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철학과 미학을 담은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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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Great Heritage 66 - 양 리 (Yang Li)

2014-12-04 오후 4:42:15




서유럽이나 미국 중심으로 쓰인 서양 예술사나 서양 철학이 어느 정도 대중들의 상식과 교양 차원에서 사회적으로 소비, 융통 되고 있지만, 그에 비한다면 동양의 것은 낯설고 멀게만 느껴진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우리의 삶이 서구적인 것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문적으로는 어려운 용어가 난무할지라도 동양 철학은 이미 우리 생활 속에 녹아 있다. 아무리 서양식이 현대 생활의 중심인 듯 보여도 동양 철학이 녹아있는 사고방식은 숨기기가 어렵다.


흔히 서양의 사고방식은 이분법적이라고들 한다. 그리고 이 이분법적 사고가 안 좋은 점은 우열을 가리고 한쪽을 억압하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감각과 이성을 구별했고, 이 세계를 보는 방식을 현상과 본질(이데아)로 나누었다. 그리고 이성과 이데아를 우위에 놓고 감각과 현상은 하등 한 것으로 치부했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는 서양 문명의 시작으로 보는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고대 그리스는 복잡한 해안선과 섬들이 섞여 있으며, 땅의 대부분이 산이라 농사를 짓기 어려운 지역이었다. 그래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다른 지역과 교류를 하거나 약탈해 먹고 살아야 했다. 그들에게 자연이란 정복하고 극복해야지만 자신들이 생존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인간과 자연이 대립하고 있으며, 자연을 정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은 이후 서양의 사고방식에 뿌리가 되었다.


그에 비해 중국은 거대한 대륙이었다. 농사를 짓는 농부는 부를 창출할 수 있는 경제적 활동을 하여 숭상 받았다. 농부는 자연과 언제나 접촉하고 있었고, 자연은 극복의 대상이기 보다는 대자연, 어머니의 품이었다. 이러한 자연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사계절의 순환은 기의 순환과 같은 순환적 사고를 하도록 만들었다.


농부의 관점은 중국철학의 ‘되돌아가는 것은 도의 움직임이다’라는 철학적 내용과 함께 철학의 방법마저 한정시켰다. 즉, 서양에서는 주관과 객관을 구별하면서 인식론이 발달했지만, 동양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대신 기의 움직임으로 삼라만상을 설명하려 했다. 서양의 역사관이 직선적이며 계단적 발전의 역사관이라면, 동양에서는 역사 또한 끊임없이 연속하고 반복되는 것으로 보았다.


동양철학에서 기란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서구 문화가 실체의 세계라면, 중국 문화는 기의 세계이다. 기의 세계에서 유(有)와 실체는 기이며, 기의 응집이다. 중국 문화에서 무(無)로 이해되는 광대 무변한 우주공간은 기로 가득 차 있다. 기는 떠돌아 흐르다가 만물을 파생시킨다. 기가 모이면 실체가 되고, 실체의 기가 흩어지면 그 사물은 없어져 다시 우주의 기가 된다.


기의 흐름은 태극과 음양 같은 철학으로 발전한다. 무극(원), 즉 태극의 이치가 움직이면 양(陽)을 낳고, 그 이치가 고요하면 음(陰)이 생긴다. 양이 극에 이르면 음이 되고, 음이 극에 이르면 양으로 되돌아온다.


중국 선진(先秦)시대에서 한대까지 기론(氣論)은 끊임없이 음양오행설과 융합되면서 마침내 기, 음양, 오행으로 구성된 우주론을 형성하였다. 그것은 하늘, 땅, 사람에게 적용되어 중국 문화를 넘어 동아시아 문화 곳곳에 스며들었다.


양 리는 이러한 기와 음양을 패션으로 재해석해 냈다. 흑, 백의 조화는 음양을 시각화 한 듯 보인다. 하지만 유치하거나 너무 뻔해 보이지 않는 것은 그 속에 명도와 소재로 변화를 주었기 때문이다. 명백한 흑, 백을 사용하지 않고 검정에 가까운 회색을 이용하거나, 속이 비치는 소재를 불투명한 소재와 대비시키고, 겉옷의 안감과 속옷을 같은 소재로 사용해 순환이나 기의 흐름이라는 개념을 표현했다.


하지만 이러한 특징만으로 동양 철학이 표현되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디자인 방법은 다른 서양 디자이너들의 작품에도 자주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 리의 옷이 특별해 보이는 것은 여기에 또 다른 개념을 더했기 때문인데, 그것이 바로 ‘기운생동’이다.


서양이나 동양 회화 모두 대상을 똑같이 그린 그림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그 표현방식이나 담고자 했던 의미는 조금 다르다. 서양 회화에서는 빛에 의한 명암 효과나 원근법을 이용해 실재와 똑같이 묘사한 작품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카메라의 등장으로 서양의 현대회화는 새로운 가치, 즉 철학과 같이 끊임없이 진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


반면에 동양에서는 기운생동이 담긴 작품을 높이 평가했다. 기운생동이란 회화에서는 묘사할 대상의 기질, 성격, 개성, 생명력이 화면에 생생하게 표현되는 것을 의미한다. 조각품이라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져야 했다. 고정불변의 회화나 조각에 생명력이 느껴지고 움직임을 표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바로 비대칭을 이용하거나 완벽하게 완성되지 않은 상태를 통해 그러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양 리의 옷에는 이러한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완벽하게 재단된 옷이 아니라, 단순히 몸을 가리기 위해 원통형의 천이 가슴에서 고정될 수 있도록 겉에서 눌러 박거나, 끝 단 처리 없이 가위로 쓱 잘라 올이 풀리도록 놔 두고, 버려질 만한 천 조각을 완벽히 재단된 수트 위에 실수로 같이 박힌 듯 올려놓으며, 아예 완벽히 신체를 다 가리지 않고 재킷을 팔로 안아 가슴을 가리는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 등은 무생물인 옷으로 살아있음, 즉 기운생동함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끝 단의 올이 풀리도록 두는 것은 이전의 일본이나 벨기에의 해체주의 디자이너들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양 리의 작품이 새롭고 달라 보이는 것은 그 안에 동양 철학의 개념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고학수 객원기자
marchberr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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