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 패션을 미리 선보인 가을·겨울 컬렉션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너무나 뚜렷이 남아 있는 흔적이 있으니 바로 오드리 헵번의 흔적이다. 1960년대 패션 아이콘으로 여자는 물론 남자들로부터도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헵번의 흔적은 그의 사후에도 여전히 ‘레트로’라는 복원술을 통해 우리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놓아주지 않고 붙잡고 있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 것이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패션 아이콘 파워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오드리 헵번을 영화를 통해 복원해 본다.

세기의 패션 아이콘, 오드리 헵번.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을 차례로 보고 있노라면 개인적인 취향이나 뻔한 스토리에도 ‘생동감 넘치는’ 그녀의 매력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빠져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오드리 헵번만의 ‘생동감’은 영화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삶 전반에 걸쳐서 묻어난다.
오드리 헵번은 부유한 영국인 아버지와 네덜란드 남작 부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부모는 이혼했고, 오드리는 어머니와 함께 네덜란드로 이주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치 군대가 네덜란드로 침공한다. 나치 점령하에서 전쟁의 공포와 굶주림 등 온갖 고초를 겪은 오드리 헵번은 이러한 경험들을 살려, 은퇴 후 유니세프 특별대사로 활동하며 아프리카 기아퇴치 운동에 올인하게 된다.
한편 그녀가 16세 되던 해 나치에 의한 점령은 끝이 났고,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고향인 런던으로 돌아와 발레를 배웠다. 그러던 중 그녀는 소설가 콜레트 여사의 눈에 들게 된다. 자신의 소설인 <지지(Gigi)>의 브로드웨이 각색 작품의 주연으로 오드리 헵번을 캐스팅한 것이다. 오드리 헵번은 연기 경험이 부족했음에도 그녀만의 매력으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며 성공적인 배우 인생의 서막을 열었다.
마침내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그레고리 펙과 함께 주연을 맡게 된 오드리 헵번은 데뷔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그해 가장 주목받는 신인으로 부상했는데, 그녀의 인기 비결은 당시 할리우드의 섹스 심벌들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요정 같은 외모와 기품 있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1953년부터 1967년까지 오드리 헵번은 수십 편의 영화에 출연해 주연을 맡았고 <사브리나> <수녀이야기> <티파니에서 아침을> <어두워질 때까지> 등에서 네 번이나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두 번의 이혼 후, 그녀는 기아로 죽어가는 어린이를 위해 유니세프 특별대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영화 <수녀이야기>에서의 세계를 돌아다니는 수녀가 아니라, 자신의 미소로 고통을 덜어주는 프린세스로서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된 것이다.
1991년 소말리아에서 돌아온 오드리 헵번은 직장암 판정을 받았고, 1993년 1월 20일 스위스의 톨셰나츠에서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남자 셔츠가 너무 좋아요”
언제부턴가 공주병이라는 말이 유행하게 되면서 ‘공주’에 대한 전형적인 이미지는 사라지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이 공주병 신드롬을 일으킨 장본인은 <로마의 휴일>에 등장한 앤 공주 (오드리 헵번 분)였다.
<로마의 휴일> 첫 부분에서 풍성한 드레스 밑으로 발을 뻗어 신발을 찾는 아슬아슬한 순간을 만들기도 하고, 머리를 확 잘라버리고 나오며 순진무구한 미소를 짓는 장면들은 우리가 갖고 있던 신비스럽고, 기품 있는 ‘공주’에 대한 고정관념을 시원하게 날려버린다.
“그냥 빨아서 다리면 되요.” 할리우드에 진출한 지 얼마 안 돼서 가진 한 인터뷰에서 오드리 헵번은 셔츠 예찬론을 폈다. 오드리의 일상복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다. 그녀는 남자 셔츠를 입고 있을 때 가장 편안함을 느낀다. 이러한 오드리 헵번의 캐주얼 본능은 영화 속에서도 그대로 녹여내어 평민(?) 앤 공주의 매력을 보여준다.
앤 공주가 시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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