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쩍이는 골드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았는가? 아마 곧 보게 될 것이다. 이번 가을 새로운 유행 코드로 떠오른 금색 소재들은 과거에 입혀졌던 반짝이 니트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들이다. 전체를 금박으로 코팅하거나, 전체를 세퀸으로 수놓거나, 완전한 금직처럼 보이는 메탈 브로케이드 들이 등장한다.
이 소재들은 선명한 금색, 혹은 파티나(청동색)나 브론즈 빛깔을 띄고 있어, 고대 유품을 보는 듯한 앤티크한 느낌을 전해준다.여기에 블랙에 오묘하게 조화되어, 골드가 들어간 블랙, 블랙이 들어간 골드라는 더 짙은 감성의 마제스티를 추구하는 것이 최근의 추세다.
과연 금색의 옷을 입을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는 이 화려함의 세계는 웨어러블한 형태로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마치 80년대 말 90년대 초, 에드워디안 룩이라는 이름하에 갑자기 화려한 러플과 금색의 자켓이 반짝하고 나타났다 사라진 것처럼 이번 시즌에는 금색 자켓의 풍성한 크라밧을 매는 18세기 풍의 남자 귀족 같은 차림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될 전망이다.
돌이켜 보면 금에 대한 사람들의 집착은 참으로 오래고 질긴 것이다.14세기의 어느 백작은 순금으로 만든 옷을 수백벌 씩 지니고 있었다고 하니, 금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금을 통째로 입어버리는 발상은 600년을 넘어 지속되는 욕망이다.뿐인가. 이같은 욕심은 비단 서양에서뿐 아니라, 동양도 매한가지였다.
동양에서는 금직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금박의 기술이 발달했다. 실크 위에 얇게 편 금색의 박을 입히는 작업은 우리나라에서도 궁중용 스란치맛단 등을 통해 보여지는 기술들이다.
의복에서 ‘황금’이라는 것이 점차 사라졌던 시기는 귀족시대와 함께였다. 프릴이나 레이스 등의 화려함은 지속적으로 존재했지만, 옷에 황금이나 보석을 주렁주렁 다는 것은 앙뜨와네트가 처형된 이후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인식되어왔다. 그들의 드레스에 달린 보석 한 개면 서민들이 며칠을 먹고 살 수 있었다는 얘기가 프랑스 혁명을 통해 진지하게 제기되면서, 여성들의 사치는 패브릭 위주의 것으로 레벨 다운된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 황금으로 만든 옷은 20세기에 들어 다시 한번 빛을 보게 된다.황금이란 인간의 욕망의 절정을 건드리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최고의 사치품으로 여겨지던 오뜨꾸뛰르 시장이 얼어붙기 시작하면서, 이 시장을 지켜내려 안간힘을 쓰던 디자이너들은 황금으로 된 옷을 만듦으로써 자신의 건재를 과시하고 싶어했다.
가장 대표적인 디자이너가 바로 입생로랑이다. 그는 은퇴사에서도 밝혔듯이,그의 철학과는 대조적으로 흘러가는 기성품 시장을 슬픈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했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을 마구 베끼는 기성 시장을 견디지 못하여, 그 누구도 베낄 수 없는 순금의 옷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의복 산업의 발달은, 순금을 직조하는 어려움을, 보다 저렴한 소재를 사용하면서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모드로 바꾸어 놓았다. 따라서 순금은 아니지만, 번쩍이는 금색옷은 이제 누구라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게 되었고, 바로 이 때문에 한 때 금색의 옷은 가장 싸구려의 전형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이번 시즌의 금색의 입생로랑과 같은 오뜨꾸뛰르 들의 고집을 보여준다. 고가의 제품들이며, 놀라운 스킬로 짜여졌다. 그리고 이들로 표현되는 디자인 역시 고도의 봉재술을 요하는 복잡성을 보여준다.
이같은 황금빛의 아이템은 너도 나도 명품명품 하는 시대에서, 무언가 진품을 입고싶은 사람들의 정서를 건드리는 한조각 욕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말 럭셔리하고 싶다면, 올해에는 금색의 옷을 택하는 것도 좋다. 금색의 옷을 마음껏 입어볼 시기는 복식사적으로 볼 때 결코 자주 도래하거나 흔한 시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이번 시즌 특유의, 보다 다크한 금색으로 표현된 블라우스나 자켓, 스커트들은, 완전한 셋업보다는 단품으로서 코디될 때 진가를 발하고 있음을 기억하도록 하자.
김소희 말콤브릿지 실장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