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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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18 오후 6:24:26

사업의 법칙 1 ●리차드 S. 테들로우 지음/안진환 옮김 저자 리차드 S. 테들로우는 1949년생으로, 20년 넘게 하버드 경영대학원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마케팅과 기업사를 강의하고 있으며, 폭넓은 저술 활동뿐 아니라 많은 기업들의 자문 역할도 하고 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비범한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은 낡은 규칙을 깨뜨리고 자신만의 규칙을 만들었으며, 미래의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미래의 주인이 되었다. 1. 무일푼에서 세계 최고의 갑부로 ‘앤드류카네’ 1835년 11월, 앤드류 카네기는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에서 포스강 건너편으로 24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던펌린의 한 직조기술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윌 카네기는 엄청난 변화의 시대에 낙오한 실패자였고, 카네기 가족은 1848년 미국으로 서글픈 이주를 하게 됐다. ‘슬랩타운(시궁창마을)’. 이름만으로도 어떤 곳일지 상상이 가는 곳에 1848년 여름, 카네기 일가는 정착하였다. 그러나 이런 불행한 환경이 젊은 앤드류 카네기에게는 개척의 땅이었다. 앤드류는 하루 열두 시간 일을 하고 나서도 친구들과 함께 피츠버그 시내로 들어가 회계사에게 복식부기를 배웠다. 그리고 오레일리 전신회사의 전보배달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카네기는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며 자신의 일을 성실히 해냈다. 그는 전보를 전하면서 돈 한 푼 안 들이고 피츠버그의 실력자가 누군지, 중요한 일들이 어디에서 일어나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는 피츠버그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바로바로 알 수 있었다. ● 기회 포착 카네기를 1850년 당시 미국의 가장 선도적인 기업인 펜실베이니아 철도회사로 스카우트한 사람은 스캇이었다. 당시 철로를 운행하기 위해서는 시시각각 생생한 정보, 즉 전보가 필요했다. 스캇도 본사에서 연락이 올 때에는 으레 허둥대며 오레일리 전신회사로 달려가곤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카네기를 눈여겨보게 되었다. 1853년 2월, 앤드류 카네기는 드디어 토마스 스캇의 부하직원이자 전신사무소 책임자로서 펜실베이니아 철도회사에 취직했다. 이제 그의 봉급은 월 35달러로 올랐다. 그러나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국에서 가장 급성장하고 있는 산업지역의 통신과 교통의 심장부에 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1858년, 불확실한 상황인데도 카네기는 우드러프 침대차 회사에 투자하여 지분의 1/8을 소유하였다. 이것이 카네기가 이룩한 부의 시작이었다. 남북전쟁 중에 우드러프 침대차 회사는 급성장하였고, 1863년 말에 카네기는 이미 엄청난 부자가 되어 있었다. 그는 더 이상 봉급이 필요 없었다. 서른 살도 채 안 된 나이에 그는 사업세계에서 혼자 힘으로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카네기는 믿기 어려울 만큼 성공적인 투자가였다. 그가 이룩한 가장 중요한 성공 중 하나는 바로 파이퍼 앤 쉬플러 사에 대한 투자였다. 카네기는 남북전쟁만 끝나면 철도교량 건설이 급격히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 회사에 1천250달러를 투자했다. 이듬해 카네기의 투자는 7천500달러가 되어 돌아왔다. ● 사업가의 기질 사업가로서의 카네기를 규정짓는 가장 큰 특징은, 그가 변화를 예견하고 인정하며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을 모두 갖추었다는 점이다. 앞으로 사업과 시장이 어떻게 변모할지 예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변모하는 현실 앞에서 기존의 낡은 관념을 버리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 역시 어렵다. 하지만 카네기는 그것을 행동에 옮겼고 이루어낸 인물이었다. 그는 그 당시 강철이 문명의 물질적 기반을 바꿔놓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물건을 가장 싸고 좋은 품질로 공급할 수만 있다면 세계 최고의 갑부는 물론 가장 위대한 사업가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 산업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투자가 필수적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카네기 철강회사가 문을 열고 25년이 지난 1900년까지 카네기가 이끄는 사업체들은 단 한 번도 적자를 기록한 적이 없었다. 1875년에 카네기의 수입은 1만8천600달러였지만 1900년에는 40만달러였다. ● 카네기에 대한 고찰 앤드류 카네기의 83년 인생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무일푼에서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되지 않았는가? 앤드류 카네기는 위대한 인물이었지만 항상 선한 사람은 아니었다. 사실 그는 위대한 인물이 되느냐 선한 인물이 되느냐는 갈등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톰 스캇이 파산하게 되었을 때 카네기에게 어음의 보증을 부탁하였는데, 카네기가 이를 과감하게 거절한 것은 그런 상황에서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그러나 진실의 순간에 카네기는 선함보다는 위대함을 선택했다. 2. 대량 시장의 창조 ‘조지 이스트먼’ 1860년, 조지 이스트먼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 그는 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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