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막7장 그리고 그 후
●홍정욱 지음
저자 홍정욱은 1970년 서울 생. 하버드 대학에 입학하여 동북아지역학을 전공했다. 졸업 당시 최우수 사회과학 논문상과 토머스 홉스 상을 수상하였다.
1995년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 법과대학원에서 법무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다국적 투자금융기업인 리만브라더스에서 인수합병 전문가로 근무하다가 귀국, 2002년 12월 (주)헤럴드미디어를 인수했다.
내 운명의 주인으로
나는 꿈 하나에 매달려 살아왔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서점에 들러 책을 훑어보고 있는데 시선을 잡아끄는 제목이 있었다. 「무서운 아이들」. 그것은 젊은이들의 유학 체험담이었다. 그리고 그 첫 장은 김병국 씨의 하버드 유학 수기였다.
그렇게 하버드는 내 도전의 대상이 되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이 학생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초우트 로즈마리 홀 입학처장은 정중한 태도로 거절의 의사를 분명히 했다. 어머니가 한 시간이 넘도록 설득한 결과, 입학처장은 “제가 전에 근무했던 학교의 서머스쿨에서 영어과목 모두를 A학점 받으면 다시 이야기하는 걸로 합시다”라며 마치 대단한 인심이라도 쓰는 듯 말했다.
초우트 입학처장이 추천한 학교는 로드아일랜드의 구석의 남학교 포츠머스 애비 스쿨이었다.
8년 동안의 미국 체류 기간 중 가장 고된 시간이 시작되었다.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없이 지내는 날이 계속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당연히 공부밖에 없었다. 아침 7시에 눈을 뜨면 수업이 시작되는 9시까지 예습을 했고 9시가 지나서 기숙사 방으로 돌아오면 매일 밤 1~2시까지 복습을 했다.
책을 읽다 보면 한 페이지에서 모르는 단어가 무려 100여 개나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작문 리포트를 돌려받으면서 선생님의 코멘트 하나하나를 모두 암기했다.
애비 스쿨에서 코스를 마친 나는 초우트 학교에 성적표를 제출하였다. 합격이었다. 실력 면에서는 뒤떨어지지만 ‘이렇게 빨리 영어 실력이 향상된 학생을 본 적이 없다’는 지도교사의 평가에 담겨 있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초우트, 그리고 어머니
초우트는 미국에서 상위 10개 안에 드는 사립 고등학교였으며 학생 대부분은 백인 상류층 자녀들이었다.
나는 기숙사 사감의 순시가 시작되는 11시까지 가만히 침대에 누워 있다가 순시가 끝나면 일어나 유일하게 불이 켜져 있는 화장실로 들어가 변기에 쪼그리고 앉아서 밤 1시까지 공부를 계속했다. 때로는 새벽 3~4시가 될 때까지 화장실을 지키다가 4시에 청소부가 들어오면 샤워실로 자리를 옮겼다. 샤워를 하면서 책을 들고 있을 수는 없었으므로, 공부한 것을 머릿속에 하나씩 떠올리며 정리하는 작업을 했다.
중간고사 결과는 C가 나왔다.학기말 시험이 되었다. 나는 문제를 한 번 보고는 거기에 관련된 내가 아는 모든 구절과 정보를 일사천리로 답안지에 적어 내려갔다. 결국 영어 교사였던 포스터 선생은 내게 B학점을 주었다.
그런 내게 전혀 예상치 못했던 기회가 주어졌다. 1차 투표에서 2학년 회장 후보 10명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되었던 것이다. 사실 나는 들러리에 불과했다. 뉴욕 갑부의 아들인 앤디, 테니스와 축구 대표로 발탁된 수잔, 1학년 때 회장이었던 존, 동급생들의 우상인 알렉스, 이 4명의 스타들 사이에 내가 낄 틈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타 후보들이 득표 활동에 여념이 없을 때 나는 방에 틀어박혀 연설문 작성에 온 힘을 쏟았다. 강렬한 연설 구절을 찾기 위해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연설집을 뒤졌고, 케네디 연설을 녹음한 테이프도 여러 번 반복해서 들었다.
그리고 연설 날이었던 금요일. 뉴욕으로 떠날 채비를 하는데 멀리 같은 기숙사에 묵고 있는 제이가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네가 됐어! 회장이야!”
3학년 3학기를 마친 나는 하버드 대학의 조기입학제에 지원할 결심을 굳혔다. 조기 입학은 한 학기 일찍 입학 여부가 결정된다는 이점이 있으나 탈락하면 일반 전형에는 응시할 수 없는 위험부담이 큰 일종의 도박과도 같았다.
나는 유일하게 하버드에만 원서를 냈다. 전형은 학교 성적 외에도 SAT와 TOEFL 점수, 과외 활동 기록, 직업 경험, 교사 추천서, 그리고 7~8개의 에세이가 포함된 원서 등이 필요했다.
부모님이 나에 관한 소개서를 책자로 만들어보라는 아이디어를 제시해 주셨다. 물론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어린 시절부터 나의 일기장, 성적표, 상장, 사진, 그림 등을 부모님이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아놓으셨기 때문이었다. 나는 모든 자료를 짜임새 있게 편집하고 그것을 책자로 만들어 ‘The First Act’라는 제목을 붙였다.
드디어 발표 날. 다이얼을 돌려서 내 이름과 생년월일을 말했다. 수화기 저편에서는 컴퓨터 두드리는 소기가 났고, “Ryan?” 전화 저쪽의 음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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