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들의 능력은 대개 조형의 문제로 수렴된다. 어떠한 이름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페션 디자인은 하나의 조형으로 귀결되며, 따라서 디자이너들이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능력은 조형능력 즉, 색과 형태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쉬크하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하늘하늘한 시폰과 벨벳, 슬림한 라인이 몸매곡선을 강조한다.’ ‘고급스러운 디테일이 엘레강스한 페미닌 룩...’ ‘ 쉬크한 멋의 컬러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절제된 컬러와 럭셔리한 패브릭으로 스포티한 느낌의 케쥬얼 룩이 선보였다.’ ‘컬러는 시원한 느낌의 블루, 레드, 화이트, 블랙이 사용되었고....’
패션잡지를 들추다 보면 이런 투의 말들은 쉽게 만날 수가 있다. 천자문을 “천지는 현황이고 우주는 홍황이라고 번역한 말처럼 외국말을 중심으로 구색 맞추어져 있는 모국어의 조합들은 한글로 쓰여있기는 하지만 그 뜻을 알아보기가 심히 어렵다. 엘레강스 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슬림한 라인은 어떤 선을 두고 하는 말인가? 럭셔리하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 패션의 전문용어의 냄새를 풍기는, 그래서 패션 디자이너들이나 패션 관계자들이나 알 것 같은 단어들은 정확한 뜻을 사람들에게 내어주지 않는다.
하지만 우아해 보인다는 설명적인 말보다는 엘레강스해 보인다는 애매한 말로 수식된 옷은 왠지 더 있어 보인다. 하긴 이 세상사람 같지 않은 이국적인 모델과 칙칙한 현실의 색과 대비되는 현란한 색채들, 그리고 온갖 외국어로 만들어진 광고들로 구성된 책이 지극히 일상적인 우리의 모국어와 조화를 이루기는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친절한 모국어의 해설은 이해하기보다는 꿈을 꾸기 위해 책을 펼쳐드는 수많은 독자들을 깨게 만드는 발칙한 일일 수도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로 두텁게 치장된 패션 디자인들은 이해되지 않는 만큼 신비로움과 있어 보임으로 사로잡을 수 있게 된다. 인류가 달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로 달에 관한 모든 신화가 동화가 되었듯이, 적나라하게 이해된 사물은 신화의 작위를 가질 수가 없다. 옷을 설명하는 문구들이 옷을 설명하려고 하기보다는 장식하려는 것은 그런 이유일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로 진면목을 가리는 것은 디자인의 계급을 높이려는 고도의 전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식의 전략도 내용이 뒤따라 줄 때 효과가 오래도록 발휘할 수가 있다. 얼마든지 쉬운 일상용어로 설명할 수 있는 자리에 외국어를 어렵게 차출하는 것은 대단히 촌스럽다. 설사 전략의 결과라고 하더라도 고도의 전략이 되기에는 수가 낮다. 개념전달이 어렵거나 우리말로 고치기 어려운 경우에 뜻을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서 외래어를 그대로 쓰는 것은 바람직하다.
“옷 구상하기” 보다는 “패션 디자인(Fashion Design)”이, “기성복 전시” 보다는 “쁘레따 뽀르떼(Preta-Porte)”가 원래의 의미와 뉘앙스에 더 가깝기 때문에 원어를 쓰는 것이 낫다. 하지만 ‘슬림한 라인’이라든지 ‘쉬크한 멋’이나 ‘럭셔리’와 같은 표현은 좀 문제가 있다.
이들은 우선 외국어로 되어있기 때문에 전문 용어인 듯이 보이지만 전문용어가 아니다. 전문용어란 그 말이 지시하는 약속된 구체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들 단어들은 구체적인 내용을 가지지 않는다. 슬림하다는 말을 듣고 우리는 구체적인 어떤 것을 떠올릴 수는 없다. 다른 말들도 마찬가지이다. 이것들은 어떤 형상을 보고 난 후의 시각적인 인상의 기술에 불과하다. 인상이란 느낌의 서술이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다를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소통 용으로는, 특히 패션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전문가들의 전문용어로는 자격을 가질 수가 없다. 이렇게 전문용어도 아닌 말을 전문용어인 듯이 쓴다는 것은 우선 그만큼 전문성의 깊이를 의심받을 수가 있다.
디자인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으로 보더라도, 이러한 표현은 21세기를 관통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가적 수준을 생각할 때 좀 오버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냥 한국말로 해도 품위를 잃지 않을 말들을 콧소리가 가미된 외국말-그것도 중학교 수준의 단어를 거의 넘지 않는 명사나 형용사에 국한된-에 한국말을 징검다리로 해서 억지스럽게 표현하는 몇몇 패션 디자이너들의 코메디를 연상시키기에 모자람이 없다. 설명의 품위를 높이고 싶다면, 철학에서 불러오든지 미학에서 불러오든지 설명을 위한 관점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꿈으로 시작하는 패션디자인
패션 디자인은 꿈으로 시작해서 꿈으로 마무리 된다. 디자이너의 손을 갓 벗어나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패션 쇼에서 그 꿈은 최초로 시작된다. 팽팽한 기대감으로 터질듯한 어둠이 밝아지면 패션은 서서히 현실을 꿈으로 물들인다. 이 세상에 있을
최경원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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