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요커(?) 디자이너 강진영이 지난 5일, 하얏트호텔에서 오래 만에 「오브제」 컬렉션을 선보였다. 디자이너 진태옥, 탤런트 김희애와 전도연, 사진 작가 김중만 등 무려 1천 400명이나 되는 관객이 몰려 패션 쇼 장은 그야말로 인산인해. 새삼 「오브제」에 대한 국내 패셔니스타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뉴욕과 서울을 오가는 바쁜 와중에 마련한 쇼라 눈 높은(?) 기자의 기대에는 다소 못 미쳤지만 더욱 섹시해지고 성숙해진 ‘오브제 레이디’를 만날 수 있었던 기쁨이 그 아쉬움을 상쇄해주었다. 기자의 뇌리에 고정돼 있던 그 옛날, 아방가르드한 공주 같은 오브제의 모습은 이제는 흔적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한때 「오브제」는 ‘공주마케팅’ 바람에 편승한 운 좋은 브랜드로 치부되기도 했다. 어떤 이는 ‘스타마케팅’의 승리라고도 말했다. 여기에 당시의 패션 관계자나 패션지들은 오브제의 듀오 디자이너 강진영·윤한희의 가능성에 대해 의문 부호를 던졌다. 둘은 박윤수와 루비나와 같은 톱 디자이너를 배출한 중앙디자인그룹콘테스트에 입상한 신인 디자이너 출신으로, 당시만해도 디자이너 브랜드의 예술성과 상업성의 부조화는 연례 행사처럼 미디어가 던지는 ‘공격의 화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을 먼저 알아본 것은 TV였다. 당시 서울방송이 주관한 서울국제패션컬렉션이라는 일명 ‘시팩(SIFAC)’은 패션 쇼 장면을 해설을 곁들여 국내 최초로 녹화로 중계했는데, ‘화(花)’라는 주제로 한 넓은 무대 사용과 한꺼번에 모델들이 피날레에 등장하는 색다른 패션쇼 무대를 선보인「오브제」는 시팩이 배출해 낸 최고의 스타 디자이너로 부상했다. TV를 통해 일약 전국구로 떠오른 「오브제」는 이후 올림픽공원, 예술의전당, 학여울전시장 등에서 차별화된 패션쇼를 선보여 오브제 마니아를 만들어 냈다. 관객이 너무 많이 몰려 같은 쇼를 두 번이나 치르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내셔널 브랜드 「논노」 출신의 윤한희와 디자이너 브랜드 「이상봉」 출신의 강진영의 만남이라는 최상의 아트워크 조합을 만들어낸 이들은 국내 최고의 브랜드로 우뚝 섰다. 당시 이들 듀오가 주도한 ‘공주풍’ 여파는 9시 뉴스에 방송될 정도로 사회적 이슈였다. 덕분에 「오브제」 풍의 아류들이 백화점과 시장에 넘쳐났다. 얌체(?) 브랜드들은 제품이 백화점에 출시되자마자 발빠르게 구매해 ‘카피’를 한 후 바로 반품하는 편법을 써 백화점 숍마스터들을 골탕 먹이기도 했다.
그렇게 잘 나가던 이들 듀오 디자이너는 2000년 갑자기 뉴욕 행 비행기를 탔다. 물론 반대나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국내에서 잘 나가는데 굳이 왜 모험을 하냐는 것이었다. 당시 해외에 진출한 디자이너의 경우 무리하게 패션쇼를 진행하다가 국내에서 번 돈을 탕진하고 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듀오는 우려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미국 행을 선택했다. 호사다마였을까. 뉴욕에 진출하던 첫해 9·11 뉴욕 테러가 터졌고 듀오는 포기보다는 조금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마음만은 부자였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다짐한, ‘한국에서 성공 뒤 미국 컴백’이라는 둘만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뉴욕 컬렉션 진출에 도운을 준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CFDA) 펀 멜리스 사무국장은 「오브제」의 국내 컬렉션 비디오를 보고 나서, “한국의 최고가 뉴욕에서도 최고가 될 수 있다”며 「오브제」의 첫 뉴욕 진출을 축하해 주었다.
그리고 6년에 흘렀다. 다소 거품이 라는 시샘어린 비판도 있지만 뉴욕과 할리우드의 패셔니스타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Y&Kei」는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로는 유일하게 롯데백화점의 명품관 에비뉴엘에 입성해 명품 대접을 받고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이번에 선보인 「오브제 바이 강진영」의 무대는 이전의 「오브제」와 완벽한 차이를 보였다. 공주풍의 치렁치렁한 디테일도, 풍성하고 아방가르드했던 실루엣도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예쁜 공주풍 원피스를 입었던 수줍은 숙녀는 어느새 미국 유학을 마친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