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기성복의 의류 변천사를 반추, 재해석함으로써 현대에 이르러 의류 산업이 어떻게 발전 해왔고 모델리스트들이 어떠한 형태로 진화해 왔는지, 또 의복 착용이 부의 상징이나 신분상승으로 여겨지던 때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197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의 경제 사정은 열악하기 그지 없었다. 자칭 중산층은 남대문, 동대문 시장에서 디자인보다는 사이즈가 맞고 견고하고 보온성이 좋은 제품을 사 입는 수준이었다.
이에 반해 상류층은 종로·명동·이대입구 등 양장점 밀집지역에서 전문 디자이너가 아닌 점주의 권유에 따라 디자인을 선택하고 양장점에 비치돼 있는 원단으로 사이즈를 쟀으며, 가봉 후 1~2주 이상을 기다려 찾아 입는 실정이었다.
디자인은 주로 몸에 꼭 맞는 스타일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며, 몸에 맞지 않으면 옷이 잘못된 줄로 생각하던 시대였다. 그 시절에는 재단사(모델리스트)가 디자인, 패턴까지 거의 모든 일을 도맡아 했다. 그것도 모자라 생산관리 업무까지 책임져야 했기에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70년대 후반들어 중견 기업들은 기성복 시대가 올 것을 예측하고 동일레나운·미스반도·코오롱벨라·라보떼 같은 내셔널 브랜드를 하나 둘씩 론칭했다. 하지만 디자이너가 턱없이 부족한데다 양장점 맞춤에 종사하던 재단사·봉제사 등 전문인력 대부분이 시스템 부재와 커뮤니케이션 두절로 전전긍긍하던 시절이어서 ‘패션’이란 단어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때 해외에서 전문 디자인을 공부하고 선진 의류 문화를 접한 오리지날리·크레송·논노 같은 브랜드가 등장해 확실한 콘셉을 바탕으로 맞춤복 일변도에서 탈피, 기성복 시장에 먼저 깃발을 꽂았다. 때마침 한국 경제사정도 점차 좋아져 중산층이 늘어나면서 고객 흡수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됐다.
기성복이 붐을 이루면서 자연스레 패턴 분야에도 분업화가 이루어지게 됐다. 패턴사·그레이딩·재단사 등으로 세분화되자 남성의 영역으로만 여겨지던 분야에까지 여성들이 뛰어들었다. 국내외에서 전문 교육을 받고 모델리스트의 길을 가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하지만 교육만 받았다고 모두가 전문 모델리스트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인체구조를 잘 이해하고 종이 위에 그려진 선이 어떻게 인체의 입체감을 살릴 수 있는지를 완벽하게 숙지하기까지는 많은 연습과 반복 훈련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탁월한 모델리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예술적 감성과 기술적 테크닉을 두루 갖춰야만 한다.
아름다운 실루엣을 얻기 위해선 반드시 옷의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재킷을 만들 때 뒤가 들리거나 혹은 앞이 쌓이거나 벌어진다면, 설령 그 옷이 아무리 예뻐보이고 원단이 고급스럽다 할지라도 결코 좋은 옷이라 말할 수 없다.
원단의 숨결인 ‘결’을 파악하고 대상의 입체감이나 활동량·각 부위별 비율 등을 정확히 분석해야만, 옷을 착용했을 때 편안함을 느낄 수 있고 아름다운 실루엣을 표현할 수 있다. 바로 그것이 모델리스트의 진정한 역할이다.
글 (주)이상봉 생산관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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