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키스타일
●패밀러 클라크 키어우 지음/정연희·정인희 옮김
저자 패밀러 클라크 키어우는 독일에서 태어났으며, 롱아일랜드에서 성장했다. 재클린이 다녔던 바사 대학에서 영어와 역사를 공부했다. 저널리스트, TV프로듀서, 극작가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오드리 햅번의 전기 「오드리 스타일」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현재 뉴욕에 거주하고 있다.
바람둥이 아버지와 신경질적인 어머니, 그리고 그들의 이혼을 겪는 재키, 「보그」지로 유명한 콩데나스트 출판사의 편집자들과 점심을 먹고 집에 돌아온 후 진로를 고민하기 시작하는 재키,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되고 난 후 자신을 외부로부터 차단시키려 하는 재키, 누구보다 아이들을 잘 키우겠다는 결심 하나만은 변함이 없었던 모성애 가득한 어머니로서의 재키, 그리고 오나시스의 사망 후 처음으로 ‘누구의 아내’가 아니라 편집자로 거듭날 때의 재키.
이 모든 것은 한 사람의 스타일에 관련된 것이다. 『재키 스타일』은 바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여자 재키를 ‘가장’ 유명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아직까지’ 유명하게 만드는 이유를 풀어내는 책이다.
프렐류드
그녀는 미국의 퍼스트레이디이지만, 그에 앞서 활력 넘치고 강건하며 낙관적인 미국 여성이었다. 그녀의 삶을 용기 있는 행동의 연속이라는 측면에서 볼 수 있지만, 무엇보다 재키와 가장 크게 연관되는 것은 스타일이다. 재키 스타일에서 특별히 흥미로운 점이자 오늘날까지 재키 스타일이 패션에, 디자인에, 문화에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는 그녀의 스타일이 결코 고정된 것이 아니었다는 데 있다.
메종 블랑쉬
1960년 11월 9일, 메사추세츠 주 상원의원 존 F. 케네디는 11만 5천 표의 득표 차로 미국의 제35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곧 퍼스트레이디가 될 재키에게는 두 가지 고민이 생겼는데, 백악관을 활기차게 하는 것과 자신이 입을 의상을 결정하는 일이었다.
백악관을 일으켜 세우고 운영하는 것과 더불어 재키는 자신의 공식 의상에 대해서 신경을 썼다. 전 세계가 자신의 동작 하나 하나를 관찰자의 눈으로 살펴보고 있다는 사실에 재키는 퍼스트레이디의 격에 맞는 옷을 입으면 좀 더 자신감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재키는 ‘메종 블랑쉬’- 재키는 자신의 새 집 백악관을 프랑스어로 이렇게 불렀다 - 의 드레스룸에서 프랑스 패션잡지 「보그」와 「마드모아젤」을 읽는 처음이자 아마 유일한 퍼스트레이디였을 것이다.
대학 시절의 재키
미스 재클린 부비에가 입학할 즈음, 미국인들의 마음속에 바사 대학의 위상은 상당했다. 학창 시절, 재키는 겸손, 유머, 수줍음, 아름다움을 두루 갖추고 있어, 친구들 사이에서 굉장히 매력적인 친구였다.
재키는 대학 2학년이 끝날 무렵 ‘여학생들 사이의 한 여학생’으로 지내는 것이 지겨워졌다.
곧 재키는 프랑스의 소르본느 대학에서 공부하며 3학년을 보냈다. 소르본느에서 수학한 후 재키는 메리우드 집으로 돌아와 워싱턴 D.C.의 조지워싱턴 대학 4학년에 진학했다. 전공을 프랑스 문학으로 바꾸었고, 저널리즘과 문예창작을 함께 공부했다. 그녀는 언제나 독서를 좋아했으므로 작가가 되기를 꿈꾸었다. 저널리즘은 작가의 세계로 들어가기에 좋은 길인 것처럼 느껴졌다. 수줍음이 많았지만, 저널리즘에 관계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굿나잇, 미시즈 케네디 - 당신이 어디에 있거나.”
1963년 11월 22일 아침, 댈서스에서 오픈 컨버터블의 뒷좌석에 앉아 아내 재키를 옆 좌석에 태우고 카퍼레이드를 하던 중, 46세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리 하비 오스월드에게 저격당했다. 두 알의 총탄이 그의 머리와 목을 관통한 순간 그는 즉사했다. 재키는 토요일에 성잭의 시신을 이스트룸에 안치하고, 일요일에 미국 국회의사당 원형 홀에 이송하며, 월요일에 장례미사와 장례식을 거행하기로 결정했다. 이제 잭을 어디에 묻어야 할 것인가 하는 가장 절박한 문제가 남아 있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재빨리 형태를 잡기 시작했다. 넓고 푸른 전망이 배경이어야 하며, 뉴잉글랜드석으로 만든 회색 묘비는 땅속 깊숙이 박혀 있어 무덤 앞에 도착할 때까지는 보이지 않아야 했다. 꺼지지 않는 불꽃에 대한 생각도 떠올랐다. 파리의 개선문처럼. 결정했다. 알링턴이었다. 1963년 11월 24일 월요일, 존 F. 케네디는 묻혔다. 그의 아들 존은 그날 세 살이 되었다. 알링턴의 무덤가에서 재키는 ‘영원의 불’을 붙였다.
1040
1964년 9월, 재키는 뉴욕 핍스 애버뉴 1040번지의 크고 안락한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그녀가 뉴욕으로 옮겨 갔을 무렵, 재키는 이탈리아 북부의 소도시 보게라 출신의 이탈리아 디자이너 발렌티노 가라바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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