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마니의 스타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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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15 오후 6:13:52

디자이너는 색과 형태로 자신의 디자인을 표현한다. 따라서 디자이너는 형태와 색을 자유롭게 다룰 수가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묘사력을 갖추어야 한다. 흔히 묘사력을 손의 기술로 생각하기 쉬우나, 묘사력은 사물을 정확하게 보는 눈과 그것을 이해하는 마음의 협동작용이 먼저 전제되어야 하며, 그 다음으로는 손의 훈련을 통한 표현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묘사력은 눈과 마음, 손의 하모니요 심포니다. 가수는 노래를 잘해야 하고, 작가는 글을 잘 써야 하는 것처럼 디자이너들은 형태를 잘 만들어야 한다. 특히 패션 디자인은 제작에 투여되는 기술의 비중이 제품 디자인이나 건축과 같은 분야에 비해서 적기 때문에 형태와 색을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다. 따라서 다른 어떤 디자인 영역보다도 디자이너들의 자유로운 조형능력이 유연하게 발휘될 수 있으며, 매시즌 엄청나게 많은 디자인이 백가쟁명하고 유행의 흐름이 빈번한 것도 표현에 대한 기술적인 제약이 적은 탓이다. 그렇기 때문에 패션 디자이너들은 다른 어떤 분야의 디자이너들보다도 색이나 형태에 대한 감각이 자신의 디자인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따라서 패션 디자이너들은 패션 디자인이라는 전문성에 집중하기 보다는 자신의 조형능력을 패션 디자인이라는 창으로 얼마나 많이 표출하는가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반적으로 조형능력이라고 하면 색과 형태를 다루는 능력을 말한다. 조형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많이 보고, 많이 그리고, 많이 만드는 것이 가장 좋다. 그렇게 하다보면 저절로 보는 눈이 생기고 디자인을 할 수 있는 능력이 키워지게 된다. 하지만 밑도 끝도 없이 공부하게 되면 효율이 떨어지게 되므로 조금 구체적으로 키워야 할 내용을 파악하고 거기에 따라 자질을 키워나가는 것이 좋다. 조형능력은 구체적으로 사물을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는 묘사력과 형태를 창조하고 색을 배치하는 구성력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에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을 수가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사물을 똑같이 그리는 능력을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 그림에 재능이 없다고 자학(?)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이유는 한결같이 사물을 똑같이 그리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정확한 판단은 아니지만 그만큼 묘사력은 조형작업에 있어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해 준다. 그런데 디자인은 고전주의 회화처럼 사물을 묘사하는 것이 절대적인 분야가 아니고 색과 형태, 재료 등이 어울려서 만들어지는 추상적인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전공과정에서 그렇게 강조되지는 않는다. 패션 디자인 분야처럼 기초적인 조형훈련을 거치고 전공에 입문하는 게 아닌 경우에는 묘사력에 대한 비중은 더 적어질 수가 있다. 실지로 패션 디자인에서 묘사능력은 겨우 스타일화에 그쳐 있는 듯하며, 그것도 대상을 묘사하는 것 보다 기술적인 면, 스타일화스럽게 그리는 것이 중요시되는 것 같다. 그러나 묘사력이 중요한 것은 묘사의 결과로 나온 그림에 있지 않다. 갑자기 누가 엄마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냐고 물어오면 그림으로나 말로 답하기가 어렵다. 인상은 또렷하게 마음에 잡히지만 코 모양이 어떤지, 입 모양이 어떤지는 기억할 수가 없다. 세밀하게 기억하면 할수록 오히려 전체적인 인상만 흩어져 버린다. 이처럼 본다는 것은 말처럼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본다고 해서 모두 보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눈을 뜨고 있는 한은 수많은 영상들이 눈을 스쳐 지나간다. 이렇게 흘러가는 그림들이 또렷하게 머리에 저장되기 위해서는 눈만 가지고는 안 된다. 마음이 작용해야 하는 것이다.-그렇게 마음이 작용하여 안목이 높아진 것을 심안이라고 하는 작가가 있다.-눈과 마음이 협동하여 대상의 전체와 부분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형상의 이미지를 넘어서서 그 형상의 내면에 깔린 색이나 구조의 특징들이 이해되고 몸에 입력되어야 비로소 몸 안에 저장되어 내 것이 된다. 몸 안에 저장된 것이 많을수록 디자이너가 뽑아서 쓸 디자인 재료도 많아지게 된다.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 많은 잡지나 화보집을 들춰보지만 막상 디자인을 하려고 하면 자기가 보았던 수천 개의 디자인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디자인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경우를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겪어보았을 것이다. 본 건 무지 많은데 정작 본 것들이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본 것들이 몸 안에 저장되지 않아서이다. 눈앞을 스쳐 지나는 형상들은 저절로 마음속이나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묘사력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석고나 사람, 정물들을 그리는 일은 지루하고도 힘든 일이다. 그렇지만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퍼부어야 하는 것은 이러한 묘사과정을 통해서 사물을 관찰하는 능력, 즉 눈과 마음

최경원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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