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이 아닌 작품으로의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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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Great Heritage 71 - 니콜라 제스키에르 (Nicolas Ghesquière)

2015-01-15 오후 7:29:02


왜 ‘루이비통’은 수많은 디자이너들 중 니콜라 제스키에르를 선택했을까? 마크 제이콥스와 함께 대중 명품 시장을 평정했던 ‘루이비통’은 또 다른 천재 디자이너로 추앙 받는 니콜라 제스키에르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해 두 번째 컬렉션을 무사히 마쳤다.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니콜라 제스키에르에 대한 평은 엇갈리고 있다.

본격적인 21세기가 시작되기 전, 세기말의 패션계에는 큰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각각의 개성과 오랜 역사를 지녔지만 개인 기업에 머물러있던 브랜드들이 자본에 의해 합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기업 사냥꾼이라는 별명이 붙은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고급 소비재로 분류할 수 있는 여러 브랜드들을 인수하기 시작했다. 현재 LVMH(루이비통 모에 헤네시)에서 패션과 가죽 제품군에 속한 브랜드만도 ‘루이비통’ ‘셀린느’ ‘겐조’ ‘지방시’ ‘펜디’ ‘마크 제이콥스’ 등 15개에 이른다. 와인, 향수와 화장품, 시계와 주얼리, 리테일 브랜드까지 합치면 60여 개의 브랜드가 LVMH 라는 이름 하에 묶인 것이다.

자본을 등에 업고 수많은 광고와 홍보, 마케팅으로 사람들에게 각인된 이 브랜드들은 아시아의 평범한 사람들에게까지도 욕망의 대상이 됐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명품이라는 용어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고가의 사치품으로 여겨져 부유층, 그들만의 세상에서 소비되던 제품들이었다. 그러나 20여 년 만에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소수를 위한 고가의 사치품들이 매스티지(Masstige), 즉 대중 명품 시장으로 확대된 시기는 스타 디자이너의 탄생과 맞물린다. 특히 오래된 가방 브랜드였던 ‘루이비통’이 잘 생긴 얼굴과 흥미로운 사생활, 언론 친화적인 성격으로 아이돌 만큼이나 인기를 끈 마크 제이콥스를 영입하여 기성복 컬렉션을 시작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마크 제이콥스는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화려한 컬렉션을 선보이고 예술가와의 콜래보레이션으로 한물간 취급을 받던 가방 브랜드를 연령과 국경을 초월하여 가장 갖고 싶은 브랜드로 탈바꿈시켰다. 

끊임없이 이슈를 만들어내며 ‘루이비통’의 매출과 매력 지수를 급상승 시켰지만 그와 함께 ‘루이비통’의 가치는 조금씩 하락해갔다. 3초 백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대중에게 친숙한 브랜드가 됐고 욕망의 대상으로 등극하면서 동시에 가짜 제품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라이선스를 남발하여 우산과 수건 등에서 이름을 찾을 수 있었던 ‘피에르가르뎅’ 만큼은 아니지만, ‘루이비통’의 희소성은 점차 퇴색되었다.

명품 브랜드에 있어 희소성의 하락은 브랜드 가치의 하락으로 이어진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제품은 차별화 되지 않기 때문이다. ‘루이비통’은 바로 이 희소성을 다시 높이기 위해 니콜라 제스키에르를 영입했다. 그렇다면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디자인은 무엇이 다른가. 그가 ‘루이비통’으로 오기 전 15년 간 몸담았던 ‘발렌시아가’에서의 컬렉션을 살펴 보자.

‘발렌시아가’에서 선보인 제스키에르의 디자인은 크게 다섯 가지의 주제로 요약된다. 원본, 즉 ‘발렌시아가’ 아카이브에 대한 재해석, 예술성 동시대성, 파리지엥의 우아함, 그리고 파리 패션의 자존심인 장식성이다. 이 다섯 가지 속성이 서로 맞물리면서 스러져가던 ‘발렌시아가’ 하우스의 부활이 이뤄졌다.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는 ‘디자이너들이 디자이너’, 라는 칭송을 들을 만큼 독보적인 쿠튀르였다. 그는 훌륭한 쿠뛰리에라면 설계할 때는 건축가, 형을 만들어낼 때는 조각가, 색을 다룰 때는 화가, 전체적인 하모니를 창조할 때는 음악가가 되어야 하며, 철학자처럼 절제된 품격을 빚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스페인 출신이었지만 그의 이러한 옷에 대한 신념은 자부심 높은 프랑스 패션의 정수인 오트쿠튀르의 정신으로 남게 되었으며, 프레타 포르테 시장이 생기기 시작한 시대적 흐름을 거부하며 1968년 은퇴했다.






‘발렌시아가’ 옷의 특징은 뭐니뭐니해도 건축적인 설계에서 오는 독보적인 실루엣의 우아함이었다. 과거처럼 크리놀린이나 패티코트 등의 보형물을 이용해 실루엣을 부풀리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계산에 의해 천으로 조각 같은 단단함과 유연함을 동시에 표현했다.

제스키에르는 이러한 ‘발렌시아가’의 특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실루엣과 형태를 만들어 냈다. 가히 패션을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킴으로써 ‘발렌시아가’는 오래된 하우스를 다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만들었다. (사진 1, 2)







하지만 그는 ‘발렌시아가’의 유산만 파고들지 않았다. 네오프렌 같은 소재를 재빨리 도입하거나 하운드 투스 체크의 재해석, 라이더 재킷과 가죽 바지 등의 아이템을 통해 현대의 젊은이들에 어필할 수 있는 동시대성을 부여했다. (사진 3)




무엇보다 패션에 있어서 파리지앵의 자존심을 높여 준 것도 큰 역할을 했다. 우아한 곡선을 이용한 디자인은 그들의 과거를 자극했고, 새로운 장식 기법들을 꾸준히 개발해 파리 패션의 정체성을 놓치지 않았다. (사진 4, 5)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천재라고 불린 것은 그가 26살의 젊은 나이에 ‘발렌시아가’를 이끌게 되었기 때문이거나 잇백이자 클래식백으로 등극한 모터백을 통해 발렌시아가의 매출을 극대화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마크 제이콥스가 예술가와의 콜래보레이션을 통해 상품성을 높이고자 했다면,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자신이 디자인한 옷 자체가 예술 작품이 되기를 바랬다. 그는 최근 ‘발렌시아가’에서 나온 이유로 자신의 작품을 상품으로만 취급한 것에 대한 불만을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러한 가치관의 차이가 앞으로의 ‘루이비통’이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고학수 객원기자
marchberr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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