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Alexander Wang, Yang Li, Philip Lim |
9월 촉발된 홍콩의 우산 혁명은 겨울이 다 된 지금까지도 지속 되고 있다. 1997년 영국이 홍콩을 중국에 반환한 이후 홍콩은 단순히 중국의 한 도시도 아니고, 그렇다고 중국이 아닌 것도 아닌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 중국과 영국의 홍콩 반환 협정에 따라 50년간 일국양제의 원칙을 지켜야 했기 때문에 홍콩은 민주주의,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홍콩 반환이 근 20여 년이 다 되어 가지만, 특별 행정 자치구인 홍콩은 여전히 중국 본토와 정치 체제뿐 아니라 언어, 화폐, 여권, 시민의식이 모두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계기가 된 것은 중국이 2017년부터 홍콩의 국회의원들은 홍콩 시민이 직선제로 뽑을 수 있도록 해놓고는 실상은 중국중앙정부에서 몇몇 후보를 선정해 그 중에서 뽑도록 했다는데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홍콩이 중국과 다른 길을 가게 되면서 지금의 사태를 맞이 하게 된 것은 제국주의 시대 서구 열강의 침략이 그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외부 세력에 의해 강제로 분리되고 그들이 떠나간 후 남겨진 피해를 지금 중국과 홍콩이 이어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홍콩 사태가 전세계 퍼져 살고 있는 중국의 1억 재외 이민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을까? 이민 세대들에게 홍콩과 중국의 문제는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저들을 지켜보는 것만큼 먼 나라 이야기 일지 모른다. 패션으로 정치색을 드러내는 디자이너도 간혹 있지만, 중국계 디자이너들에게서 이번 홍콩 사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패션으로 드러낸 디자이너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4대 컬렉션에 패션쇼를 올리는 디자이너들은 외모만 중국인일 뿐 문화적으로나 디자인에 대한 취향이나 판단은 서양적 사고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뉴욕 컬렉션 내 1세대 중국계 디자이너인 베라 왕이나 안나 수이, 그리고 21세기와 함께 등장한 중국계 이민자 디자이너 군단인 알렉산더 왕, 제이슨 우, 필립 림, 데렉 램, 피터 솜, 오프닝 세레모니와 ‘겐조’의 디렉팅을 맡고 있는 움베르토 레온, 런던 컬렉션의 존 로샤, 파리 컬렉션에 중국인 디자이너 바람을 불러 일으킨 양 리까지 모두들 중국에서 보낸 삶보다는 미국, 영국, 호주 등에서 거주한 시간이 더 길기 때문이다.
1949년 생인 베라 왕은 뉴욕에서 태어났으며, 상하이 출신인 그녀의 부모님은 1940년대 중반에 이미 미국으로 건너왔다. 1964년 생인 안나 수이 또한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나 파슨스를 졸업하고 패션 디자이너의 길에 들어섰다. 뉴욕 컬렉션의 젊은 세대 디자이너들은 어떨까? 가장 잘 나가는 알렉산더 왕은 198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으며, 데렉 램 또한 1967년 샌프란시스코 출신이다. 피터 솜은 1970년 뉴욕 출생이며, 필립 림(1973)과 제이슨 우(1982)는 대만 출신이지만 국적은 필립 림은 미국, 제이슨 우는 대만과 캐나다의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이름과 외모를 빼면 그들의 디자인 어디에서도 동양적 유산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의 디자인은 미국 문화와 사회를 반영하고 있고, 쉽게 동화되고 각광 받는 것이다. 그들은 미국인이며, 단지 혈통이 중국계일 뿐인 것이다. 많은 이민 가정의 아시아계 자녀들이 그랬듯이 그들도 미국사회에 겉돌면서도 동화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계라는 점은 그들에게 이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대부분의 신인 디자이너 브랜드가 그러하듯이 가족 기업의 형태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은데, 비록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중국으로의 진출에 있어서 다른 국적의 사람들 보다는 의사소통이나 비즈니스에 있어 호의적인 기대를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파리 컬렉션에 등장한 양 리(1988)는 베이징 출신으로 10살에 호주로 이민 갔으니 중국의 철학이나 사상, 전통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훨씬 높다. 그러나 양 리의 컬렉션은 중국적이기만 한 것도, 그렇다고 서양식 디자인만 따르는 것도 아닌 독특한 개성을 표현하고 있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중국과 10대 시절의 호주, 20대 이후 영국에서의 영향은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가 컬렉션에 드러나고 있다.
양 리 패션의 특징은 미니멀리즘을 표방하면서 동시에 바람을 품은 과장된 실루엣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서양 디자이너들이 오리엔탈리즘이라면 고정관념화 된 치파오의 변형 디자인을 수없이 선보여왔는데 반해 그가 채택한 것은 한푸(漢服)라고 하는 한족의 전통 의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몸매를 드러내는 치파오는 청나라를 지배했던 만주족의 옷으로, 한족에게 있어서는 오랑캐의 옷이라고 할 수 있으며, 중국인들에게는 치파오가 세계적으로 알려진 것이 자존심 상할 수 있다. 그러한 점에서 양 리는 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한족의 전통 복식인 한푸를 드디어 패션계에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패션에 동양 철학을 담는다고 하면 무겁고 어려울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게 된다. 게다가 전통 복식의 현대화라니, 너무 고루한 주제일 수도 있다. 양 리 또한 이에 대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생각해 낸 방법은 젊은이들이 신는 스니커즈를 모든 룩에 매치해 미니멀리즘을 뒤트는 스타일링을 보여준 것이다.
한푸의 특징인 군더더기 없고 유연하며 어느 것 하나 몸을 옥죄는 것 없는 풍성한 실루엣에 스포티한 요소를 군데군데 녹여내어 전통의 현대화, 그것도 젊은 감각으로 완성해냈다. 이러한 반항적 코드를 통해 전통성을 모던하게 해석할 수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 매일매일 스케이트 보드를 타거나 농구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 것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으며 주로 일상적인 것에서 영감을 받는다고 한다.
미니멀리즘도 충분히 유스 컬쳐를 포용할 수 있으며, 미완성의 것이 가진 아름다움이 하이패션으로 승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능숙함과 노련미를 겸비한 디자이너가 탄생했다.
고학수 객원기자
marchberr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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