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리는 듯, 안 어울리는 듯한 갈리아노의 색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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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4 오후 3:18:11

존 갈리아노의 패션에는 그만의 고유한 이미지가 있다. 그의 디자인이 개성이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특정한 색을 잘 써서 그런 것이 아니라 색을 사용하는 방법에 일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휘발하는 색들은 모두 존 갈리아노의 주도면밀한 색 전략에서 나오는 것이다.



색상과 이미지
디자인에서 색채의 문제를 단지 선호하는 색의 문제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디자이너마다 좋아하는 색이 없진 않지만 특정한 색을 선택적으로 좋아한다는 것은 결코 디자이너에게 좋은 일이 아니다. 그것은 개성이 아니라 색에 대한 수많은 가능성을 스스로 잘라버리는 자충수가 되기 쉽다.
예를 들어 빨간색을 좋아해서 빨간색만 쓴다면 나머지 수 많은 색들을 모두 포기하는 꼴밖에는 안 된다. 제한된 빨간색만으로 무엇을 표현할 것인가? 앞에서 배운 인접색이나 보색, 채도와 같은 논리들이 적용될 여지가 모두 없어진다.
그렇다면 색에 있어서 디자이너의 개성은 어디에서 확보될 수 있을까? 빨간색, 노란색과 같은 색상이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면 디자이너의 고유한 색채는 과연 어디에서 보장받을 수 있을까?
존 갈리아노의 경우를 살펴보면 풍부한 색을 다루면서도 디자이너의 고유한 개성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짚어볼 수 있다.
존 갈리아노는 특정한 색을 선호하는 디자이너가 아니다. 하지만 그의 패션에는 시즌을 초월해서 감지되는 고유한 색의 느낌이 있다. 보색대비가 심한 편이고 높은 명도의 색을 많이 쓰기 때문에 그의 색채는 자칫 파스텔 경향의 얌전한 색으로 오인(?)될 공산이 크다. 하지만 그의 색은 파스텔처럼 얌전하지 않다. 무언가 톡 쏘면서 상쾌한 느낌을 가져다주는, 박하향 같은 이미지가 강하다. 그는 특정한 색에 국한되기보다는 자기가 원하는 색의 인상을 중심에 두고 여러 가지 색을 여러 가지 상황에 맞추어서 조율한다. 인접색이 되었든, 보색이 되었든, 저채도 색이 되었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색을 조율하면서 자신의 강렬한 개성을 일관되게 구축하고 있다.
이것은 특정한 색을 제한적으로 쓰면서 특정한 색의 이미지에 자신의 모든 색채적 감수성을 도박에 내거는 디자이너의 경우와는 판이하게 다른 점이다.


일관된 색의 인상과 색 전략
<그림 1>은 일견 같은 색으로 이루어진 디자인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이들 색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먼저 코트처럼 보이는 옷을 보면 중간 정도의 채도를 가진 색을 볼 수 있다. 색상은 중간 채도의 색답게 묘하다. 고동색에 가까운 듯도 하면서 오렌지색의 느낌도 적지 않다. 그 중간쯤 되는 색상이라고 보면 되겠다. 반면에 안에 입은 원피스는 오렌지 느낌이 있으면서도 핑크의 느낌이 많이 나는 밝은 저채도 색이다. 노란색을 기준으로 보면 오렌지색과 핑크색은 각각의 오른쪽, 왼쪽에 있는 색들이다. 하지만 이 색들은 묘하게도 서로의 색들을 조금씩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통하면서도 서로 대비가 되고 있다.
단지 두 개의 색밖에는 안 썼지만 미묘한 느낌을 주는 것은 이처럼 색의 대비와 조화가 이중, 삼중으로 겹치면서 우리의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두 개의 색은 강하게 휘발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림 2>에는 색이 조금 많이 들어가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단일한 가운데에 변화를 꾀하고 있는, 전형적인 인접색 대비를 구사하고 있다. 즉, 노란색을 기준으로 했을 때 양쪽으로 포진해 있는 녹색과 고동색 계통의 색들을 써줌으로써 색의 통일성과 변화를 같이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인접색 대비에서 공부한 바 있다. 하지만 그러한 공식적 접근하에서도 존 갈리아노는 특유의 휘발성 색채 감각을 발휘하고 있다.
<그림 2>의 색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그다지 색다른 색은 없다. 하지만 전체를 보면 무언가 휘발하는 듯한 느낌이 감지된다. 정말 희한한 일이다. 원인은 겨자색에 가까운 상의의 색과 모피 코트의 묘한 대비에 있다. 겨자색은 노란색에서 녹색 쪽으로 기운 색인 반면에, 고동색은 주황색에 많이 기운 색이다. 전형적인 인접색 대비라고 할 수 있다. 존 갈리아노의 솜씨가 우러나는 대목은 명도와 채도의 조율에 있다. 겨자색의 명도는 다소 높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채도는 순 겨자색보다는 많이 낮다. 모피 코트는 두 개의 색이 혼합되어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털 때문에 어떤 곳은 밝고 어떤 곳은 어둡다. 하지만 주조색은 밝은 고동색이다.

최경원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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