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백화점 남성복 매장을 둘러보다 마치 여성의 블라우스 소재로 만든 듯한 하늘거리는 셔츠들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아들 옷을 사러 온 듯한 나이 지긋한 한 여성 고객은 ‘이거 물실크네, 물실크’ 하며 연신 반가운 기색을 보였다.
사실 그 아주머니가 기억하고 있는 물실크는 ‘나일론’이었을 것이다. 1960년대에 국내에서 큰 인기를 모았던 이 물실크는 심한 정전기가 생김에도 당시 최신의 소재로 인정받았다. 오죽하면 군대에서 낙하산을 빼내다가 원단으로 사용하는 일도 비일비재했겠는가. 이 낙하산들이 잘리고 꿰매어져 여성의 블라우스나 스커트로 둔갑했던 것이다.
이 시대에는 물실크뿐 아니라 ‘나이롱’ 자체가 매우 폭넓게 사용되어, ‘나이롱 스타킹’, ‘나이롱 보자기’ 심지어는 ‘나이롱 한복’까지 등장했고, 놀라운 것은 가격 또한 매우 비싸게 취급됐다. 어찌 보면 당시로서는 나이롱이야말로 오늘날의 라이크라나 텐셀과 같은 ‘신소재’의 하나였는지 모르겠다.
이 물실크는 한동안 쓰이지 않다가 1980,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실용적이고 보다 우수한 폴리에스테르 소재로 재탄생했다. 사실 1990년대에도 본견보다는 폴리에스테르를 이용한 블라우스가 대부분의 기성복에서 주류를 차지했고, 여성들도 면 셔츠나 실크 블라우스보다는 폴리에스테르의 셔츠형 블라우스를 주된 이너웨어로 착용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화려한 여성의 원피스들도 폴리 나염 소재로 제작되었고, 백화점의 웬만한 브랜드에서는 이 같은 원피스 가격이 19만원 내지는 20만원대 초반이었다. 필자가 디자이너 1년차였을 때, 한 원피스 가격이 24만원으로 책정되는 바람에 부서 전체에서 대책회의가 열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은 물실크 대신 진짜 실크로 하늘하늘하고 풍성한 원피스를 제작한다. 이 원피스들의 가격은 높게는 60만원대를 호가한다. 정말이지 10년 동안, 소재 트렌드의 변화는 패션시장의 물가를 확연히 바꾸어놓은 셈이다. 어떤 사람들은 가끔 이렇게 묻는다. ‘이렇게 옷값이 점점 비싸지나요, 아니면 옷값이 내리나요’라고 말이다.
글쎄 미래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지만, 인류 역사상 기성복의 가격이 내려가기는 부동산 가격이 내려가기보다 어렵다는 것이 정설이다. 단지, 「사라(zara)」와 같은 저렴한 ‘브랜드’가 대성공을 거두어 물가의 헤게모니를 쥐는 경우라면 또 모를까.
아무튼 너도나도 실크를 입은 지가 10년이 되어간다. 그리고 서서히 트렌드는 또 한번 물실크의 시대를 예고하는 듯 점차 실용적인 유틸리티에 초점을 두는 성향을 띠고 있다. 먼저 여성복에서는 실크 대신 폴리의 조제트나 도비가 다시 늘었고, 남성들도 면의 구김을 보완하려는 소재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고 있다.
또한 스타일에도 실용주의는 점점 중요해져서, 파카나 유니섹스 캐주얼들이 점차 중요한 아이템으로 부각되고 있는 추세다. 사실 실크의 포션이 점차 낮아지면서 저렴한 합섬의 혼방이 유도되는 것은 몇 시즌 간 지속되어 온 흐름이다. 아울러 유니섹스의 유틸리티가 아니라 하더라도 드레이프성이 강조되는 유행이 오면 폴리 소재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지나친 고가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고 관리의 편리성이기도 하다.
어쩌면 새로운 물실크의 시대가 열릴지도 모른다. 물론 물실크의 시대가 열린다 해도 옷값이 내려가는 일은 없을 것이며, 새로 등장하는 소재들은 과거의 소재들보다 훨씬 업그레이드된 퀄리티를 보여줄 것이다. 블랙의 강연 폴리 소재로 수트를 빼입은 여성이나, 모던하고 구겨지지 않는 폴리 블라우스의 여성이 훨씬 세련되어 보이는 시대가 조만간 도래할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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