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과 형태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능력은 오페라 가수의 가창력이나 축구선수의 드리볼 능력처럼 디자이너가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자질에 속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유행이나 옷을 만드는 기술적인 문제 등에 가려 그 중요성이 두드러지지 않고 있다. 이것은 패션 디자인계의 가치관 문제라기보다는 교육체제의 특수성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비록 인테리어는 동서축에 따라 가로로 거칠게 4개의 입방체로 되어 있지만, 바깥의 벽과 지붕은 비스듬히 경사를 이루면서 결합되어 날카롭게 대비되는 조합형이 된다. 몇 가지 외부의 모습은 기능성이 고려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능이 자원 낭비를 최소화한다 하더라도 르 꼬르뷔제가 더욱 따지는 것은 형상의 시각적인 강도, 형상이 들떠 있지 않은지, 한쪽에서는 날타롭게 위쪽으로 흐르고 다른 한쪽은 둥글게 굴려지고 땅 쪽으로 흐르는 흐름 등이다. ”
Architecture, Trachtenberg Hyman
이미지와 분석
위의 글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 르 꼬르 뷔제의 대표적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롱샹교회의 디자인을 평하는 글이다. 언뜻 보더라도 패션을 설명하는 언어와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부분적인 형태와 전체 구조가 세밀하게 분석되어 있고 디자이너의 마음 속까지 따져 들어가고 있다. 르 꼬르뷔제는 패션계로 치자면 조지오 아르마니나 샤넬에 비견할 수 있는 건축의 거장이다. 건축계에서 이사람의 명성이나 업적은 여타 패션 디자이너에 못지않지만 그의 디자인은 모호한 미사여구에 의해 신격화되지 않고, 이렇게 세밀한 평가를 통해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말하자면 형태의 인상에 대한 서술로서 거룩한 신비감을 얻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분석을 통해 그의 건축에 담긴 내적 가치가 드러나고 그 가치의 정도에 따라 합법적으로 거장의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우측의 아르마니의 패션 디자인은 르 꼬르뷔제의 건축과 상당히 유사한 조형의 원리로 디자인된 것이다. 비슷한 인상의 디자인이지만 패션계의 담론으로는 어떻게 설명될까?
정밀한 안목과 기본기
아무리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디자인이라고 할지라도 가급적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분석되어서 본질적 가치가 드러나는 것이 좋다. 가치가 인정받게 되면 좋은 일이고 그렇지 않다면 반성을 통해 다음 디자인에 만회하면 된다. 이렇게 디자인의 가치가 정밀하게 드러나려면 세밀한 분석의 틀이 필요하다.
이러한 틀은 디자인을 만드는 사람들과 저널리즘이 다를 수가 없다. 비평의 수준과 창조의 수준은 항상 같이 움직이고 특히 사용하는 언어나 판단기준은 대개 공유하게 된다. 패션 디자인에 대한 저널리즘의 언급은 보통 구체적인 분석으로 나아가지 않고 이미지의 서술에 멈춘다. 비평이나 저널리즘의 영역에서만 그렇다면 문제가 심각할 것이 없다. 하지만 옷을 직접 만들어야 하는 디자이너들도 그렇다면 문제는 상당히 심각해진다.
디자이너들은 기본적으로 수많은 형태를 구현할 수 있어야 하고 대단히 많은 색을 미세하게 조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설명하고 분석하는 수준이엘레강스하다든지 심플한 라인과 같은 이미지에 대한 인상으로 두루뭉실 넘어간다는 것은 그만큼 디자이너의 형태감이나 색감이 정밀하지 못하다는 것을 증명하게 된다. ‘골드칼라’나, ‘시원한 느낌의 블루’와 같은 색의 표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적어도 디자인에 쓰이는 색을 원어를 쓰려면 마젠타(magenta)라든가, 올리브그린(olive green), 라이트 셀룰리안블루(light cerulean)와 같이 좀더 구체적인 색을 지칭하는 용어들을 쓰는 것이 낫다.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밝은 하늘색이라든지 짙은 주황색과 같이 정확한 색을 연상하게 하는 말을 쓰는 것이 낫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색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은 색상과 명도, 채도이다. 색을 말할 때는 반드시 이 세 가지 기준을 가지고 하는 것이 디자이너끼리의 상식이다. 그런데 어줍잖은 외국어를 전문용어인 양 쓴다는 것은 디자이너들이 그만큼 색을 민감하게 구별할 수 있는 약속된 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형태나 색에 있어서 패션 디자인계가 약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의 교육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의 패션 디자이너들은 고등학교 때까지 건조한 입시공부만 하다가 대학교 때부터 갑자기 디자인이라는 창조적인 공부에 직면하게 된다. 그것도 적게는 2년, 많게는 4년을 겨우 공부하고 학도의용군처럼 패션 디자인계에 내몰리게 된다. 겉으로 볼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패션 디자인과 같은 창조적인 일을 하기 위해서는 패션 디자인 이전에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본기가 있는데, 현재의 교육과정에는 그것을 익힐 수 있는
최경원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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