관계자들과 프레스들은 영국의 매스밸류 브랜드 「톱숍(Topshop)」의 첫 런어웨이 쇼를 지켜보면서 ‘창의성’을 무기로 패션 선도자로 군림해 온 패션 디자이너들의 약세와 디자인 카피 브랜드라는 오명을 받으면서도 막강 매출에 힘입어 독자적인(?) 입지를 다진 매스밸류 브랜드 「톱숍」의 야심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매스밸류, 더 이상 카피 브랜드 아니다”
‘한 시즌 입고 버려도 좋은 값싼 카피 브랜드’, ‘젊은 아이들이나 입는 거리의 브랜드’라며 「H&M」 「자라」 「톱숍」 등 하이스트리트 브랜드의 파워풀한 성장을 애써 무시해 온 하이엔드 디자이너들이 최근 들어 하이스트리트 브랜드의 파워를 실감하고 있다.
특히 대표적인 럭셔리 그룹 구찌의 신임 CEO 로버트 폴렛이 ‘팔릴 상품을 제작해 팔리게 하라’면서, 값싼 디자이너 카피품을 급속도로 유통시키며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는 스페인 매스밸류 업체 「자라」를 벤치마킹하자는 선언을 해 그런 분위기는 정점에 이르렀다.
이제 패션계는 단순히 창의성만을 내세운 ‘그들만의 작품’에 만족하기보다는 소비자들의 욕구에 맞는 디자인을 발빠르게 유통시키는 ‘디자인·유통·가격’ 등 세 가지 요소의 조합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시점에 놓였다.
물론 유명 디자이너들이 런던 컬렉션보다는 화려하고 여유로운 파리 컬렉션이나 밀라노 컬렉션, 뉴욕 컬렉션에 주로 참여해, 런던 컬렉션의 위치가 취약해진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알렉산더 맥퀸, 후세인 샬라얀, 롤랑 뮈렛, 매튜 윌리엄스, 루엘라 바틀리 등 주목받는 디자이너들이 건재하고 눈길을 끈 아이템을 내놓은 가운데서도 「톱숍」의 공식적인 컬렉션 참가는 하나의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존 런던 디자이너 브랜드와 육박전을 선언한 「톱숍」의 이번 2006 봄·여름 런던 컬렉션 참가에 시선이 쏠린 것은 그만큼 소비자와 가까운 「톱숍」이 런던 패션 지도에 가져올 변혁에 대한 기대감과 불안감이 크기 때문이다.
런던 컬렉션 진출로 디자인 카피 의혹 일축
런던 컬렉션에 공식 출사표를 던진 「톱숍」은 ‘남의 디자인을 훔쳐 싸게 카피한다’는 근거없는(?) 비판에 넌더리가 났다면서 하이엔드 컬렉션인 「톱숍유니크(Topshop Unique)」 라인을 통해 「톱숍」 특유의 디자인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하겠다는 야심을 밝혔다. 3년 전 런칭된 「톱숍유니크」 라인은 재능 있는 「톱숍」의 인하우스 디자이너 팀의 창의성과 소비자의 욕구를 반영한 ‘시장적 융통성’이 가미된 디자이너 라인으로 업스케일 시장을 주도하고 위한 「톱숍」의 야심작이다.
지난 3년간 하이엔드 시장의 흐름을 파악하며 실력을 닦아온 「톱숍」은 런던 컬렉션 공식 데뷔를 통해 디자이너 브랜드 시장에 대한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한편 「톱숍」은 런던 컬렉션에 맞춰 뉴욕 다운타운에 위치한 패셔너블한 부티크 ‘오프닝세러머니’에서 DJ 및 《W》, 《Teen Vogue》 등의 패션지 기자와 영국 프레스들을 초대 2005 가을·겨울 「톱숍유니크」 라인의 신상품을 소개하고 「톱숍유니크」 라인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마케팅 전략을 펼쳤다. 뉴욕 컬렉션의 오프닝에 맞춰 진행된 뉴욕 행사는 패션 라밸로서의 「톱숍」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는 한 예라 할 것이다.
그동안 「톱숍」은 값싼 매스밸류 브랜드지만 케이트 모스 등 유명인을 내세운 광고전략을 통해 소비자들의 인지도를 높여왔고, 이번 런던 컬렉션에 밀라노 컬렉션에서나 볼 수 있는 최고급 모델과 최고의 무대 연출팀에게 쇼 진행을 맡겨 ‘자본’의 힘을 보여주는 ‘최고의 무대’를 연출했다. 덕분에 상대적으로 자금이 부족한 런던 디자이너들을 우울하게 만들기도 했다. 자본의 논리가 창의적인 자부심을 얼마나 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톱숍」은 “고루한 런던 컬렉션에 새 힘을 불어넣어 활력을 주기 위해 공식적인 패션쇼를 펼친다”는 입장이었지만 자본 압박을 받으며 ‘크리에이티비티
예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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