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브랜드 관리가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듣게 됩니다. 하지만 ‘브랜드 관리의 핵심’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거나 나름대로 생각하는 기준이 다른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브랜드를 관리한다는 것은 ‘소비자의 지각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각은 관념이나 인식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객관적인 사실보다는 소비자가 그 사실을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과정과 결과가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맥주 회사에서 같은 제품을 가지고 블라인드 테스트(blind test:상표를 숨기고 맥주를 마시게 한 다음 그 상표를 식별시키는 방법)를 한 후 A는 유명브랜드 제품이라고 알려주고, B는 선호도가 떨어지는 브랜드라고 알려주면 후자의 제품이 맛이 없다고 답하는 소비자가 의외로 많이 나타난 재미있는 결과도 있습니다.
소비자가 구매를 결정하는 과정은 크게 네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첫 단계로 해결할 문제를 인식합니다.(아 왜 이렇게 목이 마르지?) 다음으로 필요한 정보를 수집합니다.(뭘 마실까? 그래 시원한 맥주가 좋겠군. 근데 어떤 맥주가 있었더라?) 그리곤 대안을 평가하고 결정하지요(음 .A, B, C 맥주가 있지, 아무래도 물이 좋다는 B맥주로 마시자!) 마지막으로 제품을 구매하고 평가합니다.(역시 B맥주는 맛이 좋아 혹은 어 생각보다 맛이 별로네 다음엔 다른 맥주를 마셔 봐야겠다) 이와 같은 소비자의 구매의사 결정 과정은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단 몇 초 만에 일어납니다. 학문적으로는 과정이 빨리 이루어지는 것을 ‘저관여 제품’이라 하고, 오래 걸리는 것은 ‘고관여 제품’이라 정의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광고’를 ‘앞으로 제품을 구매할 사람을 위해 기억 속에 브랜드를 입력시키는 활동’이라고 볼 때 소비자 구매결정 단계 중 두 번째 단계(필요한 정보를 수집)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비자는 일단 자기 머릿속에 있는 정보를 검색해 보고 정보가 부족할 경우 추가로 정보를 수집합니다. 따라서 기억이 저장되어 있는 ‘기억창고’가 중요합니다. 예전 제가 배웠던 소비자심리학 과목의 교수님께서는 재미있는 질문을 통해 이 ‘기억창고’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자 우리가 수업을 듣고 있는 이 방엔 수 십 명의 학생이 있지만, 강의실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통로는 앞문 하나 밖에 없고, 강의실 내에 갑자기 불이 났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누가 살아날 확률이 가장 높을까요?” 학생들은 한결같이 ‘문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은 가냘픈 여학생’이 살아날 확률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저기 맨 뒤 문에서 제일 먼 곳에 앉은 튼튼하게 생긴 체육과 학생은 어떨까?”라고 다시 질문하셨고, 학생들은 일제히 웃으며 아마 저 학생도 운동으로 단련되었고 체력과 스피드가 좋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밀치고라도 살아남을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우스개 소리 같지만 이 상황을 기억창고로 바꿔보면 강의실은 소비자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기억창고 입니다. 문에 가장 가까이 있던 여학생은 기억창고에 ‘가장 최근에 들어온 기억’으로 가장 먼저 튀어 나올 수 있습니다. 맨 뒷자리에 있던 체육과 남학생은 ‘예전에 들어왔지만 워낙 강한 기억’입니다. 따라서 먼저 튀어 나올 확률이 높습니다.
이와 같이 기업은 소비자의 기억창고 속에 브랜드를 항상 최근의 기억으로 인식시키든지, 아주 강력한 기억으로 인식시키지 않으면 수많은 브랜드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듭니다. 이미 인지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브랜드들도 광고와 홍보를 지속적으로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지속적 브랜드 노출을 통해 ‘아젠다 세팅’(Agenda-Setting:이슈거리 안에 포함되는 현상)이 되지 않으면, 기억창고에서 정보 검색시 ‘구매고려 상표군’(Consideration Set : 같은 카테고리 안에서 떠올릴 수 있는 대안의 갯수)에 포함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월드컵에서 일단 본선을 통과해야 우승을 노려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또한 이렇게 본선에 자주 들다 보면 어느새 강력한 우승 후보로 각인이 되고, 예선 통과도 못하게 되면 어느새 잊혀져 버리게 됩니다. 한때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보리음료나 쌀음료가 점차 시들해지거나 사라진 이유도 아젠다에서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제품을 많이 팔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소비자의 지각을 관리할 것인가?‘하는 것은 장기적인 브랜딩을 위해 우리가 늘 생각하고 풀어가야 할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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