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뉴욕과 밀란, 파리에서 열린 2006 봄·여름 컬렉션이 막을 내렸다. 보통 봄·여름 컬렉션은 무사히 넘어가지만,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동물애호가 협회의 ‘빤짝’ 데모들이다. 이들은 화려한 모피가 등장하는 패션 쇼 중간에 무대로 튀어나와 슬로건을 외치거나, 준비해 온 피켓을 들며 모피 사용을 야만적이라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가을·겨울 쇼에는 항상 이들을 제지할 5분 대기조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흔한 풍경이 되었다.
한편, 패션계 인사들 중에서도 모피를 반대하는 스타들이 종종 발견된다. 슈퍼모델 신디 크로포드는 1994년 스스로 모피 반대 캠페인에 참가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최고급 모피 브랜드와 광고를 맺어 원성을 듣은 바 있다. 이 같은 이유로, 패션계의 신성이자 폴 맥카트니의 딸인 스텔라 맥카트니 역시 최근 빈축을 사고 있다.
스텔라 맥카트니는 자신은 ‘진짜 모피를 쓰지 않는다’고 늘 공언해왔다. 그런데 지난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진짜 모피가 발견되었고, 그녀는 다음과 같이 변명했다. “나는 자연적으로 떨어진 동물의 털을 주워 옷을 만들었습니다” 이 말은 세계 유수 언론에 퍼져 나갔고, 자연적으로 떨어진 동물의 털을 주웠다니 말도 안되다는 언론의 반응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아마 패션 담당 기자였다면 그 같은 조롱 섞인 기사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모피의 채취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쉽게 생각해 동물을 죽여서만 털을 얻는것은 아니다. 자주 사용되는 방법으로는 털갈이 때 전모 작업으로 털 깍기 방식을 통해 채취한다. 그러나 낙타 같은 경우, 늦은 봄이나 이른 여름의 털갈이때 저절로 떨어지는 털을 수거해 사용하고, 캐시미어도 자연스러운 빗질을 통해 탈락된 털들을 모아 사용한다. 이 두 경우만 보아도 디자이너 스텔라 맥카트니의 ‘자연적으로 떨어진 털을 모았다’는 말은 맞는 셈이다.
낙타 소재는 낯설지 모르지만 사실 양모 만큼이나 우리에게 친숙한 소재들이다. 겨울 코트지로 크게 각광받는 알파카나 라마의 경우 모두 낙타 과에 속하는 동물들로, 이들은 채취량이 매우 적아 모두 고가의 소재로 취급되고 있다.
한편 모두가 염려하는 잔인하게 채취되는 모피나 가죽 류도 있다. 베이비 램(Baby Lamb)의 경우, 아주 어린 동물의 부드러움을 얻기 위해 뱃속에서 도살되기도 하며 패션에서 고가의 모피로 취급되는 동시에 레스토랑에서는 최고급 스테이크로 팔려 나간다.
또한 동물의 성질상 도살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비큐나(Vicuna)라는 동물은 남미 고원에서 야생하는 동물로, 상당히 고급 모피를 채취한다. 가늘고 풍부한 광택과 짙은 컬러는 매우 부드럽고 섬세한데, 문제는 비큐나 성격이 난폭해 도저히 도살하지 않고는 모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과거에는 비큐나를 도살하여 그 모피를 얻어왔지만 인간의 지나친 이기심 때문이었는지 비큐나는 멸종위기에 처했고, 현재 보호 동물로 지정되어 모피 채취를 금지하고 있다.
이 같은 모피들은 흔히 ‘밍크 코트’처럼 그 자체로 입혀지는 경우도 있으나 모 섬유와 혼방하는 경우가 늘면서 작년에는 남성용 겨울 코트지의 경우, 밍크를 혼방한 방모지가 크게 인기를 끌었다.
한편 2∼3년 전 여성복에서 크게 유행했던 ‘파시미나’는 ‘모헤어’와 함께, 산양의 털에서 얻어진 섬유들이다. 하나를 만드는데 산양 3∼4마리가 소요되니 그야말로 진귀한 소재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진귀한 소재들도 이젠 주위에서 친숙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10년 전엔 모와 나일론 혼방의 방모지가 일반적인 코트의 주류였다면 이제는 100% 모는 물론, 모피 코트나, 다양한 모피를 혼방한 코트지들이 보편화되었다.
내년 2월부터 열리는 2006 가을·겨울 컬렉션에 얼마나 많은 디자이너들이 모피를 사용할지, 또한 궁색한 변명을 했던 스텔라 맥카트니는 여전히 모피를 들고 나올지 궁금해진다.
모든 디자이너와 여성에게 동물애호가들의 그 같은 열성에도 불구하고, 이 매혹적인 소재를 쓰지 말라고 하는 것은 지나치게 잔인한 일이 될 것이며, 결국 그들은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할 것이다.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