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는 국내 섬유산업의 중심이다. 섬유 관련업체만 2700여 개에 이르며 원사에서부터 제직, 가공, 봉제, 패션에 이르기까지 섬유·패션 전 공정에 걸쳐 산업 클러스터가 형성돼 있다.
한동안 대구는 샌드위치論에 빠져 대표적인 사양산업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유럽이나 일본에 비해서는 개발력이 부족하고, 중국 등 후발국에 비해서는 가격경쟁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이제 중국은 실력차가 있다던 고기능성 제품과 후가공 제품에서도 실력을 인정받고 있어 대구 섬유산업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프리뷰인대구(PID)’에서 본 대구 섬유산업은 분명 새로운 활기를 띠고 있었다. 전체는 아니지만 메인 전시장인 1층은 3일 내내 상담인파로 북적거렸다. 환율격차 등 일부 외부 요인도 있었지만 변화의 근본적인 출발은 섬유업체에 있었다.
가장 먼저 주목을 끈 것은 오너들의 세대교체였다. 40~50대를 중심 한 중소기업들은 시장에서 요구하는 제품을 개발하고, 바이어들의 입맛에 맞는 서비스로 대응하고 있었다. 양떼기로 생산만 잘 하면 된다는 공급자 마인드가 아닌 바이어가 원하는 상품을 먼저 개발하는 고객 중심으로 바뀌고 있었다.
디자인에 대한 투자도 가시적인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대구 섬유업체는 대부분 영세한 중소업체이기 때문에 R&D에 대한 투자여력이 부족하다. 그러나 한국섬유개발연구원과 같은 연구소와 영남대와 계명대 등 대학과 연계한 개발 프로젝트를 활용하면서 다양한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섬유개발연구원은 지난해부터 창조섬유 협의회를 만들어 참여 기업들의 깊이 있는 정보교류와 이에 따른 특허 상품 개발 등의 성과를 보이고 있다. 불황기지만 지역 섬유 관련 대학 졸업생들의 50% 가량이 섬유업체 개발실에 취업할 만큼 디자인 개발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서울의 컨버터만큼의 개발력만 갖춘다면 대구섬유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업그레이드 될 수 있다.
바이어 중심의 공동 마케팅도 대구 섬유산업 부흥의 1등 공신이다. 이번 PID 기간 중 대구섬유마케팅센터(DMC)는 서울 지역 10여 개 패션업체에서 100여명의 디자이너와 MD를 초청했다. 3개 팀으로 나눠 전시회 참관과 생산현장 방문 프로그램을 가동해 서울 패션업체와 대구 섬유업체가 직접 만나 거래하도록 했다. 한국섬유마케팅센터(KTC)는 상하이지사를 통해 상하이마트 내 중국 섬유 및 패션업체 바이어를 초청했다.
대구 섬유산업은 아직도 풀어야 할 난제가 적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새로운 경쟁력을 갖출수 있는 가능성을 찾았다는 것이다. 40~50대 젊은 오너들이 시장흐름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R&D에 투자하고, 지자체와 관련 단체들은 공동 마케팅에 팔을 걷어붙인다면 작지만 강한 ‘强小企業’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미 1000~2000억원대 볼륨 브랜드로 성장해 있는 내수 패션 기업들과 협력한다면 높은 시너지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최근 정부에서 추진 중인 섬유 스트림 사업도 원사에서 패션 브랜드에 이르는 섬유·패션 전 공정을 아우르는 사업으로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면 ‘한국發 글로벌 브랜드 만들기’와 ‘섬유산업 중흥’이란 두 가지 목적 모두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창조섬유’가 대구 경쟁력 높인다
섬유개발硏, 4가지 특허상품 출품…10톤 수주
한국섬유개발연구원(원장 이춘식)을 주축으로 개발된 ‘창조섬유(CRETEX)’가 국내 섬유산업의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창조섬유는 지난해 2월 결성된 ‘대구·경북 섬유산업 신문화 창조 협의회’가 주축이 돼 개발한 소재로서 디자인과 조직에 대한 특허 등록된 소재이다. 이 협의회에는 21개 섬유업체가 참여하고 있으며 대구시와 중소기업청, 개발원이 지원하고 있다.
이 사업을 추진중인 한국섬유개발연구원 서말용 박사(사진)는 “섬유산업은 카피문화가 일반화됐다. 카피는 당장은 매출을 올릴 수 있지만 궁극적으론 국내 섬유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며 “창조섬유는 신소재를 개발하기보다는 기존 원사의 유틸리티를 높여 ‘대구 소재’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례로 린넨은 kg당 1만6000~1만8000원데 비해 레이온은 6000~8000원에 불과하다. 이 경우 레이온사를 활용해 린넨처럼 개발한다면 부가가치를 그만큼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창조섬유 프로젝트의 목적이다. 레피어 기계에서만 제직가능한 린넨에 비해 레이온은 에어제트를 비롯 모든 직기에서 가능하기 때문에 생산성(1.5배)도 매우 높다는 것이다.
개발원은 이번 PID에 「크로체(CROTZE)」 「파브론(PAVRON)」 「테라피(TERAPY)」 등 네 가지의 창조섬유를 선보였다. 「크로체」는 나일론/폴리 분할사와 이형단면사를 사용한 코듀로이 소재로서 투톤(two tone) 효과가 특징이다. 이 소재는 이미 코오롱 「맨스타」와 제일모직으로부터 10톤의 오더를 수주하는 등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파브론」은 양모와 옥수수를 원료로 개발한 소재로서 환경친화형 복합소재이다.
개발원은 제품개발뿐 아니라 B.I 개발, 라벨 디자인, 샘플 의류 제작 등 마케팅 부문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창조섬유 협의회는 지난달 21개 대표들이 모여 ‘카피방지 약정서’에 서명하는 등 개발 활성화에대한 선의의 경쟁을 다짐했다.
서 박사는 “대구 섬유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원사 유틸리티와 소재 디자인 개발이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한다. 시장에서 잘 팔리는 상품을 똑같이 생산하면 된다는 제조업자 마인드를 버리고,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상품을 먼저 개발해야 한다. 대구 섬유업체가 서울의 컨버터만큼의 개발력을 갖춘다면 대구 소재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산·학 연대 뉴 창업모델 개발
계명대 창업보육센터, 14개 디자인 기업 육성
계명대학교 패션대학이 운영하는 창업보육센터(센터장 김봉섭 교수·사진)가 패션·유통업체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창업보육센터는 지난 2007년부터 운영되고 있으며 현재 14개 기업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 기업의 사업모델은 대부분 디자인 개발. 텍스타일 디자인에서부터 문구, 의류, 생활용품, 패션잡화 등 다양한 아이템을 취급하고 있다. 중소 제조업체들이 요구하는 디자인을 개발해주는 ODM 비즈니스가 성과를 내고 있다. ODM이란 설계, 디자인 등을 맡아 개발하지만 상품에는 주문자의 상표가 붙는 생산 방법이다. 주문자는 자사에 맞는 제품을 선택함으로써 유통에 핵심 역량을 집중할 수 있다.
김봉섭 교수는 “대구 지역 제조업체들은 규모가 열악해 당장 돈이 되지 않는 R&D에 대한 투자여력이 부족하다. 따라서 텍스타일과 의류, 용품에 대한 디자인 개발력이 뛰어난 이들 업체들에 대한 관심이 높다. 텍스타일 디자인에서 패션의류 디자인,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특성이 다른 3개 학과 출신이 골고루 포진하고 있는 것도 이 센터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센터에서는 창업 희망자들에게 세무, 마케팅 등 전문 분야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국내외 전시회 참가도 지원하고 있다. 미국 매직쇼와 독일 하임텍스타일쇼, 상하이 인터텍스타일 등에 공동관으로 참가했으며 이번 PID에도 7개 업체가 참가했다.
PID 전시장에서 만난 동일레나운 차창현 상무는 “패션업체에서 곧바로 상품화 시켜도 괜찮을 만큼 상품성이 뛰어나다. 특히 패션잡화와 생활용품 등 전문 디자이너가 부족한 아이템은 디자인 아웃소싱을 추진해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동일레나운은 골프웨어 「아놀드파마」와 「까르뜨블랑쉬」 등을 전개중인 중견 패션업체이다. 이 창업보육센터가 배출한 기업도 적지 않다. 넥타이, 스카프가 주력인 빗살무늬는 디지털 날염 분야 리딩업체로 평가받고 있으며, 이투컬렉션(문구류), 유노, 레까레 등은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김 교수는 “일부 재학생들도 참여하고 있는데 ‘돈으로 팔릴 수 있는 것을 디자인한다’는 마인드가강해 학업에도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특히 창업 후보들의 증가는 궁극적으로 청년실업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인기 기자
ingi@f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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