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하늘거리는 소재의 옷들이 많이 눈에 띈다. 브랜드에서는 시폰을 사용한 블라우스와 원피스를 대거 쏟아내 백화점과 가두매장의 쇼윈도를 장식한다. 그뿐인가. 블라우스와 원피스엔 프릴과 레이스, 리본 등이 어김없이 장식되어 있다. 어쩌다 밝은 베이지나 화이트 시폰 드레스를 보면 속옷인지 외출복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속옷 같은 겉옷’ 코드는 사실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다. 여성들은 옛날부터 끊임없이 자신의 속옷을 보여주고자 노력(?)해 왔다. 500년 전 르네상스 시대에는 겉옷인 로우브에 칼집을 내 그 틈새로 속옷을 끄집어내어 노출했으며, 18세기에는 치마를 부분적으로 걷어 올려 화려한 속치마를 노출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여성들이 예쁜 속옷을 입는 것도 모자라 그 속옷을 노출해 보여주려는 ‘관음증’ 심리에는 많은 심리학자들이 지적하듯, 섹스 어필의 숨은 속내가 다분히 들어 있다. 그러나 속옷에는 섹스 어필 이상의 정서가 담겨 있기도 하다. 즉, 화이트 레이스나 모슬린은 순결한 아름다움을 상징하기 때문에, 여성들이 이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섹시함보다는 순결함을 어필하려는 의도가 더 강한 셈이다.
멋쟁이 파리지엔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시기로 기억되는 ‘벨 에포크’ 시대는 이 같은 순결한 아름다움이 유럽을 풍미했던 시대였다. 당시 여배우로 이름을 날렸던 레잔은 온통 레이스로만 장식된 옷을 입고 다닌 것으로 유명했으며, 많은 일반 여성들이 ‘티 가운(Tea gown)’을 연상시키는 화이트 모슬린과 레이스에 집착했다고 한다. 특히 화이트 모슬린을 입은 여성들은 그 풍성한 주름을 버슬로 만들어 걸을 때마다 의도적으로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곤 했다. 당대 시인들이 ‘여인의 사각거리는 소리’라고까지 표현했던 이 옷차림은 이후 오랫동안 유행해 1930년대와 1970년대에 이어 최근 다시 한번 유행을 타고 있다.
1930년대에는 자매 디자이너인 ‘까요 자매’가 뉴욕에서 란제리 풍 드레스 숍을 열어 크게 성공했다. 이들의 옷은 벨 에포크 시대의 그것처럼 투명감 있고 레이스로 가득찬 것들이었다.
1970년대에도 잠깐이지만 레이스 드레스가 유행했다. 화이트 레이스 드레스를 입은 여성에 대한 환상은 아마 이 시기부터 확고히 자리잡았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백화점에 걸린 하늘하늘한 드레스의 기원도 이 같은 벨 에포크 시대에 유행했던 드레스인 에드워디안 드레스에서 대부분 기인하고 있다.
작년부터 세계적인 톱 디자이너들은 에드워디안 풍 드레스에 매료된 듯하다. 얇은 실크 시폰이나 모슬린 소재 등이 만들어내는 풍성한 주름은 여성들이 한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순결한 아름다움을 전해주기에 충분했다. 「끌로에」나 「샤넬」같은 페미니니티를 추구하는 디자이너들은 적극적으로 에드워디안을 부활시키는 데 앞장 서고 있으며 프릴과 레이스, 얇은 소재의 사각거리는 주름은 다시 한번 여성들의 춘심을 유혹하고 있다.
그럼 언제까지 이런 드레스들이 입혀질까. 아직은 아름다운 의상으로 고객들에게 어필하고 있지만, 곧 속옷 시대가 끝나고 제대로 된 겉옷 시대가 도래할 조짐을 보인다. 왜냐하면 최근 패션쇼에서 시폰과 레이스 컬러는 네이비와 블루, 블랙으로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정교한 테일러링의 겉옷이 조심스럽게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번 봄은 화사한 프릴과 레이스를 볼 수 있는 마지막 시즌이 될지도 모른다. 내년 봄부터는 보다 어둡고 깊은 컬러를 보거나, 아니면 최근 부상하는 클래식의 부활로 지적이고 식상한 차림들이 전혀 새로운 패션으로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소희 말콤브릿지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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