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처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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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18 오후 2:24:48

지난 봄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의 특강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분에 대해 아는 사실이라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을 몇 장 들추어본 기억밖에 없는 저는 큰 기대 없이 강의장에 앉았습니다. 하지만 20년이 넘는 세월을 감옥에서 보낸, 녹록지 않은 인생역정이 녹아든 이야기들은 많은 시사점을 남겨주었습니다. 그중 재미있는 일화 하나를 소개하자면, 소주회사의 신제품 네이밍과 B.I를 의뢰받고 고민하던 지인(知人)의 부탁을 받고는 본인께서 쓰신 시의 제목을 친필과 함께 흔쾌히 제공한 이야기입니다. 이 디자인 모티프는 그대로 네이밍과 로고 타입으로 채택되어 브랜드로 탄생하게 되었으니 「처음처럼」이라는 소주가 바로 그 브랜드입니다. 업계에서는 흔히 보기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정작 대중 제품의 대표격인 소주에 자신의 글귀와 글씨가 그대로 새겨지게 되자, 개인의 이익을 위해 돈을 받고 팔 수 없다며 신영복 교수는 사례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처음처럼」을 내어준 순수한 마음에 대한 보답으로 소주회사 대표와 디자인회사 대표는 지원금을 출현하고, 이를 모아 1억원의 목돈을 조성하였답니다. 그 돈은 ‘처음처럼 장학금’이라는 명칭으로 그분이 재직하는 성공회대에 기부되어 학생들의 면학을 위해 쓰이게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저는 술은 못하지만 ‘이렇게 따스한 사연을 가진 브랜드는 꼭 성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소주 시장에서 현격한 열세를 보이는 회사가 새로운 브랜딩 작업을 통해 시장의 진입을 노리는 것이었기에 더욱 약자를 응원하는 마음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처음처럼」은 20도 소주 시대를 연 첫 브랜드라는 의미와 술 마신 다음날 원래 상태로 회복되는 시간이 빠르다는 의미를 가지는데, 언뜻 보기에도 네이밍과 브랜드의 속성, 의미가 일부러 지어낸 것처럼 기막히게 맞아떨어집니다. 하지만 그것이 제품에 사용되도록 허락한 신영복 교수의 배려와 평소에 좌우명으로 여기던 그 글귀를 브랜드의 가능성과 연결시켜 내다본 디자인회사 대표의 안목, 또 이전에 없던 모험적인 시도를 과감히 포용한 광고주의 결정, 이 세 사람 모두의 열린 마음이 없었다면 그런 멋진 브랜딩 작업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7월 어느 날 우연히 신문기사를 읽다가 다음과 같은 기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두산의 소주 ‘처음처럼’이 누적 판매량 1억 병을 돌파하며 전국 시장점유율 10%를 눈앞에 두고 있다. 두산은 지난 2월 출시된 ‘처음처럼’이 출시 5개월 11일 만인 18일 누적 판매량 1억 병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이는 진로의 ‘참이슬’ 출시 당시 1억 병 돌파 기록보다 1개월 가량 빠른 기록이다. ‘처음처럼’은 지난 6월 전국 소주 시장의 9.4% 점유율을 기록했다.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각각 17.8%, 11.7%에 이른다. 한 달 전인 5월과 비교해 보면 전국 점유율은 0.7%포인트,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2.6%포인트, 0.6%포인트가 각각 증가했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머잖아 서울에서 팔리는 소주 5병 중 1병은 ‘처음처럼’이 될 것 같다. 특정 제품을 홍보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습니다. 다만 차별화된 시도를 통해 런칭한 브랜드가 어떠한 히스토리를 만들며 성장해 가는지, 브랜딩의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참으로 흥미롭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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