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 관계는 식물 기르기와 같다. 처음에는 애써 돌보지 않아도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식물 같다. 먹을 것을 안 주거나 관심을 쏟지 않는다고 반려동물처럼 울어서 시끄럽게 하거나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지도 않는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관심을 쏟지 않으면 언젠가는 말라 죽어 버린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과의 관계를 지속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실히 깨닫게 된다. 아무리 친했던 친구나 사랑했던 연인이라도 만나기 위한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지고 삶에 대한 태도, 철학, 미래상 등이 처음과 달라지면 관계 유지를 위해 공을 들여야 하는 대상으로 바뀐다 그저 만나기만 해도 즐거웠던 시간이었는데, 과거와 같은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데서 피곤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가족이라고 그냥 내버려두기만 하면 저절로 행복한 가정이 만들어 지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인지 법적으로나 핏줄로 이어진 가족이 아닌데도 오랜 기간 친분을 유지하는 사람들의 관계를 보면 새삼 그들의 에너지에 놀라게 된다. 특히 사업 파트너로서 한 브랜드를 함께 일궈온 과정을 보는 것은 마치 부부의 인연을 맺어 아이를 낳고 한 명의 온전한 인간으로 길러내는 것처럼 숭고해 보이기까지 한다.
‘프라다’를 한 단계 도약시킨 미우치아 프라다와 파트리치오 베르텔리, ‘마크 제이콥스’를 키워낸 마크 제이콥스와 로버트 더피, ‘아르마니’ 제국을 만든 조르지오 아르마니와 세르지오 갈레오티, 그리고 이제는 ‘생 로랑’으로 이어지고 있는 이브 생 로랑과 피에르 베르제의 성공과 힘겨웠던 날들의 이야기들은 마치 전설처럼 회자된다.
모든 사람은 외로운 존재이고 세상에 홀로 왔다 홀로 가는 법이지만 그래도 마음 맞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된다. 특히 늘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 내야 하는 디자이너에게 함께 새로운 컬렉션을 만들어 갈 수 있는 동반자가 있다는 것은 아이디어가 진부하다며 반대를 하든, 그 아이디어에 새로운 생각을 더 하든, 대안을 내놓든 한 명의 판단 보다는 훨씬 다채로운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패션계에도 잘 알려진 듀오 디자이너들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게이 커플이었던 디자이너 ‘돌체 앤 가바나’의 도미니코 돌체와 스테파노 가바나, ‘디스퀘어드2’의 딘과 댄 케이튼 쌍둥이 형제, 비슷한 분위기의 동성 친구의 결합으로 탄생한 ‘빅터 앤 롤프’가 있으며, ‘겐조’를 이끌어 가고 있는 신예 움베르토 레온과 캐롤 림도 일로 맺어진 친구 사이다.
이러한 듀오 디자이너들의 목록에 기억해야 할 디자이너가 늘었다. 아직은 이름이 착 달라붙지 않는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Maria Grazia Chiuri)와 피엘파올로 피춀리(Pierpaolo Piccioli)이다. 이들이 바로 ‘발렌티노’를 이끌어가고 있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이며, ‘발렌티노’의 제 2의 전성기를 열어가고 있는 주역들이다.
1964년과 1967년생으로 이제 40대 후반과 50대를 맞이한 두 디자이너의 관계는 20여 년을 훌쩍 넘어 이어져 오고 있다. 1980년대 로마에서 같은 디자인 학교를 다녔으며, 친구 소개로 만나게 된 둘은 이내 같은 디자인관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펜디’에 입사하게 된 키우리가 피춀리와 함께 일하는 조건을 제안하여 1989년 ‘펜디’에서의 경력이 시작되었다.
‘펜디’에서 액세서리 파트를 맡았던 10년 동안 그들은 ‘펜디’의 세계적인 히트작인 바게트백을 탄생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이를 계기로 두 디자이너를 눈 여겨 봤던 발렌티노 가라바니에 의해 직접 ‘발렌티노’의 액세서리 디렉터로 발탁되었다고 한다. 1999년 ‘발렌티노’로 옮겨간 키우리와 피춀리는 2008년 은퇴한 발렌티노의 뒤를 이어 발렌티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된다. 현재 키우리와 피춀리는 ‘발렌티노’ 여성복 프레타 포르테, 남성복, 오트쿠튀르까지 ‘발렌티노’ 전 라인을 총괄 지휘하고 있다.
액세서리 파트를 디렉팅한 경험이 있는 키우리와 피춀리인 만큼 현재 ‘발렌티노’ 컬렉션도 구두와 가방, 그리고 작은 소품들에까지 전체적인 룩이 하나의 흐름으로 종결되는 완성도가 높은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사실 명품 브랜드에서는 실제로 의상보다는 가방과 구두와 같은 액세서리의 판매가 훨씬 높은 비중을 차지 한다. 따라서 액세서리 디자이너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하는 경우가 드문 것은 아니다. 실제로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프리다 지아니니나 ‘마크 바이 마크 제이콥스’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케이티 힐리어 모두 높은 판매와 이슈를 만들어 내면서 검증 받은 실력의 액세서리 디렉터를 거쳐 한 브랜드의 수장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키우리와 피춀리는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방법인 액세서리를 통해 ‘발렌티노’를 젊고 갖고 싶고 동시대적인 브래드로 탈바꿈 시켰다. 그동안 ‘발렌티노’는 사랑스럽고 고급스러우며 우아하긴 하지만 어쩐지 너무 요조 숙녀 같고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한 이미지의 브랜드였다. 하지만 이 듀오 디자이너는 이러한 ‘발렌티노’의 감수성을 유지하면서 강한 이미지의 액세서리를 통해 이를 중화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그들이 선보인 ‘락스터드’는 옷 좀 입는다는 연예인과 국내외의 패션 블로거, 쇼핑몰 등에서 카피되고 반복해서 보여지면서 자연스럽게 홍보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락스터드 힐과 가방의 매력은 정사각형의 금속성 징을 구두와 가방에 장식함으로써 락그룹의 강인한 이미지를 선보이는 동시에 여성스러운 옷차림에 어울리는 색상과 형태를 갖췄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네모난 스터드 장식은 현대적인 느낌까지 표현해내면서 어떤 옷차림에도 어울리는 전천후 아이템이 될 수 있었다. 특징적인 장식 하나가 ‘발렌티노’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며 제 2의 전성기를 열게 된 것이다.
고학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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